신간│별을 보러 강으로 갔다

한 '머저리'가 흘린 눈물, 그리고 시

2018-07-27 12:16:54 게재
정양주 지음 / 문학들 / 1만원

정양주 시인의 시를 이야기하고자 할 때 1980년 '광주의 오월'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잔혹한 역사의 현장 한가운데였던 전남대학교 캠퍼스 어문학부 1학년, 그의 시는 시작되었고 그 시절 그 자리 청춘들이 겪을 수밖에 없었던 역사의 수레바퀴 밑을 가슴앓이와 함께 지나왔다. 그 사이 교사가 되고,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도 되어보고 삶이 가져다주는 신산스러운 맛들을 겪고, 이제 지천명을 넘고 다음 고개로 가는 길목에서 자화상 같은 한권의 시집을 엮었다.

"열 살 때 엄니 따라 시래기 주우러 처음 온 곳/새벽부터 리어카 끌고 삼십 리, 배추밭 주인 눈치 보며/작업하는 인부들 꽁무니에서 시래기를 모으고/ 폭 덜 찬 배추 몇 개 더 얻어/칼바람 속에서도 등짝에 땀나던/배춧잎 달랑 한 장 토끼 주고/우리 식구가 겨우내 다 먹었던"<남평>

시인이 겪었음직한 궁핍한 유년시절의 기억 속에서 건져올린 이 싯구절은 그가 세상을 대하는 자세가 어떤 것일지, 그의 시들을 어떻게 읽을지 짐작케 하는 암사지도를 보는 느낌이다.

"머저리 같은 놈 머저리 같은 놈/참외 하우스 토마토 하우스.../죽자고 비닐농사 넘치게 짓다/전답 잃고 마누라 잃고/허우대 값 못하고 말라 죽은/내 친구 형식이 같은 놈" <미루나무>

정양주 시인의 문학서클 선배이자 순천대 교수로 있는 곽재구 시인은 발문에서 "어찌 형식이 시인의 친구뿐일 것인가. 사는 동안 우리는 이렇게 머저리 같은 많은 친구들을 보았다. 역사는 어쩌면 이 머저리들 덕분에 핍진한 숨을 내쉬는 것은 아닌지"라고 찬했다. 그런 의미에서 정양주 시인도 그 '머저리' 중의 한명 아닐까. 그 머저리가 엮어내는 시편들에는 안쓰럽고 외롭고 이름 없는 것들을 연민의 시선으로 쓰다듬고, 조금 있으면 스러져가버릴 것들을 애써 기억의 박물관에 보관해 지키려는 따뜻함이 배어 있다.

"잎을 매단 가느다란 나뭇가지들은 가볍게 나를 태워/ 울렁거리고 흔들거리고 빙글빙글 돌다 울컥 눈물 쏟습니/다. 그 눈물로 나는 처음 쓴 시를 고쳐 쓰고, 울렁이는 가/슴으로 꽃잎을 밀어 올리고..." <봄날 서시>

시인은 이 시집의 마지막 시편을 통해 '눈물로 처음 쓴 시를 고쳐 쓰고, 울렁이는 가슴으로 꽃잎을 밀어 올리는' 그런 삶의 발자국을 한발 더 내딛으려나 보다.

안찬수 기자 khae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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