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0대 수도권 임대주택 포기하고 다시 서울로

2018-09-11 12:07:13 게재

정부, 교통기반시설 확충 나몰라라 … "차라리 서울 다세대 살겠다"

수도권 임대주택지구 개발정책이 오히려 서울 집값을 부추기는 '엇박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 광역교통대책 등 기반시설 확충을 피하기 위해 소규모로 택지를 조성한 것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는 20~40대 직장인들이 임대주택을 회피하고 서울 다세대주택으로 몰려드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11일 국토교통부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에 따르면 2007년 이후 서울 및 수도권에 조성된 임대주택단지인 15개 보금자리지구 중 규모가 100만㎡ 를 넘는 지구 9곳을 제외한 6곳은 광역교통대책 수립이 필요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 제정된 대도시권광역교통 관리에관한특별법에 따라 대도시권 광역교통에 영향을 미치는 대규모 개발사업은 광역교통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100만㎡ 이상이거나 수용인구 2만명 이상이면 적용된다. 광역도로나 지하철 신설·연장 등을 통해 대도시와 개발지를 연결하는 원활한 교통망을 구축하는 사업으로 많게는 수천억원이 소요된다.

그러나 100만㎡에 미치지 못하는 6곳은 광역교통대책을 수립하지 않아도 된다. 특히 강남보금자리지구(93만9000㎡), 내곡보금자리지구(81만㎡)는 불과 10만㎡ 미만 차이로 광역교통대책 의무를 피해나갔다. 사업비 문제로 광역교통대책을 구축하지 않기 위해 쪼개기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학렬 더리서치그룹 부동산연구소장은 "정부의 임대주택 공급계획을 보면 서울 집값상승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지 의문"이라며 "교통망을 언제까지 확충하겠다는 계획이 없어 20~40대 직장인들이 수도권 임대주택보다는 차라리 서울 다세대에 살겠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보금자리·뉴스테이 묶어 광역개발 필요 = 보금자리 지구 뿐 아니다. 기업형임대주택인 뉴스테이도 마찬가지다. LH에서 추진하는 대규모 뉴스테이 사업지구 역시 100만㎡를 넘지 않도록 설계됐다.

이 문제로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지역이 서울과 인접한 과천주암뉴스테이지구다. 청년주택 신혼희망타운으로 변경될 것으로 예상되는 이 지구는 93만㎡ 규모여서 광역교통개선대책을 수립하지 않아도 된다. 지구내 교통대책 위주로 인프라 확충이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길건너 우면2국민임대주택지구( 50만㎡)와 합하면 140만㎡가 된다. 인접한 서초보금자리지구(36만㎡)를 추가하면 180만㎡ 나 된다. 사업지는 접근로가 상시 교통정체 지역인 양재대로에 연결돼 있다. 2022년 5700가구가 입주하면 시간당 5000여대가 추가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도 시간당 1만5000대로 대표적인 정체지역인 양재IC는 최악의 교통정체가 예상된다. 현재 서울시 서초구 과천시는 정부에 추가적인 교통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불과 7만㎡ 차이로 교통대책 수립을 면한다는 건 불보듯 뻔한 교통대란을 도외시한 근시안적 행정"이라며 "해당 사업지역 뿐 아니라 개발로 피해를 보는 기존 주민을 위해서라도 광역교통대책이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보금자리주택이나 기업형임대주택 등을 묶어 대형 임대주택 단지를 만들고 그에 따른 교통망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직장인들은 낡거나 비좁은 주택이라도 교통망이 좋으면 곧장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며 "임대주택을 이후 분양으로 전환할 때 성공요인으로 꼽는 것도 광역교통대책"이라고 지적했다.

◆직장인보다 은퇴자가 선호, 임대주택 본질 왜곡 = 경기 용인언남지구 사례를 보면 광역교통대책 수립을 피하려는 의도가 보인다. 이 곳은 당초 110만㎡로 임대주택사업이 추진되다가 국토부가 사업부지내 산림(20만㎡)을 용인시에 기부채납하면서 면적이 90만㎡로 축소됐다.

용인지역은 서울 출퇴근 광역버스 대란으로 분당지역과 갈등을 빚은 곳이다. 서울 강남권 출퇴근 인구비율이 많아 입주자들의 최대 관심이 광역교통망 구축이다.

용인시와 주민들은 사업추진 초기부터 교통대책을 요구하며 반발하고 있어 사업추진도 불투명한 상태다. 해당 사업지가 지역구인 표창원(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업시행자인 LH에 광역교통대책 마련을 요구해왔다.

표 의원은 "용인언남지구 등은 국토부와 LH가 사업규모를 100만㎡ 이하로 줄이는 꼼수를 부려 광역교통개선대책을 수립하지 않고 있다"며 "뉴스테이 주변지역들은 교통지옥이 불보듯 뻔한 만큼 당장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표 의원측은 "현재 교통망으로 용인언남지구가 들어섰을 때 이 일대 교통등급이 F로 떨어진다"고 말했다.

중산층 주거안정을 위해 도입한 뉴스테이는 문재인정부가 공공지원임대주택으로 변경해 이어가고 있다. 뉴스테이 촉진지구 16곳을 국토부가 선정해 LH 등이 지구별 사업을 추진중이다. 16곳 중 12곳이 수도권이다.

뉴스테이 입주자는 최대 8년간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으며, 이 기간 동안 기업은 매년 임대료를 5% 이상 올려받을 수 없다. LH 공공임대주택과 비슷하지만 주변 아파트 전세·월세 시세에 맞춰 임대료가 정해지는 점이 차이점이다. 기업은 최장 8년 의무임대기간이 지나면 뉴스테이 주택을 분양전환할 수도 있거나 계속 임대를 유지할 수도 있다.

안정적인 임대조건 때문에 20~40대 직장인들이 뉴스테이에 대거 몰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상은 은퇴자 중심의 임대주택으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향후 분양전환 기대를 안은 은퇴자들이 투자용으로 접근하고 있어 임대주택 본질이 왜곡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교통대책 기다려달라고만 = 사업지구 쪼개기에 따른 교통인프라 부족은 서울 집값상승과 연결돼 있다. 집없는 서민들이 서울을 벗어나 수도권으로 이전하는 것을 머뭇거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지난달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기자들과 만나 "서울과 수도권 주변으로 많은 교통정책을 펴고 있어 서울 주변에 살더라도 주거 여건이 많이 개선될 것”이라며 “조금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부정책에 함께해 달라"고 말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제선 연세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수도권 개발지를 자족도시가 아닌, 서울과 연계된 역할로 설정한다면 충분한 교통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역대 정부, 임대주택으로 집값 잡겠다더니…] 기반시설 부족에 예고된 실패작

김병국 김성배 이제형 기자 sbkim@naeil.com
김성배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