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재무부 개입 '달러 약세' 온다"

2018-10-31 11:23:09 게재

'커런시 워' 저자 제임스 리카즈

현재의 달러 강세는 언제 약화될까. 그 대답은 미국 재무부에 달렸다고 국제금융 전문가인 제임스 리카즈가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커런시 워'(Currency War) 저자이기도 한 리카즈는 30일 글로벌 금융뉴스레터 '데일리 레커닝'(The Daily Reckoning)에서 "내달 중간선거가 끝나면 미국 재무부가 환율 시장에 개입해 달러 약세 상황을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리카즈에 따르면 미 재무부가 달러 가치에 큰 신경을 쓰지 않을 때는, 시장 세력들이 달러 대비 유로화나 스위스프랑, 엔화 등과의 환율을 높이거나 낮추려고 유도한다. 때로는 중앙은행들이 달러 대비 환율을 높이거나 낮추려고 개입하곤 한다. 리카즈는 "중국이 대표적이다. 일본과 스위스도 능숙한 환율 개입국으로 유명하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각국이 공조해 환율 시장에 개입한 마지막 때는 2011년 3월 선진 7개국 모임(G-7)에서였다. 당시 일본 후쿠시마에 대지진과 쓰나미가 일어나 원전 방사능이 유출되는 등 최악의 참사가 벌어졌다. 이 때문에 증시가 급락하는 등 일본 경제 전반에 빨간불이 켜졌다. 엔화 약세가 절실했다. 수출을 늘리고 인플레이션을 올려야 했다. 하지만 일본 보험사들이 달러자산을 내다팔아 엔화를 모았다. 재난 보험금 청구에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이 때문에 역으로 엔화 강세 상황이 벌어졌다.

G-7의 개입이 필요했다. 당시 프랑스 재무장관 크리스틴 라가르드가 앞장섰다. 선진국들은 유로화와 달러, 파운드화를 사들이고 엔화를 팔았다. 환시장 개입은 성공적이었다. 시장개입을 성공적으로 주도한 덕분에 라가르드 장관은 그해 7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됐다.

리카즈는 "비상상황이 아니라면 미국 재무부는 달러 환율을 움직이기 위해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며 "반면 시장 개입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미 재무부는 일반적으로 연방준비제도(연준)와 함께 움직인다. 기준금리를 올리거나, 인상을 다소 늦추는 식으로 달러 가치를 조절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재무부와 연준이 함께 움직인다는 과거의 패턴이 바뀌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올해 하반기부터 지속적으로 가치가 오르는 달러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달러 강세는 트럼프의 경제정책에 역풍으로 작용하기 때문.

수입품이 저렴해지면서 미국 국내 경제에 디플레이션 압력을 가한다. 현재는 연준과 백악관 모두 인플레이션이 오르기를 고대하는 상황이다.

달러 강세는 보잉사나 제너럴일렉트릭 등 미국 대기업의 수출 이익을 갉아먹는다. 미국 경쟁력과 일자리를 해친다. 이는 결국 미국 증시 실적을 악화시키는 역풍이 된다.

백악관과 연준은 달러 약세와 인플레이션 상승을 보고자 하는 마음에서는 같지만, 연준은 현재 그와 관련해 아무 조치도 하지 않고 있다. 연준은 2015년 12월 기준금리를 인상한 이래 3년 가까이 긴축정책을 쓰고 있다. 연준은 또 2017년 10월부터 만기가 돌아오는 미 국채와 모기지증권 등에 재투자하지 않는 방식으로 자산을 줄이고 있다. 양적완화에 반대되는 '양적긴축'이다.

기준금리 인상과 양적긴축이 더해지면서 미 국채 금리가 크게 오르고 있다. 그 결과 더 높은 수익을 찾아 헤매는 국제 유동성이 미 국채 시장으로 흘러들어오면서 달러강세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리카즈는 "현재 상황은 백악관과 재무부가 달러 약세를 원한다면 연준 도움 없이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며 "미 재무부엔 시장에 개입할 수 있는 좋은 정책 도구가 있다"고 지적했다. 바로 '환안정기금'(ESF)이다.

ESF는 1934년 '금준비법'(Gold Reserve Act)에 따라 만들어졌다. 금준비법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1933년 민간의 금을 온스당 20.67달러에 강제로 매입한 조치에 대해 사후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차원에서 제정됐다. 이는 금값을 올려 달러가치를 낮추려는 의도에서였다.

ESF의 특징은 의회의 통제나 감시에서 완전히 자유롭다는 점이다. 사실상 미 재무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할 때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비자금' 성격의 기금이다. 법이나 의회의 승인을 받을 필요가 없다. 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이 1994년 멕시코 페소화 위기 당시 ESF를 활용해 멕시코에 구제금융을 제공한 바 있다. 당시 미 의회가 세금으로 멕시코를 도와주는 데 반대하자 미 재무부는 '쌈짓돈'인 ESF를 꺼내든 것이다.

현재 ESF가 보유중인 순자산은 약 400억달러다. 총자산으로 따지면 국제통화기금(IMF) 특별인출권(SDR) 500억달러가 포함된다. 하지만 재무부는 SDR를 발행해 연준에 맡기고 명목금액만큼 달러를 교환 받아 환율 시장 개입에 활용할 수 있다.

현재 환율전쟁에서 가장 위협적인 나라는 중국이다. 중국 위안화는 지난 6개월 동안 약 10%의 가치가 하락했다. 이 덕분에 중국은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전쟁의 악영향을 상쇄하고 있다. 즉, 중국의 위안화 약세 전략은 트럼프발 무역전쟁 계획을 어그러뜨리고 있다.

리카즈는 "때를 기다린 후 트럼프 대통령과 므누신 장관은 중국에 보복하리라 준비하고 있다. 내달 예정된 중간선거 이후 달러 약세를 조장한다는 것"이라며 "달러 약세로 피해를 볼 당사국은 중국뿐 아니다. 유럽과 유로화 역시 피해국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환율전쟁을 일으킨 2010년 1월부터 2011년 8월까지 달러 가치는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 덕분에 미국 경제는 유럽과 신흥국, 중국 등의 피해를 기반으로 큰 혜택을 봤다. 이는 2009년 9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서 열린 선진 20개국 모임(G-20) 참가국들이 달러 약세를 용인한다고 동의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미국은 과거나 지금이나 세계 최대 경제국가다. 만약 미국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전 세계 나머지 나라들도 위기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따라서 미국이 전 세계 경제 회복의 선봉장이 될 수 있도록 전 세계가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2011년 8월 이후 달러는 점차 강세를 띠었다. 유럽과 중국 등 나머지 나라들의 통화는 상대적으로 가치가 떨어졌고 통화 약세로 실물경제를 부양할 수 있었다. 이 과정은 단기간에 일어났지만, 문제는 미국이 위기 이전의 경제성장 경로를 회복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위기 이전 연 평균 3.25% 성장세였지만, 이후 2.3%대에 머물고 있다.

리카즈는 "2011년 이후 통화약세는 순번을 돌아가며 하는 사안이 됐다. 2010년대 초 유럽에서 재정위기가 발생하자 경제성장 동력 확보와 금융시스템 안정을 위해 달러 대비 유로화의 가치를 낮추도록 허용됐다"며 "하지만 선진국 중 어느 나라도 환율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지속가능한 성장동력을 찾아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미국 입장에서 중국은 지속적으로 무임승차한 경우다. 위안화는 달러와 느슨하게 연동되고 있지만, 주기적으로 위안화 약세를 통해 경제적 이득을 가져가곤 했다. 중국은 2015년 8월과 12월 갑작스런 위안화 절하 방침으로 전 세계 금융시장을 출렁이게 만들었다. 당시 미 증시는 11%까지 하락하는 등 피해를 입었다.

중국은 지난 6개월 동안 위안화 가치를 10% 정도 서서히 낮췄다. 미국 증시는 최근 다시 하락하기 시작했다.

리카즈는 "트럼프 대통령과 므누신 장관은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며 "유럽은 이제 유로화 강세를 조성해야 하는 순번이 됐고, 중국은 환율 조작 혐의로 조치를 당하게 될 것이다. 즉 달러 약세 국면이 조성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달러 약세 국면을 연준과 연합해서 할지, 아니면 재무부 단독으로 할지는 지켜봐야 할 문제"라며 "하지만 현재로선 달러 약세가 미국의 고질적인 경제성장 둔화세를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방책"이라고 지적했다.

유로-달러 환율은 올해 2월 1유로당 1.25달러대를 기록한 이후 4월부터는 1유로당 1.13~1.18달러 대의 좁은 범위에서 움직이고 있다. 리카즈는 "유로화는 향후 몇달 동안 상승 압박을 받아 1유로당 1.20~1.30달러대로 올라갈 것"이라며 "미국 경제성장이 둔화되면서 연준은 기준금리 인상을 잠시 지연하게 될 것이고, 유럽중앙은행(ECB)은 긴축정책을 계속 유지할 것이다. 그리고 미국 재무부가 환시장에 개입하면서 달러 약세를 만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달러 약세는 지난해말 대규모 감세안 이후 미국 경제에 또 다른 성장동력을 제공하게 될 것"이라며 "이는 결국 2020년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가도를 돕는 도구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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