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국가통일공원' 문이 열렸다

2018-11-15 11:09:14 게재

미군기지 시민개방에 용산구·주민 들썩

버스투어 2분 만에 마감 … 국민적 관심

"1972년부터 용산에 살면서 미군부대 안쪽을 방문한다는 생각은 꿈에도 못했죠. 역사를 잘 모르는 나도 금세 느낄 수 있었어요. 어린 학생, 젊은 청년들이 오면 훨씬 더할 거예요."

114년간 닫혀있던 '금단의 땅'이 일반 시민에 개방됐다. 곧 국가공원으로 변신할 서울 용산구 용산 미군기지 얘기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가 이달 '용산기지 버스투어'를 시작하면서 높은 담장 안쪽에 발을 디딘 주민들은 근현대사 아픔을 치유할 국가통일공원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첫 국가공원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반영하듯 전국에서 버스투어 문의·신청이 폭주하기도 했다.

이낙연 국무총리와 성장현 서울 용산구청장, 용산구 주민 등이 첫 국가공원으로 탈바꿈할 용산기지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 용산구 제공


용산 미군기지는 1904년 일제가 러일전쟁을 기점으로 일대를 강제수용, 조선주차군사령부 주둔지로 사용하면서 일반인 출입이 금지됐다. 당초 1000만㎡ 계획에서 389만㎡로 규모가 줄긴 했지만 일본에 이어 광복 이후에는 미군이 인천상륙 직후 용산기지에 진주, 지금까지 금단의 땅으로 남아있다. 유럽의 한적한 중소도시처럼 단층주택과 여유로운 공원 등으로 꾸며진 기지는 서울 복판에 있지만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속한다.

2005년 국가공원 조성계획이 공식화됐고 지난 6월 주한미군사령부가 경기도 평택으로 이전하면서 틈새가 생겼다. 부지 반환 이전에 국민들이 용산기지를 직접 둘러보면서 국가공원에 대한 그림을 함께 그릴 수 있도록 국토부와 국방부 서울시 등이 협의, 용산기지 버스투어를 마련했다. 지난 2일 김현미 국토부장관과 박원순 서울시장, 박순자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위원장이 전문가 등과 여행을 개시했고 8일에는 이낙연 국무총리가 김용자 원효로1동 주민자치위원회 간사 등 지역 주민들과 함께 방문했다.

기지 전체가 반환되기 전인 만큼 둘러볼 수 있는 공간은 제한적이다. 일본군 작전센터였던 사우스포스트(SP) 벙커, 총독관저 터인 121병원, 일본군 감옥이었던 위수감옥, 일본군 장교 숙소였던 주한미합동 군사업무지원단, 한미연합사령부 등이다. 김천수 용산문화원 연구실장이 오랜 연구경험을 토대로 시설 안내를 맡았다. 북한산에서 종묘를 거쳐 동작 관악까지 잇는 생태축에 포함된 둔지산, 무악재에서 발원해 염천교 원효로를 따라 흐르다 원효대교 인근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만초천 등 생소한 역사 이야기가 이어졌다. '조선시대 제례 시설인 남단 구릉지를 정밀 발굴하면 사직단처럼 가치있는 공간이 된다'거나 '기지 내 도로가 실상은 도성을 빠져나온 조선통신사가 통과했던 옛 길'이라는 설명도 덧붙여졌다.

낯선 시·공간 여행은 2시간여에 마무리되지만 주민들은 훨씬 긴 여운이 남는다고 입을 모은다. 김용자 간사는 "남단 비석이 한때 삼겹살을 굽는 불판으로 활용됐다는 얘기를 듣고 가슴이 아팠다"며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 미군 주둔까지 역사를 고스란히 복원해 교육의 장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동철(71·한강로동)씨는 "좀더 긴 시간, 세밀하게 들여다봤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면서도 "공원을 조성할 때 오랜 역사적 흔적을 보전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16일과 30일 전문가와 주민에 이어 다음달에는 일반 국민에도 용산기지 일부가 공개된다. 선착순으로 38명씩 참가자를 모집하는 다음달 여행은 2분만에 마감됐다. 용산구 관계자는 "신청을 받기 전부터 전국에서 문의가 쇄도했다"며 국민적 관심을 전했다.

용산구는 첫 국가공원이 국가공원을 넘어 시대적 아픔을 승화시키는 국가통일공원으로 조성되도록 주민들과 머리를 맞댈 계획이다.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버스투어가) 이 땅의 역사와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며 "일제강점기를 거쳐 분단의 아픔이 고스란히 배여 있는 이 땅이 국가통일공원으로 조성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성 구청장은 "용산기지를 온전하게 국민 품으로 돌려주어야 하는데 미군 시설이 잔류하는 건 옳지 않다"며 "부지 밖으로 이전할 수 있도록 주민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겠다"고 덧붙였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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