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부 금융개혁 사실상 '없던 일로' … 규제풀기만 '바쁨'

2018-12-12 11:08:58 게재

금융사 지배구조·금융소비자보호 '말로만 혁신'

은산분리 완화는 '착착' 금융당국은 밥그릇싸움

국회 정무위 금융개혁법

무더기 계류, 심사도 못해

문재인정부가 대선공약 및 금융혁신 과제로 제시했던 각종 개혁과제가 사실상 힘들어졌다. 금융사의 지배구조를 합리적으로 개선하고, 금융소비자의 권리를 보호하겠다면서 각종 혁신안을 내놨지만 국회에서 제대로 심사조차 못하고 있어서다.

이에 반해 정부여당의 원래 노선과는 정반대인 각종 규제완화는 신속하게 처리하고 있다.


◆금융개혁 제도화, 가물가물 = 국회 정무위에는 금융관련 입법이 무더기로 계류돼 있다. 대체로 문재인정부가 내세웠던 △금융지배구조의 개선 △금융소비자 보호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분리 등을 담고 있다.

지난해 5월 발의한 '금융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과 올해 9월 발의한 '금융회사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은 정부가 직접 발의한 몇 안되는 법안이다. 특히 금융회사지배구조법은 일부 금융지주회사 등의 이른바 '셀프 지배권 확립'이라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내놨다.

지난해 말과 올해 초에 걸쳐 일부 금융지주사의 CEO가 자신이 앉힌 사외이사들에 의해 재선, 3선되는 상황에서 적절한 통제가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내놓은 법안이다.

대표적으로 '대표이사 등의 임원후보추천위원회에 대한 영향력을 제한'하도록 하는 방안이다. 정부가 제출한 법안에는 "금융회사의 주요 임원 추천 과정에서 임원후보추천위 위원의 3분의 2 이상을 사외이사로 구성한다"거나 "위원 본인을 임원으로 추천하는 결의에는 본인의 의결권 행사를 금지한다"는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재벌그룹의 금융회사에 대한 지배권을 관리하기 위한 통합감독 법안도 사실상 정부가 내놓은 법안이다.

지난달 더불어민주당 이학영 의원 등이 입법발의한 '금융그룹통합감독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이 법안에는 △자산 5조원 이상인 복합금융그룹 감독대상 지정 △금융계열사에 대한 추가적 자본 적립 △비금융계열사와 금융계열사 임원 겸직 금지 등을 담았다.

현정부가 야당시절 재벌개혁의 일환으로 추진했던 '보험업법' 개정안도 물거너가는 분위기다. 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대표발의한 이 법안에는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삼성전자 등의 제조업 계열사 주식을 보유하면서 예외적으로 특혜를 받고 있는 것을 원칙에 맞게 되돌려 놓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른바 '삼성생명법'으로도 알려진 이 법은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을 5년 내에 대거 내다 팔아야 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공약과 거꾸로 가는 규제완화 = 문재인정부의 공약과 혁신안이 잠자고 있는 가운데 규제를 대폭 풀어주는 법안은 신속하게 처리하고 있다. 인터넷은행에 대한 은산분리 원칙 완화가 대표적이다.

국회는 지난 9월 산업자본의 은행지분 소유를 제한하는 이른바 '은산분리' 원칙을 비켜가는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및 운영에 관한 특례법' 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이 통과되면서 정보통신업 등으로 제한을 두고 있지만 일부 산업자본이 인터넷은행의 지분을 34%까지 보유할 수 있게 됐다. 기존에는 은행법에 따라 산업자본은 4% 이상을 보유할 수 없었다. 법안 통과 과정에서 민주당 내부에서는 박영선 박용진 등 일부 의원의 반발이 있었지만 규제완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이라는 문 대통령과 금융위원회의 주장이 강하게 작용했다.

정부는 최근 금융회사가 가지고 있는 개인정보 등을 활용해 다양한 핀테크 사업을 활성화한다는 명목으로 개인정보보호법 개정도 추진하고 있다. 이처럼 현정부가 당초 내세웠던 금융개혁에서 후퇴하자 진보적인 시민단체와 학계를 중심으로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 주최 토론회에서 "금융위원회를 해체해야 한다"는 발표문을 냈다가 삭제를 요구받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현정부의 금융개혁이 뒷걸음질치면서 민주당 안에서도 자포자기 상태가 확산되고 있다. 국회 정무위 소속 한 민주당 의원은 "청와대와 당 지도부가 야당할 때 주장했던 것과 완전히 다른 얘기를 하고 있어 안타깝다"며 "지금으로서는 금융쪽 개혁은 더 이상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국회 정무위 한 관계자도 "올해 정기국회와 12월 임시국회가 금융개혁의 사실상 마지막 기회"라며 "앞으로 12월 임시국회가 열릴지 불투명하고, 열리더라도 여야간 합의가 쉽지 않아 법안이 통과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금융개혁이 총체적인 후퇴를 하는 가운데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사이의 밥그릇 싸움도 논란이다. 금감원노조가 최근 '금융위 해체'를 공개적으로 주장하고, 금융위는 예산권 등을 통해 금감원을 통제하려는 시도가 드러나는 등 두 기관이 물밑에서 치열하게 다투고 있기 때문이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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