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한 시간 그대로 타임리포트에 못써"

2018-12-13 10:50:24 게재

빅4 회계법인 주52시간

형식적 준수 불만 높아

회계사들 노동강도 성토

청년공인회계사회와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이 최근 회계사들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강도 높은 노동시간 등에 대한 성토의 목소리가 컸다.

내년 주52시간 근무상한제의 본격 도입을 안두고 소위 '빅4'인 대형회계법인에 근무하는 회계사들은 회계법인이 실제 근무시간과 달리 주52시간에 맞춰 형식적으로 근무시간을 작성하게 하는 등 편법이 난무한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지난달 16일 정부서울청사 정문 앞에서 열린 공인회계사 증원 반대 집회에서 참가자들은 회계사 증원 반대와 함께 감사환경 개선 등을 요구했다. 연합뉴스 정하종 기자


13일 청년공인회계사회와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이 공인회계사 6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설문조사에서, 회계사들이 자유롭게 개진한 '기타의견 항목'을 분석한 결과 주52시간 준수를 위해 법인이 회계사들에게 거짓 기재를 강요하는 내용과 초과근무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법인 대표와 파트너들이 압박" = 빅4 소속 회계사들은 기타의견에 "일한 시간을 그대로 타임리포트에 쓸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아직 기말이 도래하지 않은 현재에도 (주52시간이) 지켜지지 않은 채 타임시트만 52시간을 강요 중인데, 과연 이 곳이 나아질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적었다.

이들은 또 "현재 포괄임금제에서 52시간 준수의 명목하에 일한 시간을 다 입력 못한다"며 "작년 시즌 동안 몇 시간 야근을 하든 10시간을 초과해서 올린 적이 없다. 초과근무에 대해 제대로 보고하고 보상받길 원한다"고 말했다.

한 회계사는 "분반기 시즌, 기말시즌, 용역 시즌 때 법정 최대 근로시간인 52시간을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52시간 이상 근무하지만 파트너 및 대표들의 압박, 시스템 설계로 인해 52시간 이상의 타임을 입력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회계사는 "클라이언트별 수익성 관리차원에서 실제 일한 시간을 타임에 기재하지 못하게 하는 파트너들이 너무 많다"며 "이런 행태가 근절되지 않을 경우 초과근무에 대한 보상은 유명무실해 질 것"이라고 말했다.

회계사들은 기업의 외부감사업무가 집중된 감사시즌과 비감사시즌의 구분이 사실상 없어져서 탄력근무제 역시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회계사는 "시즌 비시즌의 개념이 과거에는 뚜렷했는데 현재는 그 구분이 없다"며 "추가업무에 대해 조건없이 시간을 쓸 수 있고 추가 수당을 받을 권리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업무의 할당이 감사에 용역까지 같이하면서 비시즌도 시즌처럼 일하고 있다", "이미 특정기간에는 비시즌임에도 52시간을 초과했는데 회사는 개인별 모니터링 등 52시간 준수 의지가 없다" 등의 의견이 잇따랐다.

◆빅4 회계법인에 노조설립 희망 = 회계사들은 주52시간제도 시행과 관련해 현장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데 회계법인이 대책조차 논의하지 않는 것 자체를 심각한 문제로 보고 있다. 삼일회계법인에 노동조합이 생긴 것과 관련해 "한영과 삼정, 안진회계법인에도 노동자의 권익을 대표하는 노동조합이 설립되길 바란다"며 부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기타 의견에서는 다른 빅4들과 달리 한영회계법인을 직접 적시하면서 불만을 드러낸 경우가 많았다.

빅4 이외의 로컬 회계법인에서도 회계사들의 불만은 비슷했다. 50명 이상의 회계사들이 근무하는 회계법인의 한 회계사는 "유연근무제 시행에 따른 초과시간 기록과 보상이 철저히 관리 시행되도록 해야 한다"며 "회계법인의 파트너들은 무언의 압력과 회유 및 분위기로 유연근무제의 무력화를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50인 미만 중소형 회계법인에 근무하는 회계사는 "직업의 특성상 업무성수기에 과도한 업무강도와 비성수기에도 들쭉날쭉한 근무시간과 업무강도는 단순히 회계사의 숫자가 늘어난다고 개선될 문제는 아니다"라며 "근본적인 회계사의 업무환경과 감사환경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회계사 31.8%, 성수기에 하루평균 15시간 근무 = 한편 이번 설문조사에서 회계사의 31.8%는 기업의 감사보고서 등 업무가 몰리는 시기에 하루평균 15시간을 일한다고 답했다. 12시간이 52.7%로 가장 많았고, 8시간은 1.8%에 불과했다.

빅4 회계법인의 노동강도가 가장 높았다. 이들은 업무성수기에 15시간 이상 일한다고 답한 비율이 32.0%였고 12시간 일한다고 답한 비율도 53.1%에 달했다. 입사 3~5년차인 시니어 직급에서 노동강도가 가장 높았다. 업무성수기에 15시간 일한다고 답한 비율이 39.4%, 12시간에 답한 비율은 53.5%로 많았다.

설문에 참여한 회계사들 중 업무성수기에 주당 평균 근무시간이 100시간을 초과하는 비율은 16.0%였고 80시간 초과~100시간 이하의 비율은 39.7%에 달했다.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은 "업무성수기때 주당 평균 법정 노동 한도시간(64시간)을 초과해 일하는 회계사 비율은 81.9%"라며 "대형 회계법인에 다니는, 직급이 낮은 회계사일수록 1년 중 4~5개월은 법정 근로시간을 넘기면서 일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탄력적 근로기간제가 현행 최대 3개월에서 6개월로 늘어나도 회계법인이 근로기준법을 지키기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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