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예타면제(예비타당성조사 면제)'에 지자체 '웃을까 울까'

2018-12-18 11:02:46 게재

제도 개선 목소리 높지만 현실 외면 못해

"경제성 낮은 숙원사업 해결 유일한 기회"

경실련 "이명박정부 4대강사업과 판박이"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이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여부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결정 방식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당장 눈앞의 이익을 외면할 수 없어서다.

정부가 17일 국가균형발전을 명분으로 조만간 지자체들이 신청한 사업의 예타 면제 여부를 결정하기로 한 데 대해 지자체들이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충청권 한 지자체 관계자는 "제도 개선은 않고 예타 면제를 시혜처럼 베푸는 것은 지자체를 줄을 세우려는 것으로밖에 안 보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호남의 한 지자체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낙후도를 반영한 종합분석 정량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들어주지 않는다"며 "기회 있을 때마다 제도개선을 요구하지만 중앙정부는 들은 시늉도 않는다"고 말했다. 다른 지자체들도 예타 제도에는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



하지만 지자체들은 이런 속내와는 달리 당장은 자신들이 신청한 사업이 예타 면제 사업에 포함되는데 사활을 걸고 있다.

인천시는 예타 면제 사업 때문에 시와 자치구, 정치권이 모처럼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송도에서 시작하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B노선에 대한 예타 면제를 일제히 요구하고 나섰다. 인천 외에 노선이 지나는 서울과 경기 지자체들도 가세했다. 인천 연수구를 비롯한 12개 지자체들은 GTX-B 건설을 촉구하는 100만인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일부 국회의원들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을 불러 노선이 지나는 주민들 앞에 세우고 사업 추진을 압박하기도 했다. 인천 송도국제도시 주민들은 17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GTX-B 예타 면제, 간절히 부탁드립니다'라는 청원을 올렸고, 이날 하루에만 9000명이 넘는 동의를 얻었다. 인천시 한 관계자는 "정상적으로 예타를 통과하려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통과 여부도 불확실한 게 사실"이라며 불가피한 상황을 설명했다. 이 사업 예산은 5조9000억원이다.

충남권은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사업에 목을 매고 있다. 충남~충북~경북 12개 시·군을 철도로 연결하는 사업인데 처음부터 경제성 부족이 우려됐다. 해당 시·군 가운데 일부 지역이 낙후하다보니 경제성이 나오기 쉽지 않다. 해당 시·군들은 오히려 이 점을 예타 면제 사유로 들고 나섰다. 지자체들은 "서해안 신산업 벨트와 동해안 관광벨트 연결로 국토의 균형발전, 12개 시·군의 발전을 견인할 수 있는 신성장동력을 창출하는 것은 물론 낙후 지역의 교통접근성을 획기적으로 해소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지자체들이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제출한 예타 면제 사업은 모두 37건이고, 사업비는 서울시가 요청한 동부간선도로 확장 사업을 빼고도 70조원이 넘는다.

시민사회는 천문학적 예타 면제를 추진하려는 정부를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17일 "지자체별 나눠먹기식 예타 면제로 나라 곳간을 거덜 낼 작정이냐"며 "무분별한 토건사업을 위해 혈세낭비에 앞장서는 문재인정부를 규탄한다"고 지적했다.

경실련은 지자체 예타 면제 사업을 이명박정부 때 4대강사업(예산 22조원)에 빗대고 있다. 경실련은 "지자체가 요청한 예타 면제 토건사업 중 절반만 받아들여도 30조원이 넘는다"며 "문재인정부가 적폐라 주창해온 이명박정부를 똑같이 따라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신일 곽태영 윤여운 방국진 최세호 기자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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