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뛰놀고 청년들 공부하는 공공청사

2019-01-07 11:20:25 게재

도봉구 구청사에 '주민의 집' 구민청 조성

딱딱한 행정기관 탈피 주민참여 통로 활용

"지나가다 가끔 들러요. 더위 피하고 추위 녹이는 거죠. 차 한잔 하면서 창밖에 도봉산만 보다 가도 좋아요."

서울 도봉구에 사는 이동자(63·도봉1동)·나성금(63·도봉2동)씨가 요즘 즐겨 찾는 공간은 방학동 도봉구청이다. 민원서류를 떼거나 인허가 신청을 할 일은 없지만 마실 나오듯 구청에서 만나 수다를 떨며 잠깐의 여유를 즐긴다. 구에서 지난 10월 선보인 주민 공유공간 '도봉구민청'이 만남의 장이다.

서울 도봉구가 구청사 내 빈 공간을 활용해 주민들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구민청을 마련했다. 이동진 구청장이 놀이방에서 인공 암벽등반을 하는 어린이들을 돕고 있다. 사진 도봉구 제공


도봉구가 구청을 단순한 공무원 일터에서 주민들이 공유하는 공간으로 바꿨다. 구청사에서 빈 공간을 찾아내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까지 14개에 달하는 '집 안의 집'을 마련, 주민들이 담소를 나누거나 책을 읽고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다. 서울시민청을 본뜬 형태지만 어린아이부터 노년층까지, 주민과 공무원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이색적인 공유공간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도봉구민청은 지난 2015년 7월 서울시 주민참여예산 7억5000만원을 확보하면서 구체화됐다. 이듬해 2월 구청 증축계획을 수립, 지난 8월까지 총 사업비 27억6400만원을 투입해 지하 1층 지상 3층, 연면적 1811㎡ 규모 공간을 마련했다. 두달여동안 내부장식을 마무리해 10월 말부터 시범 운영 중인데 하루 평균 이용 주민이 150여명에 달한다.

지하 1층은 열린 공간. 상설 전시와 공연 등 각종 행사를 진행한다. 1층 공용 공간에서는 공용 부엌이 우선 눈길을 끈다. 부엌이라 해도 조리시설은 없고 싱크대와 찻잔을 보관하는 선반이 전부인데 공공청사 내 '플라스틱 없애기'에 일조하는 공간이다. 청사 내 찻집을 이용할 때 공용 부엌에서 컵을 빌려 쓰거나 개인용 텀블러를 사용한 뒤 씻을 수 있도록 했다.

아이들 놀이방은 가장 인기있는 공간이다. 하늘을 담도록 창을 넓게 내고 알록달록한 색감의 재질로 꾸몄다. 벽면에 어린이용 인공 암벽등반 시설을 설치하고 간단한 놀이기구 책 등을 비치했는데 아이들 놀이 겸 부모들 만남의 장으로 이용하는 주민이 많다. 이동진 도봉구청장은 "어린이집이 끝난 뒤 손자손녀를 데리고 찾는 할머니들이 많다"며 "주민들이 구민청을 어떻게 활용할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기증한 책으로 꾸민 서가와 탁자 의자를 비치한 협업공간과 2층 세미나실 바깥에 단출하게 마련한 책걸상도 활용도가 높다. 경로당에서 어울리기엔 '어리고' 비싼 돈을 들여 찻집을 찾기는 어려운 중·노년층이 걸음을 했다가 각종 문화행사에 동참한다. 청년들은 조용히 공부를 하거나 취업과 학업에 필요한 자료를 검색하는 공간으로 활용한다. 김용현 도봉문화재단 상임이사는 "낮시간에는 공무원들이 삼삼오오 차를 마시거나 부서간 가벼운 회의, 방문객과 친교를 위해 좌석을 점유한다"며 "주민뿐 아니라 공무원도 구민청을 공유하는 셈"이라고 전했다.

구민청은 주민참여 통로이기도 하다. 서가에 꽂은 책을 비롯해 세미나실 장식물 등 살림살이부터 주민 참여로 장만했다. 특히 양말공장에서 발생하는 부산물로 만든 방석과 냄비받침 등이 눈길을 끈다. 전국에서 생산되는 양말 30~40%가 '도봉구산'인 점에 착안, 부산물을 활용한 수공예품 과정을 진행하면서 구민청에 기증할 작품을 하나씩 더 만들도록 유도했다. 현재 문화재단에서 위탁운영을 하고 있지만 주민 운영단·홍보단을 구성, 역량을 기른 뒤 궁극적으로 주민들이 자신들의 공간으로 꾸려가도록 할 계획도 있다. 이동진 구청장은 "1층부터 3층에 있는 14개의 방은 도봉구 14개 구를 의미한다"며 "집 안의 집이자 주민의 집이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구청사뿐 아니라 동주민센터도 행정기관이 딱딱함을 벗고 주민 활동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쌍문1동 효자마루, 방학2동 너나드리 등 업무공간을 줄여 마련한 마을활력소다. 2016년부터 6개 동주민센터에 활력소를 마련했고 공공청사에 공간이 없는 경우 '지상철'이 지나는 역사 하부 등을 활용해 공간을 운영 중이다.

이동진 도봉구청장은 "공무원들이 자발적으로 동장실을 없애거나 줄이고 주민들에 열린 공간을 마련하기도 한다"며 "행정기관이 주민참여 통로이자 긍정적인 활동공간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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