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5주년 특별기획 - 국책연구기관장에게 듣는다│조흥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

"저소득층 대부분 노인·청년, 확장재정 필요"

2019-01-17 11:17:17 게재

사회안전망 확충하면 교육문제도 풀려

출산은 여성 선택의 문제, 미래 희망 줘야

주거·의료·교육·사회서비스는 '탈상품화'

북한 사회보장수요·포용국가정책 연구

"노인빈곤과 청년실업 문제 해결을 위해 특단의 확장적 재정정책이 필요합니다."

사진 남준기

조흥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사진)은 16일 내일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소득불평등이 악화되고 있는 원인을 '노인과 청년의 빈곤화'에서 찾으며 이같이 밝혔다. 재정여력이 있는 만큼 적어도 몇 년간 확장적 재정정책을 통해 소득불평등을 해소해야 내수도 살고 경제도 좋아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또 "규제를 완화해야만 혁신성장이 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주거와 의료, 교육, 사회서비스는 '탈상품화'해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원장은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지내며 한국사회정책학회장, 한국사회복지학회장, 참여사회연구소장, 참여연대사회복지위원장 등을 역임하는 등 우리나라 사회복지분야 전문가다. 지난 대선에서는 문재인 당시 민주당 후보의 복지공약을 만드는 데 핵심역할을 했다. 조 원장으로부터 문재인정부의 보건의료 및 복지정책 방향 등에 대해 들었다.

■ 문재인정부의 소득주도성장정책에 대한 비판이 많다. 실제 소득불평등은 오히려 악화됐는데

통계 모집단이 바뀌어서 직접 비교하기는 힘들지만 지난해 소득을 5분위로 나누면 1·2분위(하위 40%)의 소득은 줄고, 3~5분위 소득이 증가해 결과적으로 소득불평등이 더 나빠진 건 맞다. 체감적으로 그렇다.

그런데 왜 소득불평등이 심화됐느냐를 따져봐야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부터 우리가 대기업, 수출 중심에서 중소기업, 내수를 더 확대시켜야 했는데 아직도 내수비중이 20%를 겨우 넘는 정도다. 그러다보니 금융위기 이후 경제가 어려워지고 저임금의 비정규직이 많아지면서 불평등이 심화된 측면이 있다. 또 우리나라는 소상공인과 자영업 등의 비중이 너무 크다. 중진국 이상, 수출을 많이 하는 나라 중에서 자영업이 20%를 넘는 나라는 우리말고는 없다.

소득 1·2분위에 두 부류의 사람들이 많이 속해있는데 하나는 고령자다. 60대 이상, 소득이 거의 없는 계층이다. 우리나라 노인빈곤율은 한때 49%에 달했고, 최근 3년 동안 줄인다고 줄인 게 45.7%다. 세계가 놀랜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이 12% 정도다.

다른 부류는 '에코세대'인 20대 후반~30대 초반 청년들이다. 베이비부머가 낳은 2차 베이비부머 세대다. 인구가 많아지면서 취업이 어렵다보니 빈곤해진 것이다.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정책으로 추진한 게 최저임금 인상과 주52시간 근로제 등인데 3분위 이상 정규직 노동자에게는 좋은 정책이지만 1·2분위 노동자, 또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에게는 오히려 부담이 되거나 미스매치가 되는 부분이 있었다. 방향은 옳지만 이런 부분을 좀 더 정교하게 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 문재인정부 복지정책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나.

'문재인케어'에 대해선 이미 국민들이 상당히 만족해하고 있다. 문재인케어는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을 급여로 전환해 보장 폭을 넓히는 것이다. 처음에는 의료계 반발도 있었지만 지금은 잘 진행되고 있다. 문재인케어는 의료 지출을 줄여 실질 소득을 높여주는 것으로 사실 소득주도성장정책 중 하나다. 언론이 소득주도성장을 비판하는데 문재인케어처럼 잘 되고 있는 것에 대해선 이야기 하지 않는다.

복지부는 또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복지를 공동체적으로 펼치는 '커뮤니티 케어'(지역사회 통합돌봄모델)를 올해부터 8곳에 시범사업으로 진행하는 등 여러 가지 복지 프로그램도 추진하고 있다.

서비스보장도 올해부터 조금씩 추진한다. 서비스보장은 소득을 지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폭력문제나 범죄로부터의 보호·상담, 교육, 직업훈련 등 서비스를 통해 사회안전망을 제공하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현금으로 직접 지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서비스보장은 사회안전망에서 아주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아직 서비스보장이 약하지만 점차 확대해 조금씩 체감하게 될 것이다.

■ 복지확대는 결국 재정과 연결되는데

OECD는 물론이고 세계은행이나 IMF(국제통화기금)처럼 재정건전성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국제기구에서도 요즘 우리나라에 빨리 노인빈곤 해소하고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그런데 여전히 기획재정부와 경제부처에서는 재정건전성만을 중시한다. 재작년에 22조원, 작년에도 26조원 가량 세수를 더 걷었는데 특단의 재정확대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소득 불평등이 계속 심화되고 있지 않나. 정부가 복지예산을 늘렸다고 하지만 여전히 OECD 평균에는 절반도 안된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재정건전성이 좋은 나라다. 여력이 있다.

■ 정부가 포용국가를 강조하고 있는데 어떤 정책들이 필요하다고 보나.

문재인 대통령도 포용국가를 강조하고 있는데 결국 재정이나 연금의 건전성이 먼저냐, 국민들의 삶의 보장성이 우선이냐의 문제다. 국제기구의 요구도 그렇고 초과세수 등을 봐도 확장재정을 펼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도 46~47%에 달하는 노인빈곤율을 그대로 둘 것인가. 우리나라 노인들이 받는 연금이 일본의 5분의 1 밖에 안된다. 노후생활이 보장이 안되니 50대부터 불안해지고 지갑을 열지 못한다. 그러니 돈이 돌지 않는다. 청년실업도 빈곤으로 이어지고 있다. 노인빈곤과 청년실업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적어도 몇 년간 특단의 확장적 재정정책을 펴야 한다.

■ 저출산 문제의 원인은 어디 있다고 보나. 해법은 무엇인가.

'저출산고령사회'라고 하다보니 흔히 저출산 문제를 인구의 문제로만 보려고 한다. 그런데 저출산 문제와 고령사회 문제의 해결 방식은 완전히 달라야 한다. 고령사회의 문제는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기 때문에 복지정책으로 해결이 된다. 그러나 저출산은 선택, 특히 여성의 선택의 문제다. 옛날처럼 '2명 낳아라', '3명 낳아라' 할 수 없다. 여성이 희망이 있고 또 본인이 살만하다고, 불행하지 않다고 느낄 수 있어야 애를 낳게 된다. 내가 불행한데, 또 내 자식도 불행한 사회에서 살게 된다면 누가 아이를 낳겠나. 2017년 기준 서울의 출산율이 0.84명인데 세종시는 1.67명에 달한다. 왜 이렇게 차이가 나겠나. 세종 주민은 거의 다 공무원 아니면 연구원 박사들이다. 정규직이 80% 이상이다. 또 국공립 유치원이 90%에 달한다. 여성이 행복하고 아이의 미래에 대한 보장이 되는 환경을 만드는 데서 저출산 문제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해 보건의료체계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는데

복지국가일수록 탈상품화시키는 4가지가 있다. 첫째가 주거다. 영국 같은 나라는 아주 부자들이나 특별한 지역을 제외하고는 공공임대주택을 많이 지어 가난한 사람들도 거주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주거로 제일 돈벌이를 하기 좋은 나라가 되어 버렸다.

두 번째가 의료다. 건강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아픈 사람은 같이 돌봐줘야 한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대학입시라는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 입시제도에 대해 물으면 부모들이 다 자기 자식 성적에 맞춰서 의견을 낸다. 그러니 해답을 찾을 수 없다. 다른 차원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사회안전망만 잘 갖춰져 있으면, 또 고등학교만 나와도 임금 격차가 크지 않고 일찍 현장에서 쌓은 경력을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으면 굳이 대학에 가려 하겠나.

다음으로 돌봄서비스, 이게 전문화되면 사회서비스인데 여기에도 영리성이 많이 개입하면 안된다.

의사들이 원격진료에 반대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결국은 병원의 돈벌이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었다. 그러면 가난한 사람들은 치료를 못 받게 될 수도 있다.

마치 규제를 완화시켜야만 혁신성장이 되는 것처럼 얘기들을 하는데 외국에서는 환경이나 안전, 식품과 같은 규제는 오히려 더 강화하고 있다. 규제를 풀더라도 공공성을 기본 전제로 깔고 해야 한다.

■ 보건사회연구원의 올해 중점사업은 무엇인가.

올해가 대한민국 100년, 또 2021년이면 보사연 설립 50년이 된다. 그래서 지난해 원장 취임 당시 강조했던 것이 '법고창신'이다. 옛날을 바라보면서 새로운 걸 만들어내자는 것이다. 과거를 잘 고찰하지 않고 새로운 게 나올 수 없다. 앞으로의 100년을 위해 지난 100년 보건복지의 역사를 연구하려 한다.

두 번째는 남북 보건복지제도에 대한 연구다. 지정학적으로 봤을 때 남북통일은 쉽지 않다. 한쪽에선 중국과 러시아가, 다른 쪽에선 미국과 일본이 가만히 있겠나. 지금 체제를 유지하며 남북간 교류를 넓히고 그러다가 영세중립국으로 가는 것 외에는 통일은 어렵다. 다만 북한의 체제는 분명히 바뀔 것이다. 북측이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요구하고 있지 않나. 사기업이 생기고 사유체제가 등장하면 북한에서도 사회보장 요구가 나오는데 국가의 배급제로는 맞춰줄 수가 없다. 중국도 4대 사회보험이 있지 않나. 체제변화에 따른 북한의 사회보장 수요 예측과 사회보장제도 도입 방안 등도 중요한 연구주제다.

마지막으로 국민 피부에 와닿는 포용국가의 구체적인 정책프로그램을 연구하고 개발하려 한다. 지금 연구하고 있는 것 중에 '프로텍티브서비스'라는 게 있다. 학교폭력, 성폭력, 가정내 방임폭력, 정서적 폭력 등 다양한 폭력으로부터 보호하는 서비스다. 가해자도 처벌만 하는 게 아니라 치료와 상담 등을 통해 개선하도록 한다. 사실 가해자도 알고보면 과거 피해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프로텍티브서비스가 법제화되면 일자리도 창출된다. 이같은 구체적인 프로그램들을 도입하는 방안들을 연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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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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