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강제 수용권 주는 공익성 검토(중앙토지수용위원회) '부실'

2019-01-17 11:35:00 게재

1년 7개월간 부적정 고작 3건

직원 3명이 무려 3935건 처리

개인소유 땅이 무분별하게 강제 수용되는 횡포를 막기 위해 도입된 '중앙토지수용위원회 공익성 검토제도'가 부실하게 운영되고 있다. 심지어 직원 3명이 해마다 3000건이 넘는 인허가 서류를 처리해 사실상 정확한 검토가 불가능한 상태다. 중토위 역시 '법률 보완과 인력보강' 없이는 강제 수용에 따른 사유 재산 침해를 막기에 역부족이라는 입장이어서 법 개정이 시급한 실정이다.


◆서류만 내면 통과? = 이 같은 결과는 내일신문이 단독 입수한 중토위 '공익성 검토제도 시행 1.5년 평가와 주요사례(평가와 주요사례)'에서 확인됐다. 2018년 3월 29일 만들어진 이 자료에 따르면 공익성 검토는 제도가 도입된 2016년 6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모두 3935건이 이뤄졌다. 이중 공익성 부적정이 고작 3건이다. '협의취득 강화 또는 공익성 보완' 역시 123건(3.13%)에 불과하다. 전체 실적 중 95.1%인 3742건이 아무런 의견 없이 그냥 통과됐다. 이로 인해 여의도 면적(2.9㎢)의 34배가 되는 땅이 강제 수용됐다. 국가나 지자체, 민간업체가 강제 수용을 요청할 때 공공성을 평가하는 '공익성 검토제도'가 오히려 땅을 강제로 빼앗는 요식절차로 변질된 것이다.

무사통과가 100%에 육박한 이유는 적은 인력이 해마다 수천 건을 처리해서다. 중토위에서 공익성 검토를 맡고 있는 직원이 겨우 3명이다. 3명도 파견공무원이다. 1명이 하루에 3건 이상을 처리하기 때문에 사실상 정확한 검토가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 진단이다.

직원 증원은 법이 시행된 초기부터 줄기차게 지적됐지만 아직도 개선이 안 된 상태다. 한국부동산연구원 박성규 박사는 "인원이 적고 건수가 많은데 어떻게 정확한 평가를 기대할 수 있겠냐"면서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공익성을 포함한 사업타당성 검토를 1건당 수개월씩 소요하는 것과 비교하면 너무나 큰 차이"라고 지적했다.

중토위도 이 같은 지적을 인정하고 있다.

중토위는 '평가와 주요사례'에서 "한정된 인력(전담 3명)과 검토기간(30일 이내)으로 상정되는 모든 사업에 대한 공익성 검토가 불가능하다"며 인력보강과 검토기간 개선 등을 과제로 제시했다.

◆공익성 보완도 허점 많아 = 중토위가 '협의취득 강화나 공익성 보완'을 요구한 사안도 사업시행자 입맛대로 처리될 가능성이 높다. 중토위 의견을 무시하고 수용을 재차 신청할 경우도 이를 막을 구속력이 없어 취소할 방법이 없다. 더군다나 해당지역 단체장이 지역경제 활성화 명분을 내세워 강제 수용을 밀어붙이면 고스란히 받아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중토위 역시 '평가와 주요사례'에서 "중토위 의견은 인허가권자를 구속하지 아니하므로 인허가가 원칙적으로 유효하다"고 인정했다.

설령 땅 주인들이 협의취득을 강하게 요구하며 집단민원을 내도 사업시행자가 땅값 모두를 법원에 공탁하고 강제수용을 요청하면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게 부동산 업계 설명이다.

공인중개사 법인을 운영하는 장 모씨는 "땅 주인이 정당한 가격을 요구해도 법원에 공탁을 하면 그만이기 때문에 협의취득 강화 의견은 있으나 마나"라고 꼬집었다.

실례로 중토위가 도시공원 전체 면적 중 70%를 공원으로 보존하고 나머지 30%를 아파트 등으로 개발하는 민간공원특례사업에 대해 '협의 취득 노력 강화' 및 '민간사업자 과도한 개발이익 방지 등의 의견을 냈다.

그러나 광주광역시 등 전국 곳곳이 건설업체 이익을 최대한 보장해주는 방향으로 민간공원 특례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시민단체가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하거나 검찰수사를 요청하는 갈등이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재훈 중토위 공익심사계장은 "성실하게 협의를 하라고 의견내고 추진과정을 살펴보지만 강제성이 없다"고 어려운 속사정을 설명했다.

◆강화된 법도 근본처방 안돼 = 정부는 공익성 검토제도가 허점투성이라는 지적에 따라 오는 7월부터 중토위 협의를 의무화하고 개선요구를 강화하는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토지보상법)'을 시행할 예정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이나 중토위조차 이 법이 시행돼도 무분별한 강제 수용을 막을 수 없다고 걱정하고 있다. 박성규 박사는 "설령 중토위가 부적정 의견을 내도 110개나 개별법으로 얼마든지 강제수용을 해서 개발행위를 할 수 있다"며 "개별법과 함께 토지보상법을 더욱 강화해야 공익성을 지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지적을 중토위도 공감하고 있다.

중토위 이재훈 계장도 "토지보상법 등 개별법 개정에 대한 우리 의견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토지 소유자 의견이 최대한 반영되고 공익성을 반영한 수용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용산참사 10주년, 바뀐 게 없다] 계속되는 강제 철거에 피해자 절규 이어져
적은 보상받고 쫓겨난 세입자 '결사항전' 내몰려
23명 상가세입자 끝까지 생존권 싸움

방국진 기자 kjbang@naeil.com
방국진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