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중소기업, 구조조정 해법은 ①

선제적 구조조정 험난, 기업 재무상태 냉정한 평가 못해

2019-01-18 10:30:01 게재

저금리에 '좀비기업들' 버티기 … 재무구조 취약 중소기업 4년 만에 44.2% 증가, 대출해준 은행 영업점 구조조정 반발 결사적

"재무구조가 취약한 중소기업 상당수는 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인 수익으로 공장을 돌리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유보해 놓은 자금이 바닥나면 결국 부동산 등 자산을 매각하면서 버틸 수밖에 없고 한계에 다다르는 올해 하반기부터 급속히 무너질 수 있다."

기업구조조정을 담당하는 금융당국 관계자가 나타내는 우려다. 기업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이고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선제적 대응이 빠를수록 기업 회생의 가능성은 높다. 하지만 선제적 대응을 통한 구조조정은 이론적으로만 가능한 얘기라는 게 전문가들의 말이다.


18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2016년과 2017년 워크아웃에 들어간 중소기업은 89곳이며 지난해 신용위험평가결과 C등급을 받은 기업 48곳 중 얼마나 워크아웃에 들어갔는지는 현재 파악되지 않고 있다. 채권단과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연말에 신용위험평가 결과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신용위험평가는 선제적인 구조조정을 위해 진행된다. 은행 대출을 받은 기업 중 재무구조가 취약한 곳을 대상으로 평가를 벌여 기업을 A·B·C·D 4개 등급으로 분류한다. A·B등급은 정상기업으로 분류되지만 C등급은 워크아웃대상, D등급은 법정관리나 청산 대상으로 평가된다.

2년간 C등급을 받은 기업 중 60% 가량이 워크아웃에 들어간 것을 고려하면 지난해 역시 30여곳 정도만 워크아웃에 들어갔을 개연성이 높다. C등급을 받았지만 기업들이 워크아웃에 들어가지 않는 이유는 대주주 등의 지원을 받거나 자산매각 등을 통해 자금 조달이 가능한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재무구조가 좋지 않아 곧 쓰려질 것 같은 기업들이 다음해에도 여전히 운영되고 있는 사례가 꽤 있다"고 말했다.

영업적자가 이어지고 영업활동으로 이자도 내지 못하는 소위 '좀비기업' 상당수가 구조조정에 들어가지 않은 채 버티고 있다는 얘기다.


◆"영업점 저항 만만치 않아" = 채권단과 금감원이 매년 실시하는 신용위험평가 결과를 놓고 보면 세부평가 대상 중소기업은 해마다 늘고 있다. 세부평가 대상 기업은 3년 연속 이자보상배율이 1미만 이거나 영업현금흐름이 마이너스인 기업 등으로 재무구조가 취약한 곳을 말한다.

2014년 1609곳에서 2018년 2321곳으로 4년 만에 44.2% 증가했다.

하지만 구조조정 대상인 C·D등급을 받는 비율은 2014년 7.76%, 2015년 9.04%, 2016년 8.64%, 2017년 7.64%, 2018년 7.75% 등 세부평가대상의 7~9% 수준에 그치고 있다.

재무구조가 취약한 중소기업들이 신용위험평가에서 일부만 선별되는 이유는 채권은행들이 적극적으로 구조조정 대상을 분류를 하지 못하는 측면과 기업들의 저항 때문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그동안 은행들은 저금리 상황과 맞물려 영업 드라이브를 세게 걸고 있다"며 "은행의 여신감리부는 엄격한 평가를 요구하고 있지만 영업점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그는 "여신감리부가 저항에서 밀리는 이유는 은행이 영업 위주로 드라이브를 걸고 있기 때문"이라며 "은행들이 리스크 관리에 나서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 대출은 일선 영업점에서 나간다. 신용위험평가에서 대출을 해준 기업이 C·D등급을 받으면 고정이하 여신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부실채권비율이 올라간다.

은행들이 신용위험평가를 영업점의 핵심성과지표(KPI)에 반영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실제로 인사에서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영업점의 반발은 결사적이다.

신용위험평가에서 부실징후 기업을 제대로 선별하지 못하면, 구조조정을 통해 살아날 기업이 몇 년 후 D등급을 받아 법정관리나 청산으로 가는 사태가 벌어진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구조조정 추진 과정에서 시중은행의 리스크 회피 경향이 확대되면서 시장안전판 역할 수행을 요구받는 국책은행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도 워크아웃 신청을 주저하고 있다. 대기업에 비해 평판리스크가 적은 중소기업들도 워크아웃에 들어가는 순간 원청업체로부터 수주가 끊어질 수 있어 구조조정을 꺼리고 있다.

◆"보수적 은행으로는 구조조정 역부족" = 채권은행 중심의 현재의 구조조정 틀이 한계에 직면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업이 자금을 조달하는 통로가 다양해지면서 채권자 구성도 과거 은행 중심에서 다양화되고 있다. 여전히 은행이 가장 큰 채권자이지만 과거 채권자 전원이 동의하는 자율협약으로는 더 이상 구조조정을 하기 어렵게 됐다.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이 효력을 상실한 이후 채권은행협약만으로는 구조정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기촉법에 근거한 워크아웃은 채권단의 75%가 동의하면 모든 채권이 동결되고 대출상환이 유예되는 효과가 있어 중소기업들에게 도움이 된다.

하지만 워크아웃의 가장 큰 장점인 신규자금 투입은 쉽지 않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보수적인 은행의 속성상 위험성이 큰 자산에 투자를 하지 않는다. 수익은 낮아도 위험이 적은 곳에 투자한다"며 "그런 측면에서 보면 구조조정 기업에 투자하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은행의 투자방식하고는 맞지 않다"고 말했다.

고위험을 감수하고 들어올 수 있는 자본시장에서 자금조달이 이뤄져야 하는데, 중소기업 대부분은 상장기업이 아니기 때문에 이마저도 쉽지 않다. 그렇지 않으면 기업공개(IPO)를 해야 하는데 재무구조가 좋지 않은 중소기업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금융당국은 과거 대기업 위주의 워크아웃을 진행했고 국책은행들을 동원한 자금조달로 '관치 논란'에 휩싸였다. 하지만 중소기업 구조조정은 완전히 다른 얘기다. 개별 기업의 회생 여부에 금융당국의 개입 자체가 어렵다.

이 때문에 신용위험평가 제도를 개선해 채권은행들이 개별 기업의 위험을 신속하고 제대로 반영하는 것을 독려하고 있다.

채권은행과 금감원은 지난해 11월부터 TF를 구성해 신용위험평가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논의를 진행 중이다. 은행 내부의 위험관리시스템을 통해 상시적으로 부실징후기업을 걸려내는 방식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신용위험평가는 전년도 재무제표를 중심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기업들의 현실적인 위험을 제대로 평가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

비상장기업들은 정기적으로 분기보고서를 내지 않기 때문에 채권은행들이 적극적으로 평가에 나서야 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현재의 구조조정은 결국 채권은행의 문제로 귀결되는데, 은행의 임원들도 단기실적 중심으로 평가를 받는다는 점에서 구조조정에 적극 나서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근본적으로 따지고 들어가면 은행의 지배구조 문제와 연결될 수밖에 없고 은행들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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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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