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수용법 50여개 넘어

2019-01-18 11:25:41 게재

'균형발전' 등 추상적 목적

국민 재산권 침해 가능성 커

한국에서 민간수용은 외국에 비해 매우 광범위하게 허용돼 왔다. 현재 민간수용을 허용하는 개별 법률의 숫자는 '토지보상법' 외에도 무려 50여개에 달한다. 무분별하고 모호한 입법으로 국민의 재산권이 지나치게 침해될 가능성이 커 재산권의 수용과 보상을 규정한 헌법 제23조 3항에 위배될 소지도 크다. 민간수용 옹호론과 비판론 간의 치열한 공방을 넘어 국민들의 신장된 권리의식에 맞춘 민간수용 제도의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의 민간수용, 용이하고 빈도 높아 =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15년 주최한 '현행 공용수용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국제컨퍼런스 자료에 따르면, 김일중 교수는 "민간수용을 허용하는 개별법에 적시된 민간수용의 목적이 '지역개발', '균형발전' 등 추상적인 경우가 허다하며, 사업의 종류도 도로, 아파트, 산업단지, 개별공장, 골프장 등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고 지적했다. 즉, 잘못된 입법으로 국민의 사적 재산이 민간수용에 의해 부당하게 침해될 수 있다는 말이다.

헌법재판소는 수차례에 걸쳐 민간수용 자체에 대한 합헌 결정을 내렸으나, 2014년 말 특정 민간수용 조항(구 '지역균형개발 및 지방중소기업 육성에 관한 법률')에 대해 헌법불합치라는 이례적인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민간에 의한 골프장 건설과 관련된 사건이었는데 '낮은 공공필수성' 및 '모호한 공익성'이 "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하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여야 한다"고 규정한 헌법 제23조 제3항에 위배된다는 것이 헌재 결정의 주요 근거였다.

◆외국의 다양한 추가안전장치 참고해야 = 컨퍼런스에서 기조연설을 맡았던 한스-베른트 쉐퍼 독일 부체리우스 로스쿨 교수에 따르면, 독일법제는 민간수용을 제한적으로 허용하면서 다양한 추가안전장치를 적용하고 있다. 개별사업의 '구체적인 목적'이 명시된 법률이 존재할 때에만 민간수용을 허용하고 수용이후 단계에서는 민간사업시행자의 공공책무성을 강조한다. 엄격한 공익성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거나, 수용을 수반한 특정사업의 구체적인 내용이 법률로서 규정되지 못한 경우는 연방헌법재판소에서 위헌판결을 내려 수용처분을 무효화한다.

미국에서는 2005년 이후 공용수용 패러다임이 급격히 변화해 지역경제발전, 세수 증대 등을 이유로 추진하는 사업에 강제수용권을 주지 못하도록 법 개정이 이어지는 등 무분별한 민간 수용에 대한 통제 장치가 마련됐다.

이윤추구 동기가 상대적으로 강한 한국의 민간수용의 경우, 토지소유자에 대한 보상수준을 공공수용에 비해 높게 책정해야 한다는 것이 한스-베른트 쉐퍼 교수의 지적이다. 그는 "미국과 한국 등 민간수용이 잦은 국가에서는 보상액이 완전보상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 토지를 과다수용하게 됨으로써 비효율적인 용도를 위해 토지가 수용될 개연성도 커진다"고 우려했다.

◆제대로 된 검증 없이 강제수용권 부여 = 김 교수는 "한국이 민간사업자에게 강제수용권을 부여하는 범위는 선진국에 비해 매우 넓으며, 검증이 철저히 이뤄지지 않은 사업에 대해서도 무분별하게 수용권을 남용함으로써 심각한 경제적 비효율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2005~2009년 기간 중 인가된 총 215개 골프장의 약 43%, 2003~2010년 기간 중 인가된 총 259개 일반 산업단지의 약 49%에서 민간수용이 이뤄졌다. 실증분석 결과, 일반산업단지 건설에서는 비정상적 우발상황인 '사업취소 및 사업자변동율'이 공공수용에 비해 민간수용에서 약 2.3배 빈번했고, 골프장 건설에서는 '사업 지연정도'가 시장거래를 통한 토지취득에 비해 민간수용에서 1.7~2.1배나 높게 나타났다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김 교수는 민간수용제도 개선방안으로 △민간수용 사업의 범위 및 사업시행자 자격에 대한 심사 강화 △계획 초기부터 이해 관계자들의 적극적 참여 등 정당절차 요건 강화 △공공수용에 비해 관대한 보상기준 마련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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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열 기자 son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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