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중소기업, 구조조정 해법은 ②

부실기업 빠르게 증가, 치료할 전문 투자자는 턱없이 부족

2019-02-01 10:00:34 게재

유일한 투자주체 유암코, 올해 실탄 바닥 … 주요 투자펀드, 중소·중견 구조조정 외면

삼성과 애플 등에 휴대용 전자기기 부품을 납품하는 A사는 2015년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중국의 후발업체가 경쟁에 뛰어들면서 주요 발주처에 공급하던 물량이 감소하거나 중단되면서 재무상태가 급속히 악화됐다. 당시 금융기관 대출 등이 약 1200억원(협약채권)이고 더 이상 신규자금을 공급받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하지만 워크아웃 개시 후에도 채권단의 의사결정 지연으로 신규 운전자금의 지원이 이뤄지지 않았다. 경영실적이 악화되면서 주요 매입 거래처에 대한 상거래 채무를 지급하지 못했고 다른 채무(비협약채권)의 상환부담도 커졌다.


사방이 꽉 막힌 상태에서 유암코(연합자산관리)의 구조조정본부(구조본)는 당시 채권단과 합의해 A사에 대한 구조조정 투자를 시작했다. 채권단은 유암코의 기업재무안정 사모펀드(PEF)에 채권을 100% 매각했다. 최대 채권자이자 주주가 된 유암코는 A사에 △운전자금 지원 △출자전환을 통한 재무구조조정 △전문경영진 파견 △설비증설을 위한 자본투자 등 구조조정을 위한 제반업무를 수행했다. 무담보채권은 출자전환했다.

유암코에 인수된 후 A사의 지난해 3분기 현재 매출은 전년도(2000억원) 같은 기간 대비 50%(3000억원) 가량 증가했다. 2017년 120억원의 영업손실에서 지난해 영업이익 50억원으로 흑자전환했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유암코는 2015년 하반기에 구조본을 출범시킨 이후 지난해 말까지 17개 PEF를 통해 경영이 어려워진 43개 기업에 약 1조7000억원을 투자했다. 주로 중소·중견기업들이다. 일부 3~4 개 기업이 정상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대부분의 투자기업이 A사처럼 구조조정을 통해 적자구조에서 탈피, 흑자로 전환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작년 회생신청기업 980곳, 구조조정 투자가능 40여곳 = 8개 은행이 출자해서 만든 유암코는 부실채권(NPL) 전문 투자 기관이었지만 구조조정 기능이 추가되면서 자본시장에서 기업 구조조정 투자를 활성화하는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이 살아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이 3~5년 가량 되기 때문에, 아직 자본시장의 PEF들을 구조조정 펀드에 끌어들이지 못하고 있다. 특히 유암코 자체 조달자금 약 1조원을 포함해 1조7000억원을 투자하면서 더 이상 투자할 '실탄'도 바닥나고 있는 상황이다. 유암코의 현재 자본조달 능력을 고려할 때 올해는 약 2000억~3000억원 수준의 추가 투자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자금을 다 투입하면 추가로 10~15여개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가능하다.

은행들이 출자해 운영되는 한국성장금융의 경우 작년 하반기부터 구조조정 전문 운용사를 선정해 구조조정 투자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운용자산 규모를 고려하면 최근 무너지고 있는 중소·중견기업의 구조조정을 담당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개별 운용사의 운용규모를 1000억~2000억원으로 정했을 때 워크아웃 중견기업 3~4곳을 투자할 수 있다. 5개 운용사를 기준으로 했을 때 20~30개 기업에 투자할 수 있지만 더 이상 확대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유암코가 추가로 구조조정할 수 있는 곳을 모두 합해도 최대 40여곳에 불과하다.

지난 1년간 법원에 신청된 기업의 회생신청사건만 해도 980건으로 1000건에 육박하고 있다. 전년도 878건과 비교하면 102개 기업이 더 늘었다.

유암코는 지난해 상반기에 기관투자자(연기금, 공제회 등)을 대상으로 구조조정투자 펀딩을 진행했지만 기관투자자들의 참여율이 저조해 일부 금액만 조달을 했다. 하지만 부산·경남에 위치한 조선기자재·자동차부품 회생기업들의 구조조정 투자 요청이 급증하면서 중장기 구조조정 투자계획과 자금조달 방안을 수립해야 하는 상황이다.

유암코는 지난해 부산·경남에서 자본시장을 통한 구조조정 투자유치 관련 세미나를 진행한데 이어 올해는 수도권 기업들을 상대로 구조조정 프로모션을 진행할 예정이어서 기업들의 구조조정 관련 투자수요는 더욱 늘어날 예정이다.


◆구조조정 사각지대, 중소·중견기업 = 대기업은 자체적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하거나, 부실에 따른 사회적 파급력이 크기 때문에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 중심의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중소·중견기업은 정부와 채권은행, 시장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구조조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구조조정 투자펀드 등이 분류한 기업구조조정 활성화 대상 산업 그룹은 크게 △자동차 △조선·플랜트 △소비재(전자부품 등) 3개로 나뉜다. 주요 자동차 제조사의 매출 부진 등으로 부품공급기업 특히 전기차 등의 트렌드의 변화에 따라 자동차 엔진의 동력을 전달하는 파워트레인 관련 부품 기자재 업체들의 구조조정 필요성이 증가하고 있다.

선박과 해양플랜트 관련 중소기업은 경기회복이 지연되면서 운전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수주가 이어지지만 금융회사들이 선수금 환급보증(RG)과 계약이행보증(P Bond), 제작금융 지원을 해주지 않아 외부 투자가 필요한 상황이다.

삼성과 LG 등에 부품을 공급해온 기업들과 신발 생산업체 등 소비재 산업은 주요 대기업의 생산기지의 해외 이전에 따라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전자·섬유 산업중심의 대구·구미지역의 한계 기업이 크게 늘고 있다. 지난해 대구지방법원에 회생을 신청한 기업이 82곳으로, 서울(389건)과 창원(97건), 수원(86건)에 이어 네 번째로 많다.

◆사모펀드 운용사들, 구조조정 투자 꺼려 = 구조조정이 필요한 중소기업은 넘쳐나지만 채권은행들은 신규자금 투입을 하지 않고, 자본시장의 사모펀드 운용사들은 투자를 꺼리고 있다.

MBK, IMM, VIG 등 주요 PEF들은 정상 기업을 상대로 경영참여를 통해 수익률을 올리고 있다. 이들의 시장규모는 약 50조원에 달하는 반면, 구조조정에 투자하는 PEF는 유암코 이외에 기타 부실채권 관련 중소 규모의 PEF가 대부분이다. 시장규모는 5조원으로 정상 기업 투자펀드의 1/10 수준이다.

일반 PEF는 투자를 한 뒤에 수익 확대를 위해 대출을 끌어와서 자산을 늘리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투자 성공에 따른 이익률이 크다. 반면 실패할 때는 원금을 모두 날릴 수 있다는 점에서, 한계기업을 상대로 투자할 경우 '고위험 고수익 투자'가 된다.

반면 구조조정 회사를 대상으로 한 PEF투자는 채권인수와 채무변제가 뒤따르기 때문에 수익률이 높지 않다. 하지만 실패하더라도 재무구조조정과 청산에 따라 투자금 회수가 가능한 '중위험 중수익' 구조다.

기업구조조정 업무를 하고 있는 한 전문가는 "PEF들은 구조조정에 투입되는 노력과 비용에 비해 수익률이 낮기 때문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며 "자본시장에서 성공적인 구조조정 투자사례들이 많이 나와야 투자자들이 관심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구조조정을 위해 결성된 PEF의 출자약정액은 2016년 1월부터 2018년 3월까지 유암코가 조성한 14개 PEF(결성액 1.25조)를 제외하고 16개 PEF에서 8300억원 수준에 그쳤다. 중소·중견기업의 구조조정 수요를 고려할 때 매우 부족한 수준이다.

◆"전문 구조조정 투자기업 육성 필요" = 구조조정 투자의 성공모델은 현재 유암코에서만 찾을 수 있다. 유암코가 구조조정을 시작한 지 3년 가량 지났고 현재 14명의 직원이 구조조정 과정을 진행하면서 전문가로 육성되고 있다. 그러나 유암코도 자본시장 원리에 맞는 성과보상 시스템 구축 등 전문가 조직으로 운용을 개선해야 하고, 구조조정 전문 인력에 의한 지속적인 운영이 필요하다.

구조조정 업무를 하고 있는 한 전문가는 "자본시장에서 구조조정을 위한 충분한 자금과 전문 인력을 갖춘 전문 구조조정 전문 운용사의 육성이 필요하다"며 "구조조정 관련 민간 자본시장의 활성화를 대한 금융당국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유암코의 구조조정 기능도 중소·중견 기업에 대한 구조조정 수요가 증가하는 현재의 구조조정 자본시장 육성 초기단계에서 한시적으로나마 구조조정 투자를 확대하는 기관에 대한 펀딩 등의 지원이 필요하다"며 "일정 기간 후 구조조정시장 활성화라는 당초의 목적을 달성했다면 유암코의 구조조정 기능도 민간 자본시장으로 넘기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제2, 제3의 유암코 구조조정본부가 나올 필요도 있다고 했다.

김두일 유암코 본부장은 "평생 기업만 해온 분들이 갑자기 어려움이 닥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회사의 기존 대주주와 임직원, 노조 등 이해관계자의 도덕성과 정상화를 위한 의지 등을 고려해 투자 대상회사를 선정하고 이들이 본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나머지 부분은 유암코가 전문인력을 보내 자금 투입과 운영 등 구조조정을 지원한다"고 말했다. 최근 유암코의 투자심의회의를 통과한 회사는 노조원 전원이 서명한 합의서를 제출했다.

박상인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는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 등 제도적인 절차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앞으로는 회사 경영진과 노조 등 이해관계자들이 모두 회사를 살리기 위한 합의와 노력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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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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