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백선희 육아정책연구소장

"아이가 행복하고 육아 즐거운 나라 만들어요"

2019-02-07 11:30:02 게재

모든 정책에 '아동의 권리' 고려할 때 변화 시작 … "가정·정부·기업·지역사회 각자 역할 다해야"

올해는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된다. 자주독립과 자유 평등 평화 인류애를 기반으로 새 나라를 건설하자고 온 겨레의 뜻이 모아진 지 100년이 됐다. 이 시점에서 "대한국민은 우리 아이들이 살만한 사회를 만들어 왔는가"라는 질문을 던져 본다. 아동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권리를 존중하며 온전한 성장발달을 돕는 사회라면 나라 자체가 희망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동학대 사건과 방임방치는 흔하고, 세계 최하의 행복지수 등은 한국사회가 아이들이 살만한 곳이 아니다고 가리킨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그 답을 백선희 육아정책연구소장에게 물었다.

백선희 소장│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정책운영위원회 위원/보건복지부 성평등자문위원회 위원/여성부 갈등관리심의위원회 위원/서울시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 /서울신학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장. 사진 이의종

백 소장은 지난달 22일 서울 서초구 육아정책연구소에서 "젊은 부모들 중에는, 자신들이 과도한 경쟁사회 속에서 자라면서 행복하지 않았는데, 아이들에게 행복한 사회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 내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며 "모든 국가 정책 수립과정에서 아동의 입장을 고려한다면 아동이 살만한 세상으로 변해갈 것"이라고 답했다.

또 백 소장은 "저출산 문제가 아동의 불행한 삶과 연관이 있다"며 "아동의 행복과 육아의 행복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동수당이 지급되면서 육아에 도움을 주고 있다. 하지만 온전한 육아를 위한 부모역할은 여전히 부족하다. 아동수당 지급과 연계해 부모교육을 의무화하자는 의견이 많다.

동의한다. 경제적 지원을 넘어 육아에는 부모의 역할도 중요하다. 최근 부모나 전문가들의 의견이나 조사에서 부모교육이 필요하다거나 의무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예전 세대들은 부모의 역할을 배울 수 있는 간접적인 경험들이 많았다. 친정부모, 시댁부모에게 도움을 받거나, 이웃들과 정보를 나누며 육아를 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한 조사결과를 보면, 육아에 대한 자신감이 없다는 의견이 많다. 특히 어린 비혼모의 경우는 더욱 심하고 가끔 사회적 문제로 연결되기도 한다. 육아의 자신감 없음이 아이의 불행으로 이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아동수당과 연계해 부모교육을 하자는 의견이 있는데 한 번에 많은 교육을 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우선 부모역할을 지원하는 여러 정책과 정보들을 잘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맞벌이 부모 등 시간이 부족한 분들을 위해서 온라인 교육도 활용할 필요가 있다. 부모가 되기 전에 부모역할을 이해하는 것도 필요하다. 예비 부모와 청년들에게 고등학교 수능시험 끝나고, 대학 교양과목을 통해, 임신 전 준비과정으로 예비부모교육을 받게 할 수도 있다.

일시에 모든 부모에게 의무화를 하는 것보다, 부모교육이 꼭 필요한 분들에게 먼저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자녀를 학대하는 부모에게는 반드시 교육을 해야 한다. 아이를 어떻게 길러야 할지 잘 몰라서 학대를 가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다시 가정으로 돌아 갈 때 부모의 재학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 맞벌이 가정, 아이 돌봄의 공백을 어떻게 해야 하나

아이를 키우는 1차적인 책임은 부모이다. 정부의 역할은 육아의 공동 책임자로서, 부모가 일-가정 양립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부모가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는 기업의 참여도 필요하다. 아이들이 자라는 공간인 지역사회 역할도 중요하다. 아이들을 잘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모두가 각자 역할을 잘 해야 한다.

영아일 때는 육아휴직이 중요하다. 이때 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 유아일 때는 정부의 보육·교육정책과 연결된 어린이집, 유치원이 제 기능을 해야 한다. 어린이집이 4만개 정도 있지만 맞벌이부모들이 7시30분까지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이 부족하고, 사립유치원 사태를 보듯이 부모들은 많은 비용을 부담하나 투명하게 운영되지도 않고 교육의 질로 이어지지 않은 경우도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의 돌봄을 위해서는 학교의 역할이 중요하다. 학교는 도대체 몇 십 년 전 학교인가라는 말이 나온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12시 전후로 일찍 끝나는데, 초등학교 적응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이다. 작년에 초등학생 돌봄과 교육을 이유로 학교교육 시간을 3시까지 연장하자는 방안이 나왔으나, 교육계는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미 아이들은 어린이집, 유치원을 다니면서 오후 늦게 지내는 것에 적응이 끝난 상태이다. 지역사회 아이들 돌봄에 학교가 동참하지 않다보니 부모들이 어쩔 수 없이 자녀를 학원으로 보내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 학교가 변해야 한다. 초등학교를 포함하여 모든 지역사회가 함께 돌봐야 한다.

■ 사립유치원 공공성 확보 논란이 컸다. 아직도 미해결 상태인데 방안을 제시한다면

지난해 10월 24일 연구소에서 긴급간담회를 진행했다. 문제를 진단하고 장기적으로 유아교육의 공공성을 갖추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자 한다. 이와 관련 반성, 소통, 아이의 미래라는 원칙이 필요하다고 본다.

사립유치원 문제는 개인비리에서 시작됐지만 구조적 문제도 갖고 있다. 유아교육을 국가의 공공정책으로 확대해가는 과정에서 정부는 정책의 주체로서 역할을 잘 했는지 반성이 필요하다. 사립유치원의 집단행동도 반성해야 한다. 사설학원과 같은 이익을 유지하려고 공공적 역할에 저항해 왔다. 공공성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부모, 사립유치원, 정부의 소통이 필요하다. 사립유치원은 교육부는 왜 이런 정책을 추진하는지 이해해야 하고, 교육부는 정책 방향이 맞더라도 모든 유치원이 정책을 다 따라 갈 수 있는지도 점검해야 한다. 부모들에게 정부의 유아교육정책에 대해 잘 알릴 필요도 있다.

아이들은 미래 우리 사회의 주역이다. 정책의 방향성을 정할 때 아이를 중심에 두고 20∼30년 앞을 내다보고 진행해야 한다. 유아교육정책의 공공성 확대 측면에서 사립유치원의 공공성 강화가 필요하다.

■ 아이들이 잘 못 놀고 있다.

우리나라 교육환경은 아이들에게 놀 기회를 주지 않고 있다. 유아들에게도 놀이보다 교육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놀이를 통해 아이들이 자란다는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 놀이를 통해 창의력과 협력 등의 능력이 확장된다.

놀이 할 시간뿐만 아니라 공간도 부족하다. 지역에서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실내외 체육시설들이 부족하다. 놀이 시설에 대한 투자는 매우 중요하다. 별도 예산을 만들지 않더라도 아파트단지 등 지역이 개발될 때, 설계단계부터 제도적으로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배치하도록 하면 된다. 또한 아이들의 시선으로 공간을 만들 필요가 있다.

■ 초등학교 저학년 신체 활동 부족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저학년은 학교, 지역사회, 집이 생활공간이다. 학교를 보면, 체육시간이 너무도 부족하다. 미국에서는 고등학생도 주 4일 체육활동을 한다. 저학년일수록 더 많은 신체활동이 필요하다. 학교의 체육활동은 시간과 질적인 측면에서 모두 개선되어야 한다.

지역사회에서 신체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어릴 때 태권도장 같은 곳을 보내기도 하지만 이마저 교과학원을 보내기 위해서 초등저학년에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운동할 시간도 없지만, 공간도 부족하다. 놀이터에서 초등생들이 놀기도 하지만 농구장 같은 운동시설이 부족하고 아이들을 위한 실내 체육시설 같은 공간도 부족하다. 또한 운동을 하려면 돈을 들여야 하는 경우가 많다. 지역사회에서 아이들이 건강하게 운동할 수 있는 공간과 활동을 만드는 정책이 필요하다.

신체활동은 개인의 건강 측면에서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측면에서 보면 질병을 예방하여 사회적 비용을 절약하고, 건강한 인적자원의 바탕이 된다는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 공공데이터 포털을 통해 한국 아동정보를 개방했다. 어떤 의의가 있나

2018년부터 진행된 사업이다. 국가세금으로 조사하는 것이기에 보다 많은 국민들이 활용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에 따라 진행됐다. 매년 아동패널조사를 하면서 축적된 데이터를 국민에게 제공하자는 것이다.

현재 출생 때부터 초등학생 4학년까지의 아동패널데이터가 공개돼 있다. 아이들의 연령에 따른 신체활동, 정신건강, 사교육비용, 그리고 하루생활 흐름 등 다양한 정보를 일반인, 연구자, 기업 등이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외 육아정책 관련 우리사회에서 논의되고 활성화해야 하는 부분은?

아이행복 육아행복을 실현할 수 있는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앞으로 국가정책을 실행할 때 아이들의 행복을 고려하면서 진행해야 한다고 본다. 아파트를 지을 때, 도시를 설계할 때, 교육제도를 만들 때도 생애주기별 정책에다 지역사회나 도시와 같은 공간적 개념을 육아정책에 접목시켜야 한다.

육아친화 지역사회, 육아친화 스마트시티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시대, 스마트시티에서 드러나야 하는 것은 과학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삶의 질이다. 아이들이 행복한 조건을 갖춘 환경이어야 한다. 한 아이를 성장시키기 위해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육아공동체 의식과 노력이 필요하다.

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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