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능력 잃은 국회 - ① 더욱 커지는 공범 의식

여야 없는 '관행화된 불법' … '물타기'엔 한몸 됐다

2019-02-11 11:06:09 게재

채용비리·재판민원·이해상충의혹 … 여야의원 동시 연루

의혹 제기에 '전수조사' 맞대응 … 공방 열중, 사실확인 뒷짐

공공기관 채용비리 국정조사, 합의해놓고 석달째 제자리

"악재를 악재로 덮기 주력 … 국민심판 없어 차단 한계"

5.18 북한 공작원 개입 등 자유한국당 의원 3명의 발언을 두고 여야 4당이 '나가도 너무 나갔다'는 반응을 보였다. 여야 구분없이 막말 시리즈가 이어지고 있지만 제어되지 않는 현실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국회가 자정능력을 이미 상실한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특히 쏟아져 나온 각종 비리, 불법, 의혹들은 여야가 모두 향유해온 '관행화된 사실'로 인식되고 있다. 여야가 '너는 깨끗하냐'며 '방어용 공격'을 이어가다가 슬며시 없었던 일처럼 덮는 분위기다.

홍영표 "5·18 망언 의원 윤리위에 제소" |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가 1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의 5·18 민주화운동 비하 논란과 관련해 "야 3당과의 공조를 통해 망언한 의원들을 윤리위에 제소해 가장 강력한 수준의 징계를 추진하고 형사처벌도 검토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하사헌 기자


10일 공공기관 채용비리 국정조사 특위 위원장으로 내정된 최재성 의원(서울 송파구을)은 내일신문과의 통화에서 "공공기관 채용비리 특위는 사실상 재협상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국회도 열리지 않는 상황이고 한국당에서도 특별한 움직임이 없어 언제 열릴지 알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공공기관 채용비리 국정조사는 지난해 11월 21일에 여야 5당 원내대표 회동에서 나온 '국회 정상화 방안'의 하나로 합의됐다. '공기업 공공기관 지방공기업의 채용비리 의혹과 관련한 국정조사를 정기국회 후 실시하기로 했다'는 게 주내용이었다. 12월 15일 3당 교섭단체 원내대표 합의문에는 '공공부문 채용비리 의혹과 관련된 국정조사특별위원회를 12월 17일까지 구성하고, 국정조사계획서를 처리한다'고 명시돼 있다. 12월 임시국회 중 국정조사 계획서를 채택해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갈 것이라는 게 핵심이었다.

◆관행화된 채용비리, 어디로 튈지 미지수 = 채용비리 국정조사가 합의된 이후 석달 가까이 전혀 진전없는 것을 두고 여야가 공방중이다. 국정감사 중 제기된 서울교통공사의 채용비리 의혹에서 시작해 강원랜드 채용비리 의혹까지 포함시키기로 함에 따라 여야가 서로의 약점이 노출될 것을 우려해 뒤로 빼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민주당은 국정조사 실시가 유치원법과 연계된 사안이라며 유보적인 입장을 견지해왔다. 한편에서는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지만 박원순 서울시장을 겨냥한 서울교통공사 채용비리의혹 국정조사는 자칫 박 시장뿐만 아니라 민주당에도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는 얘기도 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 김경수 경남지사, 이재명 경기지사 등 민주당의 차기 대권주자들이 모두 상처를 입은 상황에서 박 시장마저 정쟁에 휩싸일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국정조사를 요구한 한국당은 강원랜드 채용비리 재판과정에서 나온 권성동, 염동열 등 자유한국당 의원과 이이재 전 새누리당 의원의 명단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재판과정에서 최홍집 전 강원랜드 사장, 권성동 의원의 전 비서관을 추천했던 최모 전 기조실장, 인사팀장 등이 모두 유죄선고를 받았고 이 과정에서 증언들도 쏟아져 나왔다.

게다가 다른 공공기관들에서 빚어진 '채용 관행'이 도마 위에 오를 수 있어 칼날이 어느 쪽으로 향할지,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조차 미지수인 게 사실이다.

여야가 서로 '국정조사의 필요성'을 경쟁적으로 말하지만 각종 조건을 걸면서 '하지 않으려는 모습'만 보이고 있다.

◆양날의 칼로 변한 '재판 청탁·이해상충 의혹' = 여야를 한배에 태운 불법논란이 적지 않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판결문에서 나온 재판 청탁 논란은 서영교 민주당 의원에 집중됐다. 현역 의원 중 유일하게 거론됐기 때문이다. 전병헌 민주당 전 의원, 이군현 전 의원, 노철래 전 의원 이름도 나왔지만 모두 '전 의원'들이었다.

서 의원이 원내수석부대표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나 당의 부담을 줄여준 후 민주당은 이군현 전 의원과 노철래 전 의원의 재판과 관련해 청탁한 2016년 당시 한국당의 법사위 의원 명단을 공개하라고 압박했다. 한국당은 서 의원에 대해 미온적인 대응을 해오다가 여론의 질타에 못이겨 윤리위에 제소했다. 바른미래당 등은 거대 양당의 '침묵의 카르텔'을 비판하고 나섰다.

이해상충 의혹 역시 거대 양당의 '뜨거운 감자'가 됐다. 국회 문화관광체육위 소속인 손혜원 민주당 의원이 목포 문화재를 보호한다는 목적으로 문화재 지정 정보와 예산을 활용하거나 관여했다는 '이해상충 문제'가 부상했다. 목포 투기의혹과 맞물려 한국당은 국정조사까지 요구했다. 민주당은 한국당 장제원 의원(일가 운영 대학관련 예산지원 요구)과 송언석 의원(자신과 가족이 소유한 건물 앞 김천역을 제2 대전역으로 확대 계획)의 이해상충 의혹을 지목하며 '국정조사와 함께 이해상충 전수조사'를 제안했다. 손 의원 공략카드가 이해상충 논란으로 번지면서 '양날의 칼'로 변해버렸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손 의원) 국정조사에 대해서 반대하지 않는다"며 "이해충돌 문제 등 각종 현안에 대해서 우선 상임위를 열어 논의하고, 필요할 경우 국정조사 등 다른 방안을 여야가 협의하면 될 문제"라고 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이해충돌조사위는 손혜원 의원 국정조사만 별도로 이루어진다면 오늘이라도 당장 합의할 수 있다"고 받아쳤다. 같은 듯 다른 양당의 주장은 국정조사도 전수조사도 안 하겠다는 얘기로도 들린다.

한쪽에서 비리, 부정, 의혹을 들추면 역시 비슷한 문제를 들고 나와 '물타기'에 나서는 것은 여야의 '관행적 부정'이 적지 않다는 반증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의혹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엔 여야 모두에게 치명상을 입힐 게 뻔하기 때문에 아예 덮고 가자는 전략으로 나온다는 분석이다. 모두 죄인인 것은 모두 죄인이 아닌 것과 같은 꼴이 됐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국회가 상대방의 지적에 물타기하거나 또다른 악재로 덮는 식으로 자정작업 없이 지나가고 있다"며 "두 정당이 독점하면서 심판을 하지 않으니 총선에 가까워오면서 더욱 네거티브로만 나간다"고 비판했다.

[자정능력 잃은 국회 연재기사]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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