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운용리스 3조달러, 기업부채 크게 는다

2019-02-18 11:35:36 게재

올해부터 운용리스를 부채로 보는 새로운 기업회계 기준이 적용된다. 그동안 베일에 가렸던 3조달러 가량의 미국 운용리스 시장이 공개되면서 기업들의 부채비율이 크게 늘어날 전망이라고 미국 경제방송 CNBC가 17일 전했다.

운용리스란 빌리는 측이 자산을 필요한 기간 동안에만 이용하고 다시 리스회사에 반환하는 형태를 말한다. 대상자산은 컴퓨터나 사무용기계, 의료기기, 자동차, 항공기 등과 같이 진부화의 위험이 큰 자산이 보통이다. 수선 및 유지관리 비용과 책임을 임대인이 부담한다. 반면 금융리스는 빌리는 측이 임차자산의 유지·보수에 관한 책임을 진다.

금융리스 이용자는 재무상태표에서 리스 관련 자산·부채를 계상해왔다. 반면 운용리스 이용자는 재무상태표에서 리스 관련 자산·부채를 계상하지 않았다. 재무상태표 주석에 간략하게 언급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올해부터 기업들은 운용리스를 재무상태표에 기록해야 한다. 그 결과 수조달러의 부채가 재무상태표에 계상될 전망이다. 미국의 재무회계와 보고에 관한 표준을 제정하는 독립 회계기관인 '재무회계기준심의회'(FASB)가 주도한 이러한 변화로 투자자들은 기업의 금융 부채를 정확하고 손쉽게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세계 1위 다국적 회계감사기업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의 회계사 쉐리 와이엇은 "모든 기업의 레버리지에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라며 "이전보다 많은 부채를 기록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건스탠리는 "이번 회계기준 변화로 부채가 가장 많이 늘어날 곳은 '자유소비재'(consumer discretionary) 부문에 속한 기업들"이라며 "소매 부문 기업들의 평균 레버리지 비율은 기존 1.2배에서 3.4배로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제적으로 통일된 재무회계기준을 제정할 목적으로 설립된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에 따르면 미국 상장기업들은 운용리스 총액은 3조달러에 달한다. 운용리스 비중이 높은 산업은 소매상업과 식당업 그리고 비행기와 자동차, 선박을 빌리는 항공사와 선사 등 여객, 물류업이다.

CNBC는 "부채비율 등 레버리지는 한 기업의 리스크를 판단하는 기본 수치이기 때문에 주관적 판단을 배제하고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매매 매도하는 '퀀트펀드' 등은 투자결정의 기반이 되는 재무적 기준을 바꿔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경제분석가나 가치중심 투자자들은 부채비율을 계산할 때 운용리스를 배제하지 않았다. 이들은 남아 있는 운용리스 비용을 추산하기 위해 연 평균 리스비용의 8배를 곱해 부채 상황을 파악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기존추산은 기업들이 재무제표에 계상하게 될 수치와 크게 다를 수 있다는 지적이다.

모건스탠리 증시 전략가인 토드 카스타뇨는 "사람들은 이제 새로운 계산법에 적응해야 한다. 크게 놀랄 수도 있다. 기업이 보고하는 부채와 자산은 기존의 주먹구구식 추산과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산과 부채를 파악하고 실적을 들여다보고 양질의 주식을 찾아내기 위한 모든 비율이 바뀌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업 부채비율의 변화는 레버리지를 판단의 근거로 삼는 일부 퀀트펀드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예를 들어 MSCI 퀄리티 인덱스는 기업을 평가하는 기준 가운데 하나로 부채비율을 본다. 새로운 회계기준이 적용돼 어떤 기업의 부채비율이 크게 높아지면, 그 기업은 아예 지수에서 빠질 가능성이 높다.

재무제표에 추가되는 부채가 기업의 신용평가에는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당연히 본래부터 고려돼야 하는 사항이라는 것이다. 무디스 인베스터 서비스의 기업회계 분석가인 케빈 딜로우는 "바뀐 회계기준이 신용평가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지 않는다"며 "신용의 질은 변하지 않는다. 기업의 재무적 공개정보에 기반해 현재가치를 계산하는 데 있어 무디스의 운용리스 부채 평가는 매우 정확하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사안을 복잡하게 만드는 지점이 있다. 일부 금융자료 제공업체들은 그동안 운용리스 부채를 기업의 총부채에 포함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포함시키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그럴 경우 투자자들이 어떤 플랫폼을 이용하느냐에 따라 동일한 기업에 대해 매우 다른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시장조사업체 '리피니티브'는 미국 기업들을 판단하면서 운용리스를 부채로 보지 않는다. 대신 연기금 납부액이나 연체금처럼 '부채 아닌 약정'(non-debt liabilities)으로 판단한다. 앞으로도 그럴 계획이다. 리피니티브는 "기업과 시장 등에 대한 보고서의 상호 비교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이 업체는 "국제회계기준(IFRS)에 의거해 재무상태표를 보고하는 기업들을 위해서는 당연히 운용리스를 부채로 계상해 보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IFRS는 유럽연합과 아시아, 중남미 등지에서 주로 사용된다.

반면 '블룸버그 터미널'의 경우 이미 운용리스를 기업 부채에 포함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팩트셋'은 "아직 자료를 업데이트하고 있지는 않다"면서도 "다음에 금융 정보 보고서를 낼 때는 운용리스를 부채로 계상할 것"이라고 밝혔다.

카스타뇨 전략가는 "금융자료 제공업체 일부는 변화된 기준을 따르고 있지만, 일부는 그렇지 않다"며 "어떤 업체를 이용하느냐에 따라 해당 기업의 재무상태를 달리 보게 된다. 우려할 만한 지점"이라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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