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우리는 썰매를 탄다

2019-04-18 12:43:20 게재
이석행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

지난해 3월 17일 강원 강릉하키센터. 대한민국 Vs 이탈리아의 3-4위 결정전. 선수들은 썰매에 몸을 단단히 고정한 채 거친 몸싸움을 이겨내며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했다. 치열한 접전 끝에 1:0으로 동메달이 확정되고 선수들과 관중이 하나가 돼 애국가를 부르던 장면은 온 국민에게 뜨거운 감동을 전해줬다. 모든 언론이 감동의 순간을 전했고 인터뷰가 이어졌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평창동계패럴림픽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며 막을 내렸고 그렇게 잊혀졌다.

올해도 어김없이 봄내음과 함께 장애인의 날을 맞이한다. 각종 단체가 행사를 열어 기념하고 축하하지만 정작 장애인의 날을 반가워하는 장애인들은 별로 없어 보인다. 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재활 의지를 고취시키고자 제정한 기념일이건만, 오히려 장애인의 날을 폐지하고 장애인 차별철폐의 날로 바꾸자는 주장이다.

장애인 문제는 우리 모두의 과제

1981년 제정된 장애인복지법에는 장애인 누구나가 평등하게 그 존엄성과 가치를 인정받고 처우 받아야 함을 천명하고 있지만 수십 년이 지난 아직도 우리 사회는 편견과 차별의 벽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장애인 권익향상을 위한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장애인 인권이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장애인 중 선천적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오히려 약 90%의 장애인이 질병이나 사고로 인한 후천적 장애인 현실에서, 그 누구도 장애가 나와 무관한 일이라 단정할 수 없다. 지금 당장 나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외면할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더구나 급격히 증가하는 고령자 인구비율을 감안하면 장애인과 그 가족이 사회 곳곳에서 부딪히는 현실의 벽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과거에 비해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됐다고는 하나 직접적인 이해와 부딪히면 마음 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편견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제 우리도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에 걸맞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등한 권리와 기회를 가지고 당당히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 곳곳의 공동체 운동 확산과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절실한 시점이다.

고령자나 장애인들이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자는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운동은 초기에는 도시 및 건축설계 등에 한정된 의미로 사용됐으나 물리적 제도적 장벽뿐 아니라 그들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마음의 벽까지 허물자는 개념으로 확대됐다. 아직 공공시설 환경개선 사업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갈 길이 멀다.

공동체 운동, 경제성장에도 기여

배리어 프리와 유사한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 운동은 연령과 성별, 장애의 유무 등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사용하기 편리한 제품, 환경 등을 구현하자는 개념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저상버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출입구를 낮게 만들어 계단을 없앤 저상버스는 교통약자인 장애인과 노인 및 영·유아 동반자 모두에게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러한 공동체 운동의 확산은 장애인과 고령자들의 삶의 질을 확보하고 자긍심을 높이는 것은 물론 새로운 소비시장을 창출하며 경제적 성장에도 기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배리어 프리와 유니버설 디자인 운동 확산과 정착을 위해 정부는 정책적으로 안정적인 예산 및 제도적 지원을 지속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공공직업교육기관인 한국폴리텍대학은 매년 장애인들을 우선 선발대상으로 모집하고 최근 3년간 67%의 취업률을 보이며 장애인들의 직무역량 강화와 자립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법적·제도적 지원과 함께 우리 사회의 따뜻한 마음과 노력이 함께할 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모두 존중받으며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평창동계패럴림픽에서 금보다 값진 동메달로 국민들에게 뜨거운 감동과 눈물을 선사했던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재정적 지원이 아닌 국민들의 높은 관심과 응원'이라고 말했다. 그들이 피나는 노력과 열정으로 우리에게 감동을 주었듯 이제 우리가 공감과 참여로 그들에게 감동을 줄 차례다.

이석행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