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의 금융교실

자영업자 경영컨설팅이 필요하다

2019-06-10 12:04:18 게재
박철 KB국민은행 인재개발부 부장

미국인들에게 가장 사랑 받은 코미디언으로 꼽히는 밥 호프는"금융회사는 돈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면 돈을 빌려주는 곳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담보나 신용이 부족해서 금융회사의 높은 문턱에 가로막혀 한숨을 내쉬는 서민들의 딱한 처지를 풍자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우리나라도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한숨만 내쉬기에는 이르다. 우리 곁엔 서민정책금융상품이라는'기댈 언덕'이 있기 때문이다. 이름 그대로 소득이 적고 신용도도 낮아 금융회사에서 자금을 융통하기 어려운 서민들을 위한 대출상품이다. 2008년 미소금융을 시작으로 바꿔드림론·햇살론·새희망홀씨·안전망대출 등 다양한 서민금융상품들이 출시되고 있다.

이들 서민정책금융상품들은 '서민들의 재활 지원을 위한 마중물'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갖고 있다. '마중물'이란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 펌프에 미리 붓는 한 바가지의 물"을 말한다. 곧 올라올 많은 물을 미리 마중하러 나간다는 뜻이다. 그런데 서민정책금융상품이 진정한 마중물이 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자금지원과 더불어 경영컨설팅 제공이 아닌가 싶다.

요즘을 열심히 일해도 벌이가 시원치 않아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워킹푸어(working poor·일하는 빈곤층)의 시대'라고 한다. 690만명에 이르는 자영업자들이 대표적이다. 2016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전체 고용에서 자영업자 비중은 25.5%에 달한다. 영국(15.4%)·일본(10.6%)·독일(10.4%)·미국 (6.4%) 등 선진국을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문제는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자영업자의 살림살이가 녹록하지 않다는 것이다.

서민정책금융상품 '마중물'이어야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자영업자 가구의 26.5%(2017년 기준)는 연 소득 3,000만원 이하다. 자신이나 가족의 인건비 정도만 간신히 벌면서 근근하게 버티는 자영업자들이 많다는 얘기다. 저축은행과 대부업체 등의 고금리 대출에서 자영업자 비중이 갈수록 커지는 것도 걱정되는 대목이다. 경기불황으로 소득은 줄어드는데 본격적인 금리 인상기에 접어들면서 이자부담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으니 자영업자 입장에서는 '엎친 데 덮친 격'이 아닐 수 없다.

실제 지난해 폐업에 내몰린 자영업자는 100만명을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폐업지원희망정책협회> 에 따르면 자영업자 폐업 문의건수는 2017년 대비 무려 28%가 증가했다. 벼랑 끝에 내몰린 자영업자들의 숨통을 틔워줄 정책적 지원이 절실하다. 이에 정부의 서민금융 자원정책을 총괄하는 서민금융진흥원과 금융감독원이 자영업자에 대한 금융지원 확대, 경영컨설팅 지원 등에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경영컨설팅 지원은 시의적절하고 실제적인 정책이 될 것이다. 어려움에 처한 자영업자들을 직접 현장으로 찾아와 문제점은 어떤 것인지를 짚어주고 해결방안을 함께 고민해주는 전문가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요즘 <골목식당> 이라는 TV프로그램이 뜨거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성공한 외식사업가가 거침없는 쓴 소리와 조언을 통해 장사가 잘 안 되는 골목식당을 동네 맛 집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 인기몰이의 비결이다. 그런데 그가 자주 입에 올리는 말이 "겁 없이 식당을 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개중에는 가족들의 "맛있다"는 한 마디에 덜컥 식당을 열었다가 바로 폐업위기에 몰린 경우도 있었다. 한마디로 골목식당 대부분이 주먹구구식으로 식당을 열고 운영한다. 식당이 자영업자 폐업업종 1위로 계속 꼽히고 '자영업자의 무덤'으로 불리는 이유다. 실제 식당 창업 후 3년 내 폐업 확률은 80%를 웃돈다.

필자도 <골목식당> 을 보면서 외식업 전문가가 내뱉는 쓴 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다 가도 한편으로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고 말하면서 마음 한 구석엔 식당 일을 만만하게 여기지 않았나를 반성하게 됐다. "먹고 살기 힘든데 OO이나 해볼까" 퇴직한 이들이 인생 2막을 위해 손쉽게 뛰어드는 게 서비스업종, 그 중에서도 자영업이다.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창업의 꿈은 순식간에 악몽으로 변한다.

10명 창업하면 잘해야 1~2명 성공

사업의 세계는 비정하다. 10명이 창업한다면 잘해야 한 두 명 성공한다. 경쟁에서 뒤쳐지거나 변덕스러운 소비자들의 기호를 따라잡지 못하면 언제 빚더미에 올라앉아 문을 닫게 될지 모른다. 장사가 잘돼서 이익을 내고 있다고 하더라도 세무·회계지식이 모자라 현금흐름관리에 문제가 생기면 순식간에 '흑자도산'을 당할 수도 있다. 자영업자들에게 창업 선배나 전문가가 내미는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이유다.

실제 <골목식당> 에 등장하는 창업선배이자 외식업 전문가는 현장인 식당을 찾아가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서 음식의 맛은 물론이고 원가분석에서부터 재료 및 주방상태, 손님 응대 등 세세한 부분까지 문제점을 짚어내서 변화를 이끌어낸다. 어려움에 처한 자영업자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함께 고민하면서 식당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전문가의 모습은 '감동'그 자체다. 죽어가는 식당과 자영업자들에 대한 애정과 따뜻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되기 때문이다. 그는 성공한 사람이 어려운 이들에게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나눠 줌으로써 재활을 돕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전형이자 경영컨설팅 지원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생생한 케이스스터디가 아닐까 싶다.

누구나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되면 누군가가 방향을 알려주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갖게 된다. 어려운 상황에 놓인 자영업자에게는 경영컨설팅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불어넣어 주고 재활의 발판을 만들어주는'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이미 유럽 등 선진국에선 금융지원과 더불어 경영컨설팅이 대표적인 서민금융지원정책으로 자리잡고 있다. 자영업자에 대한 경영컨설팅 지원이 기대하는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정부는 물론 사회 전체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