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경제토론회'를 제대로 하려면

2019-06-20 11:17:49 게재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국회정상화 협상에서 생뚱맞게 내놓은 '경제청문회'가 새로운 쟁점으로 부상했다.

나 원내대표는 지난 16일 대국민호소를 위한 기자회견에서 "경제 위기 원인 진단이 시급하다"며 "경제청문회부터 먼저 국민들에게 보여드리고, 그다음 추경심사에 돌입하자"고 제안했다. 국회정상화를 위한 새로운 조건을 내세운 것이다.

여당은 '정상화의 전제조건'으로의 경제청문회는 수용하기 어렵다고 했다. 추경의 발목을 잡기 위한 정쟁프레임으로 규정했다.

나 원내대표는 18일 문희상 국회의장과 교섭단체 원내대표간 만남에서 "명칭, 형식, 방법, 시기에 유연하다"며 문 의장이 제안한 경제토론회 형식의 '경제원탁회의'에 동의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여당 내에는 "이것을 수용하려고 하면 '조건의 여왕(타협점 근접하면 다른 조건을 계속 내세운다는 의미)'인 나 원내대표가 또다른 조건을 내세울 것"이라며 부정적인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분위기는 '경제토론회 해 볼만 하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나 원내대표의 '조건없는 경제정책 진검토론'에 호응하는 분위기였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19일 관훈토론회에서 "경제실정이나 국가부채에 대한 책임이라는 낙인(책임성을 인정하라는 것)을 거둔다고 하면 (경제토론회 수용은) 그럴 수 있다"고 했다.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도 "경제청문회는 해볼만 하다는 의견이 당내에 있다"고 전했다. 진보진영으로 분류되는 민주평화당 역시 "경제난의 근본원인을 밝히고 경제정책을 바로잡는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틀이고 사흘이고 원내대표, 경제전문 의원, 전문가들이 모여 토론을 해보자'는 문 의장의 의견에 여당과 한국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이 큰 이견없이 동의한 것처럼 보였다. 경제정책을 놓고 진검승부가 펼쳐질 것 같았다.

그러나 갑자기 나 원내대표가 또 이날 오후에 '단 3가지 조건이 있다'며 페이스북에 툭 던져 놨다. "경제정책 전반을 책임지는 청와대, 각 부처 책임자들이 반드시 모두 참여하는 토론회가 돼야 한다", "정부의 경제정책 수립에 있어 그 근거가 되는 자료와 논리 통계 등 자료제출과 관련한 성실한 자세를 약속해야 한다", "토론회를 통해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면 이를 정부·여당이 반드시 적극 수용해 달라"는 것이었다.

정부책임자 참여나 자료 제공은 국회 상임위 회의에서도 적용되는 당연한 절차인데다 토론의 결과를 국정에 반영하는 것은 대통령의 몫인데도 '반드시 참여' '성실한 자세' '반드시 수용' 등의 조건을 내건 것은 꼬투리를 잡기 위한 정지작업으로 읽힐 수 있다. 조건에 조건을 다는 식으로 상대방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나경원식 협상'태도에 여당이 '진정성이 없다'고 보는 이유다.

경제책임자들이 나오지 않는다면 정부와 여당이 패배를 자인하는 꼴이다. 현재 나와 있는 통계 등 자료로 현 정부 경제정책의 허점을 짚어 내거나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그동안의 한국당 주장과 대정부 비판들은 '모래위에 쌓은 집'에 지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미 경제실정백서 성격의 '징비록'까지 낸 상황이다. 토론결과는 국민이 판단할 것이고 국정에 반영할지 여부는 대통령이 결단하고 책임질 문제다.

문재인정부 2년을 넘었는데도 대표정책인 소득주도성장의 성과에 의구심이 많고 우리나라 경제상황에 대한 불안감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국민 앞에서 차근차근 따져보고 재검증할 필요가 있다. 과거와 현재 정부의 '책임론'으로 정쟁화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당입장에서는 국민의 동의를 얻어 동력을 확보하고 방향전환은 아니더라도 괘도 수정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야당에서도 '공허한 비판'에 그치지 않고 '대안'을 내놓으면 정책대결을 펼친다면 '수권정당'의 가능성을 인정받을 기회를 잡게 된다. 다음주중 국회정상화를 거쳐 내달 추경을 끝낸 이후 '조건 없는' 경제토론회가 성사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실현된다면 새로운 '정책토론 문화'로 기록될 것이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박준규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