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고아 삶터 69년만에 재조명

2019-06-20 11:13:14 게재

용산구 삼각지성당 앞에 경천애인사 아동원 안내판

6.25 당시 부모·친지를 잃은 전쟁고아들이 몸을 의탁했던 삶터가 69년만에 재조명되고 있다. 서울 용산구가 한국전쟁 발발 69주기에 맞춰 옛 경천애인사 아동원(敬天愛人社 兒童園) 터를 알리는 안내판을 제작, 19일 설치했다고 20일 밝혔다.<사진>

안내판이 들어선 곳은 한강로1가 천주교 서울대교구 삼각지성당 앞. 경천애인사 아동원은 한국전쟁 시기에 서울에 세워진 고아원 가운데 규모가 가장 컸다. 1951년 고 장시화 용산교회 목사가 삼각지에 있던 병원과 인근 건물에 아동원을 차렸다. 초기에는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미7사단 고 김영옥 대령이 적극적으로 후원, 4년간 전쟁고아와 생계가 어려웠던 아동 500여명을 돌봤다. 전쟁이 끝나고 부지 소유권 문제가 불거지면서 아동원은 해체됐고 아이들은 다른 보호시설로 옮겨지거나 해외 입양됐다. 안내판에는 그 내용과 함께 당시 사진을 더했다.

19일 열린 제막식에는 장홍기씨 부부와 장 목사의 아들 장 성 목사, '아름다운 영웅 김영옥'을 쓴 한우성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이 함께 해 자리를 빛냈다. 장씨는 "68년만에 이 자리에 섰다"며 "안내판 설치를 계기로 고 장시화 목사과 고 김영옥 대령의 높은 뜻이 더 많은 이들에 소개됐으면 한다"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한 이사장은 "좋은 역사를 계승하고 가슴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기록을 남긴다"며 "경천애인사 아동원이 세워지고 유지됐던 소중한 인도주의 정신이 계승, 확산되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구는 안내판에 이어 벤치와 함께 방명록을 설치, 아동원과 연을 맺은 이들이 서로의 흔적을 찾을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성장현 구청장은 "경천애인사 아동원 출신들이 지금은 황혼에 접어들었지만 어린시절을 회상하면서 이곳에 와서 눈물을 흘리고 돌아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그분들이 한번쯤 용산을 다시 찾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성 구청장은 국가공원으로 바뀌는 미군부대 내 장교 숙소 등을 일부 남겨 게스트하우스로 전환, 아동원 출신들이 하루쯤 묵어가도록 했으면 한다는 바람을 내비치곤 했다.

경천애인사 아동원 재조명은 용산구가 지난 3월부터 이어온 '용산 역사문화명소 100선 안내판 제작사업' 성과물이다. 구는 백범 김 구가 국가를 재건할 인재양성을 위해 1947년 설립한 원효로2가 건국실천원양성소 터를 비롯해 6.25 당시 연합포로수용소, 함석헌·박목월 옛집 등 100곳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는 안내판 작업을 내년까지 마무리할 방침이다.

용산구는 독립운동사와 한국전쟁, 미군부대 흔적 등 주제별 탐방코스를 마련하고 안내책자도 제작할 계획이다.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그간 잊혀져있던 지역 역사를 찾고 기억하기 위한 작은 날갯짓을 시작했다"며 "오늘 제막식이 그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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