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은 헌법재판소 결정 20

현대사의 변곡점을 이룬 헌재 결정

2019-08-30 11:24:32 게재
김광민 지음 / 현암사 / 1만9500원

"헌법재판소는 결정문에서 '탄핵제도는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다는 법의 지배 원리를 구현하고 헌법을 수호하기 위한 제도이다. 국민에 의하여 직접 선출된 대통령을 파면하는 경우 상당한 정치적 혼란이 발생할 수 있지만 이는 국가공동체가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지키기 위하여 불가피하게 치러야 하는 민주주의의 비용이다'라고 했다. 우리는 그 비용을 치르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준엄한 사실을 재확인했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중에서

6월 민주항쟁을 거쳐 6.29선언 이후 제9차 개헌이 이뤄졌다. 이 같은 일련의 민주항쟁 결과로 1988년 9월 헌법재판소법이 시행됐다. 하지만 지금보다 대법원 중심 사법체계가 공고했던 시절이라 당시 많은 사람들은 헌법재판소가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해나갈 수 있을지 의문을 품었다. 더욱이 정권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사법부를 지켜봤기 때문에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그러나 걱정과 근심 그리고 비판적 시선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는 소임을 다해 나가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법률이 헌법에 부합하는지, 권력 행위가 헌법에 위배되지 않았는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지는 않았는지 등 헌법에 근거한 결정이 필요한 모든 사안을 다룬다. 헌법재판소 결정문은 단순히 몇 장 또는 몇 십 장의 문서로 남는 헌법재판관 9명의 의견에 머물지 않는다. 그 안에는 헌법재판소 결정의 변화 과정과 그와 관련한 우리 사회 구성원의 다양한 생각과 합의 과정이 고스란히 담긴 그야말로 당대 역사의 응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지난 30년간 헌법재판소가 내린 결정 중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준 사건을 중심으로 그 결정이 가지는 역사적 사회적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최근 한·일 관계와 맞물려 '친일 청산에 시효는 없다'는 결정이 눈에 띈다. 저자는 친일 청산 문제와 맞물린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 위헌 심판에서 친일 청산에는 시효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한 헌법재판소 결정 내용을 다뤘다. 미군정기 친일파 청산 시도, 반민특위(반민족행위처벌법 기초특별위원회), 친일인명사전 편찬, 친일파 후손들의 헌법소원 등 사건의 전개 과정과 역사적 사실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보여주고 있다. 독재자의 초헌법적 권한을 상징했던 긴급 조치 위헌 결정항목에서는 집권 연장을 목적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단행한 세 차례 개헌에 대해서도 다룬다.

헌법재판소의 결정 중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것들도 다루고 있다. 저자는 '5.18 민주화 운동법' 제4조의 특별 재심 규정의 불명확성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판단을 회피하는 결정을 내렸다고 소개한다. 그리고 헌법을 수호·유지하는 기관으로서 문제가 없는 것인지 묻는다.

이 책에서는 그 밖에도 △동성동본 문제 △김영란법 논란 △신행정수도 이전 문제 △호주제 폐지 △남성에 한해 부여된 병역의무에 대한 성 평등 논란 △재외국민의 참정권을 둘러싼 갈등 △네 번의 위헌과 한 번의 합헌 결정 끝에 62년 만에 폐지된 간통죄 △성매매는 자유의 영역인가에 대한 대립 △인터넷 실명제 △촛불집회로 상징되는 야간 집회의 자유 △선거구 획정을 두고 벌어지는 이해타산 △선진 국회로 가기 위한 국회선진화법 △사법시험 폐지 등 우리 사회를 뒤바꿀 정도로 파급력 있는 결정들을 통해 역사의 현장을 생생히 보여준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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