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부동산펀드 투자 '빨간불'

2019-09-05 11:14:06 게재

증권사 앞다퉈 팔며 5년 사이 9조원에서 50조원으로 5.5배 증가

KB증권·JB운용 호주펀드 3200억원 사건 터지며 '손실' 우려

해외부동산 펀드에 빨간불이 켜졌다. 금융투자업계는 "터질게 터졌다"는 반응이다.

최근 해외부동산펀드 시장은 국내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과열 양상으로 치달으며 '묻지마 투자'를 연상케 할 정도였다. 그런데 저금리와 부진한 증시를 대체할 투자 상품으로 주목받으며 증권사들이 앞다퉈 팔던 '해외 부동산' 관련 상품에서도 하나둘씩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KB증권이 팔고 JB자산운용이 운용한 호주 부동산 사모펀드가 현지 대출 차주의 계약 위반으로 가입자들의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장애인 주택 투자한다더니 엉뚱한 토지 매입 = 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KB증권과 JB자산운용은 'JB호주NDIS펀드'의 대출 차주인 호주 LBA캐피털이 대출 약정 내용과 다르게 자금을 집행해 투자금 회수와 법적 대응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이 펀드는 호주 현지 투자회사인 LBA캐피털이 호주 정부의 장애인 주택 임대 관련 사업에 투자하는 사모펀드다. KB증권이 모은 자금을 JB자산운용이 LBA캐피털 측에 대출해주는 방식이었다. 호주 장애인 주택 임대사업자로 선정된 LBA캐피털은 대출받은 자금으로 아파트를 매입한 뒤 리모델링해서 장애인에게 임대해주고, 정부의 지원금을 받아 임대 수익을 올리겠다고 했다. 투자자는 2년4개월 만기까지 약 4~5% 정도의 수익을 얻을 것으로 예상했다.

KB증권은 올해 3∼6월 이 펀드를 기관투자가에게 2360억원, 법인과 개인에게 904억원어치를 각각 판매했다. 기관과 리테일 고객을 포함한 상품 가입자는 170여명이다. 펀드 최소 가입금액은 상품 유형별로 2억∼3억원 정도다.

하지만 대출 차주인 LBA캐피털이 대출받을 때 허위 문서를 제출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LBA캐피털이 정부가 지정한 매입 대상 아파트가 아니라 일반 토지를 매입한 것이다.

KB증권과 JB자산운용은 금융당국에 피해 사실을 알리고, 긴급 자금 회수 및 법적 대응을 통해 투자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에 나섰다. KB증권 관계자는 "투자액 가운데 2015억원은 현금으로 회수해 국내로 이체 완료했고 882억원 상당의 현금과 부동산은 호주 빅토리아주 법원 명령으로 자산이 동결된 상태"라며 "소송 등 강제 집행으로 투자금의 89% 정도까지는 회수할 것으로 예상하고 나머지 손해액 300억원에 대해서는 LBA 캐피털과 이 회사 등기 임원 3명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등을 통해 받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에서 국내 업체끼리 과열경쟁 = 문제는 다른 해외부동산 펀드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몇년 사이 부동산 투자는 급격히 증가했다. 특히 해외부동산투자는 2014년 8.9조원 수준에서 지난 3일 기준 50.6조원으로 5.5배 이상 설정금액이 증가했다. 펀드수 또한 144개에서 683개로 4.7배 늘었다.

그런데 해외부동산 펀드 시장은 국내 기관투자자들이 몰리면서 과열·혼탁 양상으로 치달은 상황이다. 유럽 등 핵심 지역에서 빌딩 입찰이 벌어지면, 경쟁사의 절반 이상은 국내 업체들이 차지할 정도다. 한국 증권사들이 유럽부동산 시장의 큰 손으로 등극한 것이다. 올해 들어서는 런던·파리 등 서유럽 뿐만 아니라 오스트리아, 체코, 폴란드 등 동유럽, 중북부까지 유럽 전체 부동산 시장을 움직이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런데 유럽 등 해외 부동산 가격은 이미 많이 상승해 '고점' 우려가 나오고 있는데 한국 기관투자자들끼리 공격적으로 서로 매입하려고 경쟁하다가 빌딩 등 물건의 가격만 올린 사례도 비일비재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미 일부 국가의 부동산 경기 둔화로 자산 매각 과정에서 손실을 보는 사례가 사모펀드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한 대형증권사 관계자는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는 한국 IB들이 참여하지 않은 거래는 시작을 안하는 등 안 팔릴 물건은 한국 투자자들에게 소개하라는 말까지 나왔다"며 "한국 투자자들끼리 경쟁적으로 높은 가격을 써내 부동산 가격을 올려놓고 있어 수익률이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그는 "심한 경우에는 우량 물건을 선점하지 못한 증권사들이 조금 급이 떨어지는 B급 물건에도 투자를 할 우려 또한 커지고 있다"며 "해외 부동산은 현지 사정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증권사에선 실사 단계에서부터 꼼꼼하게 챙겨 상품을 만들어야 하며 고객들에게는 위험 투자를 감수할 수 있는지를 판단해 상품을 권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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