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부마민주항쟁 진상규명과 기억의 윤리

2019-10-14 10:00:00 게재
김종세 전 부산민주공원 관장

문재인정부는 부마민주항쟁 40년이 되는 올해 9월17일 국무회의에서 부마민주항쟁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했다. 이는 부마항쟁에 대한 정부의 인식과 65만 명에 이르는 국민의 서명 및 관련 단체의 노력의 결과이다. 늦었지만 환영할 일이다. 이제 진상규명과 역사기억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성찰할 시점이다.

첫째, 관련자들의 명예회복과 피해보상, 진상규명을 위한 법제화 작업은 2006년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의 진실규명 신청을 바탕으로 한 진실화해위원회의 2010년 권고 결정이 계기가 되었다.

박정희와 그에 부역한 자들을 기억해야

2013년 부마민주항쟁법이 만들어졌고 이 법에 따라 국무총리소속 부마위원회가 설치되었다. 하지만 부마위원회는 박근혜정부의 태업에 가까운 소극적인 태도로 인하여, 문재인정부에 와서야 제대로 된 진상규명 활동을 하고 있다. 2018년에는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이 출범하여 기념사업을 펼치고 있다.

최근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의 조사에 의하면, 응답자들은 부마항쟁의 계승을 위해서 진상규명이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라고 답했다.

우리는 부산대 총학생회가 1985년 ‘거역의 밤을 불사르라’는 기록을 남긴 이후, 진상규명을 위한 두 번의 기회(김영삼정부와 노무현정부 때)를 활용하지 못했다. 이제야 그 작업을 하고 있다.

현행법상 진상규명은 1979년 10월16일~20일 부산과 마산 및 경남 일원에서 일어났던 항쟁을 대상으로 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본다면 진상규명의 시간과 공간은 다른 문제다.

시간적으로는 부마항쟁의 배경인 박정희 통치기, 그리고 부마항쟁에서 구호로 제기된 ‘유신철폐’, ‘독재타도’, ‘언론자유’가 달성되는 1987년 6월항쟁까지를 하나의 역사적 국면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공간 대상은 국내외로 확장해야 할 것이다. 법적 진상규명이 부마위원회의 역할이라면, 역사적 진상규명은 부마기념재단의 역할이다.

둘째, 기득권세력인 지배계층이 부마항쟁에 대하여 갖는 기억 윤리는 대단히 기회주의적이다. “박정희는 죽었고, 유신‘헌법’과 긴급‘조치’는 나쁜 것이어서 당연히 폐지하고 해제해야 한다”고.

그리고 “부마‘사태’는 부마‘민주항쟁’으로 불러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뿐이다. 박정희 정권에 부역한 자, 그 대가로 챙긴 이익에 대해서는 처벌도 없고 성찰도 없다. 그 대신 피해자에 대한 금전적 보상과 기념의식, 연설, 퍼레이드, 진부한 이야기 그리고 ‘항쟁 실화’를 통해 항쟁의 영웅과 피해자만을 기억하도록 강요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별 생각 없이 동의한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윤리로 기억해야 한다. 박정희와 그에 부역한 자들을 기억해야 한다. 조작사건으로 형장의 이슬이 된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8인과 위헌적 유신헌법으로 감시, 연행, 고문, 구속, 해직되었던 수천명의 피해자들을 기억해야 한다.

박정희 정권의 국가폭력으로 재산을 빼앗기고, 노조활동으로 인해 반공법과 간첩조작의 대상이 되었던 이들을 기억해야 한다.

특히 성장.개발지상주의에 내몰려 피땀으로 생존전쟁을 치른 ‘영자’들과 ‘공돌이’ ‘공순이’들, 돈에 눈먼 부동산 투기와 재개발로 삶의 터전에서 버려진 ‘난장이’들, 이들을 기억해야 한다.

기억은 민주화운동의 전략적 자산

또한 5.18학살의 피해자와, 87년항쟁으로 유신헌법이 폐지될 때까지 흘렸던 그 많은 이들의 땀과 피를 잊지 말아야 한다.

이들은 박정희 통치기는 물론, 박정희가 죽고 난 뒤에도 긴 세월 고통을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다. 민주정부의 수립과 민주항쟁의 제도화 과정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기억해야 할 기억’들이 기억에서 대부분 지워지고 있다.

기억은 민주화운동의 전략적 자산이다. 가꾸지 않으면 시들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