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읽는 정치 |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처연함'에 '칼날'을 입힌 다산의 힘

2019-11-01 11:16:12 게재
정약용 지음 / 박석무 편역 / 창비 / 1만4000원

'유배'와 '편지'는 묘한 결합체다. '유배'는 '군대'나 '유학'으로 대체하기 어려운 깊은 처연함이 있다. 여기에서 '정약용'이라는 이름을 사이에 끼워 넣으면 '처연함'을 '칼날' 위에 올린 느낌으로 옮겨간다.

유배생활은 18년간 이어졌고 수많은 감정의 굴곡들은 정제되긴 했지만 활자의 굽이굽이 속에 새겨 있다. 두 아들 학연과 학유에게 전해지는 코칭은 직접적이고 자세했다. 책을 읽는 법부터 교우관계까지 세세하게 기록했다. 눈을 바라보며 말로 했다면, 스스로 몸이나 행동으로 보여줬다면 금세 전달될 얘기를 편지로 하려니 최대한 꼼꼼히 적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는 애잔함과 함께 정약용의 철학이 가득 담겨 있다는 점에서 가을에 맞는 책이다.

저자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은 1979년에 처음으로 이 책을 낸 후 4번에 걸쳐 새롭게 다듬었다. 그는 "다산이 18년간 귀양살이하면서 쓴 이 편지들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 좌절에서 벗어나고픈 사람이 더 가까이 했으면 싶다"고 했다. "다산은 한 오라기 희망으로 좌절할 줄 모르던 진짜 민중의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임금을 대하는 태도를 논하는 편지에는 그의 성품을 그대로 드러냈다. 임금의 존경과 신뢰를 받는 사람을 임금의 총애를 받거나 기쁘게 해주는 사람과 구분했다. "아침저녁으로 임금을 가까이 모시고 있는 사람은 임금이 존경하는 사람이 아니다"며 "경연에서 온화하게 말을 주고받고 일을 처리할 때 비밀리 부탁하고 임금이 마음속으로 믿고 의지해 서신이 자주 오가고 하사품이 자주 내려질지라도 그런 것을 총애나 영광으로 믿어서는 절대 안 된다"고 했다.

그러고는 "날마다 적절하고 바른 의론을 올려서 위로는 임금의 잘못을 공격하고 아래로는 백성들의 숨겨진 고통을 알리도록 해야 한다"면서도 "혹 사악한 관리를 공격해 제거해야 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지극히 공정한 마음으로 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 책에 새롭게 포함된 지방관 이종영에게 남긴 두 편의 편지는 목민관의 자세를 다뤘다. 짧지만 '목민심서'의 축약판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명확하다. 정약용은 '고을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밝음, 위엄, 강직을 낳는다며 '염(청렴)'을 제시했다. 재물과 여색, 직위에 적용할 것도 주문했다.

그러고는 녹(봉급)과 지위를 보전하고자 하기 때문에 상관이 엄한 말로 위협하거나 간사한 관리가 조작한 비방으로 겁준다고 했다.

재상이 청탁으로 더럽히려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했다. "녹과 지위를 다 떨어진 신발처럼" 여겨야 한다는 조언이다. "상관이 언제나 나를 휙 날아가 버릴 새처럼 생각한다면 내가 요구하는 것을 감히 듣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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