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이웃을 위한 겨울외투 나눔' 행사 현장

"긴 코트 생겨 한국의 첫 겨울 따뜻하게 보낼 수 있게 됐어요"

2019-11-18 12:57:53 게재

서울시민·학교, 중소기업, 공공기관 적극 참여 … 옷 기부한 학생들 자원봉사자로 나서 눈길

#1. 지난 4월부터 철강관련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카트리 지반(32)씨는 이른바 '이주노동자'다. 그의 고향은 네팔 카트만두 인근 농촌 마을이다. 그의 고향은 제일 추울 때가 1℃ 정도다. 그는 한국의 겨울은 무척 춥다는 말에 독감주사도 미리 맞았지만 월급 대부분을 가족들에게 송금하는 그에게 만만치 않은 가격의 외투 마련은 고민거리였다. 최근 그는 자기처럼 입국 1년 미만 외국인들에게 겨울 외투를 기증하는 행사가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다는 소식에 한걸음에 달려왔다. 지반씨는 이날 따뜻한 옷을 마련했을 뿐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K-POP 공연도 보며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공장으로 돌아갔다. 그는 "한국에서 일하면서 어떻게 급성장했는지 알고 싶다"며 "기술도 배우고 돈을 모아 고향에 돌아가면 창업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2. 올해 8월 입국해 서울소재 한 대학 화학분야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구구스 한디까(22)씨는 인도네시아 출신이다. 경제적 부담으로 아직 겨울 외투를 구입하지 못한 그는 대학 선배로부터 행사 소식을 듣고 함께 참가했다. 대학 선배들 따라 참가한 행사 당일에도 그는 "춥지만 견딜만하다"며 맨발에 샌들을 신고 있었다. 그는 "이 곳에서 긴 코트를 챙길 수 있어서 처음 겪는 한국의 겨울이지만 따뜻하게 보낼 수 있게 돼 기쁘다"면서 "한국에서 공부를 마치면 인도네시아로 돌아가 공무원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17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외국인노동자 유학생 다문화 가족 등 외국인 이웃을 위한 겨울준비 외투나눔 대축제 '어서 와! 겨울은 처음이지'가 열렸다. 이날 행사는 서울시와 시교육청 소속 공무원, 학생·학부모와 교직원 그리고 시민들이 기부한 외투를 외국인 이웃들이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도록 전달하는 자리였다. 이날 행사장은 서울시 전역에 종일 내린 빗줄기를 뚫고 참석한 2000여명의 외국인 이웃들로 붐볐다.


◆"한국인 정 느꼈어요" = 행사장에는 이른 아침부터 새 옷처럼 변신한 7800여벌의 기부 받은 외투가 걸렸다. 세탁 후 포장을 한 옷은 성별·사이즈별로 나뉜 구획에 세워진 행거에 가지런히 전시됐다. 행사를 찾은 외국인 이웃들은 총 5차례로 나뉘어 입장해 자기 마음에 드는 옷을 한 벌씩 골랐다.

회사가 마련해준 교통편으로 동료들과 함께 참가한 베트남 출신 마빙(24)씨는 "지난 7월 한국에 와서 냄비 만드는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있다"면서 "한국 겨울은 무척 춥다고 해서 걱정이 많았는데 오늘 두툼한 패딩을 챙길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이어 "다양한 공연과 행사도 마련돼 재밌고 즐거웠다"고 덧붙였다.

이날 내외빈으로 참석한 진희선 서울시 행정2부시장,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국회 이용득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김동만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 이정식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 이현숙 탁틴내일 대표, 이옥경 내일신문 부사장 등도 자신의 외투를 기부했다. 내외빈들은 기부에 이어 현장에서 참가자들이 선택한 외투를 자원봉사 학생들과 함께 포장하는 봉사활동을 벌였다.

이용득 의원은 "따뜻한 나라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에게 겨울 외투를 나누는 의미 있는 행사에 함께하게 되어 뜻깊게 생각한다"며 "이주노동자들의 주거권 보호를 위해 발의한 '이주노동자 비닐하우스 주거방지법'이 지난해 12월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시행 중인 만큼, 오늘 행사와 더불어 이주노동자들이 보다 따뜻한 겨울을 나는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동만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도 "지난 15년간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노동자들은 대한민국 중소기업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면서 "우리 사회가 외국인 노동자들의 이바지를 기리는 뜻깊은 행사"라고 말했다. 또 이정식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 "머나먼 이국땅에서 모든 게 생소하고 스산한 겨울 같을 때 민간의 자발적인 움직임으로 시작한 겨울외투 나눔행사는 어떤 추위도 녹여내고,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는 따뜻하고 든든한 핫팩이 돼 주리라 믿는다"고 밝혔다.

'어서 와! 겨울은 처음이지' 행사에 참가해 마음에 드는 옷을 고른 외국인 이웃이 기뻐하고 있다. 사진 이의종


◆한복체험 등 다채로운 행사 눈길 = 행사장에는 다양한 문화행사와 체험부스도 마련됐다. 외국인노동자와 기부자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이 또 다른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게 설치했다.

먼저 이국땅에서 고향의 맛을 그리워하는 외국인 이웃들을 위한 '고향음식축제'가 준비됐다. 참가자들은 중국(마라탕 왕만두), 러시아(소시지핫도그), 인도네시아(미고렝 나시고렝) 인도·파키스탄(탄두리치킨 인도라이스), 베트남·태국(팟타이 쌀국수) 등의 대표 음식을 맛 볼 수 있었다. 또 한복체험, 한글이름쓰기, 수제비누 만들기, 손뜨개 체험, 한국 전통놀이 체험 등의 부대행사도 열렸다.

이 외에도 전통타악 퍼포먼스, K-POP 댄스, 마술, 세계 전통 춤(중국·필리핀) 등의 공연도 참가자들의 시선을 끌었다. 특히 입국 1년미만 외국인을 대상으로 손뜨개 목도리, 마스크팩, 과자류, 수면양말 등이 담긴 기프트 박스가 제공됐다.

행사장에서 만난 이주여성 안나쿠수마(53씨는 "2002년 월드컵이 한창일 때 한국에 산업연수생으로 들어와 대전 신탄진에서 첫 한국 겨울을 맞았다'면서 "몹시 추워 피부가 트고 감기, 몸살로 고생도 많았지만 그때는 돈도 못 벌고 겨울 옷은 너무 비싸 엄두가 안 났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한국인과 결혼해 중3인 아들, 중1 딸과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서 살면서 서울시교육청 다문화인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면서 "한국 겨울을 처음 맞는 외국인은 꼭 내복을 챙겨 입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우)과 진희선 서울시 행정2부시장이 외국인 이웃들이 골라온 외투를 포장해주고 있다. 사진 이의종


◆월급 대부분 송금, 외투 구입 부담 = 이번 행사는 서울시, 서울시교육청, 내일신문, 탁틴내일, 한국산업인력공단, 노사발전재단, 국립국제교육원, 중소기업중앙회 등이 힘을 모아 마련했다. 이미 일상생활에서 외국인 이웃과 그들의 문화를 접하고 있지만 차별과 불평등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는 문제의식에서 지난해 처음 기획됐다. 올해는 2회째 행사다.

고심 끝에 참여기관들은 겨울외투에 주목했다. 시민들의 작은 실천이 성숙한 다문화사회로 이어지고, 외국인 이웃에게 실질적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안이다. 지난해 기준 국내 거주 외국인은 200만명을 넘었다. 이중 취업 비자를 받은 노동자는 100만명 정도다. 최근 외국인 노동자들의 출신지나 근무 직종이 다양해지는 추세지만 아직까지는 80% 정도가 중국과 동남아 등 아시아권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내국인들이 기피하는 공장 건설현장 농수축산업 등의 직군에 종사한다.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는 언어와 문화 차이 만큼이나 힘든 게 한국의 추운 겨울이다. 특히 동남아 출신 노동자들에게는 고향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한국의 겨울을 맞지만 월급의 대부분을 본국에 송금하거나 저축하는 만큼 난방이나 외투 구입비는 매우 부담스럽다. 이에 시민들의 옷장 속 묵은 옷을 떠올렸다. 여러 시민단체와 SNS를 통해 품질에 문제없지만 체격이 달라져 입지 못하거나 취향이 바뀌어 안 입게 된 옷을 기증하자는 캠페인을 벌였다.

김주완 노사발전재단 외국인력팀장은 "따뜻한 동남아 지역에서 살다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처음 온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처음 겨울나기는 쉽지 않다"면서 "이번 행사는 두툼한 외투도 챙기고 선물도 두 손 가득히 가져가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도록 해 주었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외국인 산업재해 사고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처음 겪는 한국의 겨울추위로 돌연사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작업장의 안전은 물론 따뜻한 생활로 안전하게 겨울을 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통역봉사 나선 외국인유학생봉사단 눈길 = 또한 행사장에서는 일반인과 학생 봉사자들이 안내부터 통역까지 행사장 곳곳에서 궂은일을 도맡았다. 또 다양한 체험·상담 부스 역시 취지에 공감한 이들이 재능기부 형태로 참가했다.

또한 많은 학생과 학부모들이 기증자와 자원봉사자로 참가했다는 점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서울시교육청 소속 공무원과 산하 중·고교 학생들은 외투를 모아 기증했으며 일부 학생들은 자원봉사로 참여했다. 행사장 안내와 외투 포장을 도운 김소현 학생(신사중 2)은 "봉사시간이 필요해 참가했는데 행사에 참여하다보니 우리나라에 와서 고생하시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은것을 깨달았다"면서 "이번 겨울 우리가 기증한 외투로 조금이나마 따뜻한 겨울을 보내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2년 연속 기부에 참가한 용산고 교장은 "우리 학교는 실천중심 인성교육에 역점을 두고 있다"면서 "외국인 이웃들을 위한 이번 행사는 학생들에게 '사랑의 실천'을 경험하게 하는 살아있는 인성교육"이라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도 학생 인성교육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참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행사에선 외국인유학생들 활약도 컸다. 서울시-KT 외국인유학생봉사단이 통역봉사로 참여한 것. 봉사단은 26개국 60명 유학생들로 구성됐다. 낙도 어린이를 위한 외국어·글로벌 문화교육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진행한다. 서울시청에서 외국인주민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팜 튀 퀸하(39·베트남)씨는 "유학생들이 같은 외국인이웃으로 행사 취지에 동감해한 54명이나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며 "통역으로 행사에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봉사단 호응이 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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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진 이제형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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