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수요 정점, 얼마나 빨리 닥칠까

2019-11-18 11:51:09 게재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

전 세계가 점차 석유에 등을 돌리는 분위기다. 하지만 '얼마나 빨리'가 진짜 문제다. 신재생에너지와 전기자동차 부문의 기술적 발전에다 기후변화의 위협이 가속화되면서, 전 세계 석유 수요가 엑슨모빌이나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석유기업 아람코의 예상보다 더 빨리 정점에 달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때 석유 공급이 고갈될 것이라는 의미의 '피크오일론'(석유정점론)이 유행했다면, 지금은 정반대 양상의 '피크오일론'이 힘을 받고 있다고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가 최신호로 분석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전 세계 석유 수요의 약 60%는 교통(운·수송)에서 나온다. 이 분야는 기술발전이 가장 신속히 이뤄지는 곳이기도 하다. 미국 테슬라나 중국 비야디 등 전기차 제조사들의 등장이 자율주행, 차량공유 부문의 기술 발전과 맞물려 파괴력을 증폭시키고 있다.


사람들은 차를 소유하는 시대에서 보다 효율적인 이동수단을 빌리는 시대로 이동하고 있다. 그동안 석유수요 정점론을 비웃던 사우디 아람코조차 최근 기업공개(IPO) 설명서에 '피크오일'을 위협요소로 언급할 정도다.

그렇다고 전 세계 석유가 고갈되고 있는 건 아니다. 오늘날 회자되는 피크오일은 1950년대 등장한 개념과는 아주 다르다. 당시 로열더치셸 소속 지질학자 킹 허버트가 "미국의 석유 생산량이 1970년대 정점에 달하고, 전 세계는 물리적으로 석유고갈 시대를 맞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실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새로운 유전 발굴, 기존 유전의 효율적 활용 방법이 등장하면서 석유 공급은 향후 오랜 기간 풍족할 전망이다.

피크오일론은 석유 수요 정점론으로 탈바꿈했다. 사람들이 석유를 덜 쓸 것이고, 그에 따라 높은 가치가 있다고 평가받는 석유는 향후 땅 속에 그대로 있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전문가들의 공통적 견해는 '장기적 석유 수요 예측이 점차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석유 소비가 2030년쯤 정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전기차나 보다 효율적 엔진의 등장 때문이다.

또 신재생 에너지가 비상하고 있다. 전력기업들은 석유보다 더 청정한 천연가스로 눈을 돌리고 있다. 태양광 발전 비용도 10년 만에 절반으로 하락한 상황이다.

석유 수요에 정점이 올지 여부는 중요하다. 지구온난화를 섭씨 2도씨(화씨 3.5도씨) 이하로 낮추는 문제가 긴급해졌다. 이는 UN 주도의 파리기후협약에서 설정한 목표다. IEA는 이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몇년 내로 석유 수요가 정점에 달한 뒤 급감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현실화할 가능성은 낮다. IEA가 가장 그럴듯한 상황 전개로 판단하는 건 석유 수요가 2030년까지는 확대되리라는 것이다.

석유 수요 정점론 가운데 가장 빠른 시기와 가장 먼 시기 사이엔 대략 20년 정도의 시간차가 있다. 가장 빠른 시기의 시나리오는 전기차의 급격한 확대, 에너지 효율성의 개선, 지구온난화 가스 배출을 억제하기 위한 국가간 단합된 정책 등에 기반한다. 노르웨이 국영석유기업 '에퀴노르'가 이런 주장의 선두에 섰다. 에퀴노르는 "석유 수요는 빠르면 2020년대 말 정점에 달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셸의 CEO 벤 판 뵈르던은 2017년 "전기차가 대중화된다면, 수요 정점은 향후 15년 내 닥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설적 석유 트레이더인 앤디 홀은 이달 "이르면 2030년 석유 수요 정점이 올 것"이라고 점쳤다.

하지만 굴지의 석유 기업들은 다른 목소리를 낸다. 많은 기업들이 2040년쯤을 정점으로 본다. 엑슨모빌과 아람코를 포함한 석유 기업들은 "석유산업이 향후 수십년 동안 성장을 구가할 것"이라고 말한다. 전 세계 중산층이 계속 늘어나면서 석유 에너지 수요를 끌어올릴 것이라는 점을 근거로 든다.

국영기업 사우디 아람코조차 이달 공개한 IPO 계획서에서 IHS마킷의 외부 조사를 인용해 "향후 20년 내 석유수요 정점이 닥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중동 산유국이 중심이 된 석유수출국기구(OPEC)도 최소 20년 동안 석유 수요가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리고 석유 수요가 정점에 달한다 해도 급격히 하락하기보다는 상당 기간 보합세를 지속할 것으로 본다.

석유 수요 정점 예측에 차이가 나는 이유는 전기차의 보급 속도에 이견이 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는 "전기차의 경우 배터리의 가격이 지속 떨어지면, 향후 10년 내 내연기관 엔진 자동차만큼 가격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 세계 대형 자동차 제조사 일부도 화석연료로 구동되는 자동차를 단계적으로 줄여나갈 계획을 밝히고 있다. 볼보의 경우 올해 출시한 모든 신차 모델은 전기차 버전이었다. 폭스바겐은 2025년 전기차 판매 비중을 25%로 늘릴 예정이다. 다임러와 BMW의 경우 2025년까지 15~25%를 목표치로 삼고 있다.

각국 정부도 적극적이다. 인도 정부는 2017년 "2030년 신차 판매는 100% 전기차에게만 허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후 30%로 목표치를 낮췄다. 중국은 2035년 전기차 비중을 60%로 잡고 있다. 프랑스와 영국은 2040년 휘발유와 경유차 판매를 금지할 작정이다. 미국의 영향력은 예측이 어렵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구온난화 대책 노력에 찬물을 끼얹고 있기 때문이다.

석유 수요 정점의 영향을 직접 받는 석유 기업들은 천연가스, 수소연료 전지 등 더 청정한 기술에 투자하는 등 사업다각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 원유의 비에너지 부문 사용을 확대하고 있다. 플라스틱이나 비료 등 화학제품이다.

석유 탐사 프로젝트엔 보통 수십억달러가 투자된다. 이 투자가 결실을 맺으려면 10년 이상 걸린다. 따라서 석유 수요가 언제 정점이냐가 사업 성패와 직결된다.

영국의 금융 싱크탱크인 '카본트래커'는 "만약 석유 수요가 석유 기업들의 예상보다 일찍 줄어든다면 이들 기업이 낭비할 돈은 2조3000억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석유 수출로 나라살림을 꾸리는 나라들은 엇갈린 행보를 보인다. 사우디는 아람코 기업공개로 벌어들인 돈을 탈석유시대에 대비한 경제 다각화에 쓸 예정이다. 러시아와 베네수엘라, 나이지리아 등 기타 산유국들은 아직까지 피크오일 이후의 미래에 대한 계획을 밝히지 않고 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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