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사서들, 열악한 노동환경에 목소리내다

2019-11-20 10:00:00 게재
안종헌 노원구립도서관 사서

서울에 있는 공공도서관들은 대부분 각 구청에서 맡아 운영하는 구립도서관의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구립도서관들의 95%는 민간위탁으로 운영되고 있어 대부분의 직원들은 공무원이 아니다. 위탁기관의 정규직이라고 할지라도 위탁기관이 바뀔 때 고용승계, 경력인정 등의 문제가 발생하곤 한다. 게다가 이러한 정규직조차 1년차 평균 임금은 180여만원으로 최저임금과 비교해 큰 차이가 나지 않는 등 심각한 저임금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3년차가 되어서야 월급으로 200만원을 받는 것이 현실이다. 실업급여가 인정되지 않는 초단시간 시간제 근무와 같은 질이 낮은 형태로 부족한 인력을 충원하는 경우도 많다.

정규직조차 1년차 평균 임금은 180여만원

과다업무도 문제다. 2017년 한국도서관협회가 문화체육관광부에 제출한 ‘공공도서관 인력 배치기준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도서관법에 따라 연면적과 장서 수 등 사서배치 기준을 적용하면 충원율은 18.2%에 불과하다. 대민 서비스 기관인 만큼 무분별한 이용자들의 요구에도 시달린다. 주민들의 공공성을 키우고 시민의식을 성장시키는 역할을 수행해야 할 공공도서관 직원들은 과다업무와 무분별한 이용자들의 요구에 몸과 마음이 지쳐간다. 다음은 실제 사례들이다.

사서 A씨의 경우를 보자. 그는 새로 생긴 업무인 ‘마을공동체 활성화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주민들에게 그들이 활동할 공간과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면서 좀 더 밀접하게 마을과 주민들과 협력하는 게 업무다. 하지만 업무량은 증가하는데도 사서는 충원되지 않아 성취감과 보람만으로 버텨야만 하는 현실은 버겁기만 하다.

도서관을 규정대로 이용하는 시민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례도 있다. 사서 B씨는 자료실 근무 중 책 두 권을 3일간 연체한 이용자에게 앞으로 6일간 대출이 정지된다고 알렸다. 연체료 600원을 내면 계속 대출 서비스 이용이 가능하다고 안내했다. 해당 이용자는 ‘그런 규정이 어디 있냐’며 재차 질문하고, B씨는 관련 규정을 인쇄해 보여준 후 연체료 규정을 다시 설명했다. 이후 그는 고작 600원 때문에 자신을 속이려 인쇄물까지 보여 주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B씨에게 모욕적인 말을 하며 도서관을 떠난다.

도서관 직원의 80% 이상이 여성으로 이뤄져 있는데도 성희롱 성추행과 관련, 불안한 환경에 노출돼 있기도 하다. 사서 C씨의 경우, 자료실 근무를 할 때 주변에서 자신을 힐끗 쳐다보는 한 남성이 있었다. 이후 해당 남성은 C씨 혼자 당직근무를 할 때 상황에 맞지 않는 질문을 하며 접근하고, 퇴근길에 뒤에서 따라오기도 했다. 이로 인해 퇴근을 할 때는 친분이 있는 남성이 동행하고, 당직근무를 할 때는 동료 직원이 함께해야 했다. 도서관 업무 특성 상 혼자서 자료실 근무를 수행하는 경우가 많지만 도서관에 청원경찰이 필요하다는 사서들의 주장은 관심을 받지 못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묵묵히 주어진 일만 해오던 도서관 사서들에게 최근 새로운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젊은 사서들이 자발적으로 구성한 모임 ‘사서로, 살다’는 사서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며 시민들의 호응을 받고 있다. 관악구와 노원구의 구립도서관 사서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해 임금 및 복리후생 향상, 인력 증원 등의 성과를 얻어내고 있다.

성희롱 성추행 등 불안한 환경에 노출돼 있어

지난달에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관악·노원구립도서관 분회와 권수정 서울시의원의 주최로 ‘서울시 구립도서관 노동실태와 개선방안에 관한 정책토론회’를 개최해 많은 사서와 시민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구립도서관 사서들은 오는 22일 서울지식이음축제의 ‘서울지역 공공도서관 서비스 노동자의 노동환경 토론회’를 통해서도 실태를 알릴 예정이다. 이제 구립도서관 사서들은 ‘가만히 있기만 하면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사회에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셈이다.

구립도서관 사서 중 1명인 필자도 앞으로 꾸준히 목소리를 내고자 한다. 그리하여 지금 일하고 있는 사서들, 그리고 미래에 함께 일할 모든 도서관 사서들이 즐겁게 떳떳하게 일할 수 있는 그 날이 오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