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금융시장 배관 '레포시장(Repo·환매조건부채권 거래)' 어쩌다 막혔나

2019-11-29 10:56:35 게재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과거 2년여 분석

지난 9월 '레포'(환매조건부채권) 금리 발작은 시장을 안절부절못하게 만들었다. 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즉각 시장에 개입해 수십억달러 긴급 자금을 수혈했다. 개입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하루짜리 레포시장에서 은행들은 다른 금융기관으로부터 미국채 등 담보를 잡고 현금을 빌려준다. 9월 발작 이후 현재까지는 대체로 잠잠한 상황이다.

하지만 올 연말 금융권이 실적 꾸미기에 나설 경우 다시 한 번 유동성 부족 상황이 예상돼 연준이 또 시험대에 설 전망이다. 현재 연준은 레포시장에 자금을 주입하는 동시에 채권을 대거 사들이며 자산을 부풀리고 있다.



일부 은행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촘촘해진 규제 때문에 유동성이 급감했다며 '앓는 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 대선 경선후보 엘리자베스 워런 등 정치권으로부터 '개혁을 물리자는 것이냐'는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연준은 수년 동안 누적된 다양한 기술적 요소 때문에 현금 수요가 공급을 초과했다는 대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7일 수십명의 은행가, 전문가, 투자자, 금융당국자 등을 취재해 지난 2년여 동안 레포시장에서 벌어진 일을 들여다봤다. 레포시장에서 무엇이 잘못됐고,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또 다른 신용 경색을 피할 수 있을지 따졌다. 괄호 안은 각 시기 레포시장 규모(자금 수요)다. 참고로 2017년 9월 레포시장 규모는 6450억달러였다.

# 2017년 10월 : 연준 자산 줄이기 돌입(레포시장 규모 7720억달러)

연준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를 부양하기 위해 미국채를 중심으로 수조달러어치의 자산을 매입했다. 그러다 2년 전인 2017년 10월부터 자산매입을 중단하고 만기가 돌아오는 미국채를 떨어내기 시작했다. 이는 미국채 시장의 최대 큰손이 사라진다는 의미였다.

당연히 새로운 매수자가 등장해야 했다. 결국 은행과 기관투자자들이 대타를 맡았다. 은행들이 보유하던 지급준비금이 미국채 시장으로 흘러들었고, 그 결과 레포시장 유동성이 줄었다.

일부 미국채 매수자들은 레포시장을 이용해 미국채를 사들였다. 당연히 레포시장의 자금 공급은 줄어들고 수요는 늘었다.

# 2018년 1월 : 트럼프 행정부 대규모 감세정책 실시(레포시장 규모 8240억달러)

트럼프 행정부는 법인세율을 낮췄다. 행정부 세수가 줄어들어 재정적자가 더 늘어난다는 의미였다. 따라서 미 재무부는 더 많은 국채를 팔아야 했고, 이는 결국 은행과 기관투자자들에게 더 큰 매수부담으로 돌아왔다. 다시 한 번 금융권의 현금이 미국채로 흘러들었고, 레포시장 유동성 공급이 타격을 받았다.

한편 감세정책으로 미국 기업들은 역외 조세회피처에 숨겨든 현금을 미국내로 들여왔다. 지난해에만 7770억달러가 역외에서 유입됐다. 이 현금은 당초 역외에서 미국채에 투자되던 자금이었다.

하지만 미국내로 흘러들면서 다른 곳에 쓰였다. 이 대목도 다른 투자자들이 더 많은 자금을 미국채에 할당해야 했던 이유를 설명해준다.

# 2018년 6월 : 연방기금금리 상승(레포시장 규모 7840억달러)

유동성 압박의 첫 번째 신호는 다른 단기자금 시장에서 먼저 나왔다. 연준이 기준금리 범위를 설정하는 연방기금금리시장이다. 여기에선 은행들이 무담보로 하루짜리 자금을 거래한다.

반면 레포시장은 담보 거래 시장이다. 이 시장의 금리가 연준이 설정한 기준금리 상한선을 넘으려는 상황이 벌어졌다. 연준은 다급해졌다. 방치할 경우 기준금리 통제 능력을 상실한다는 의미였기 때문.

연준은 은행들의 초과지급준비금(초과지준)에 지급하는 이자를 인하하면서 긴급 대응에 나섰다. 이자가 낮아진 초과지준금에 묵혀 두지 말고 은행들 상호간에 적극 대출에 나서라는 의미였다. 그래야 연방기금금리가 하락하기 때문.

# 2018년 12월 : 외국계 투자자의 미국채 매도(레포시장 규모 9190억달러)

연준은 지난해 3월 6월 9월 12월 등 4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글로벌 경제가 심상치 않은 상황에서도 금리인상을 단행했다. 일부 외국계 투자자들이 미국채 매입을 헤징했다. 달러자산 투자에서 자국자산 투자로 전환했다.

외국계 투자자들이 미국채 매입을 줄이면서 미국 은행과 기관투자자들이 그 공백을 또 다시 메워야 했다. 레포시장 자금 공급에 불리한 요인이었다.

# 2019년 3월 : 미국 수익률곡선 역전(레포시장 규모 9310억달러)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심화되면서 글로벌 경제에 이중의 부담을 안겼다. 미국채 10년물의 수익률이 만기 1년 이하 단기물보다 낮아지는 수익률곡선 역전 현상이 벌어졌다. 이는 투자업계에서 경기침체의 전조로 간주하는 현상이다. 일부 투자자들이 미국채 장기 투자에서 손을 떼게 됐고, 은행이 그 자리를 메웠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채에서 물러난 투자자들이 레포시장으로 몰려들었을 것이기 때문에 결국 상쇄효과가 벌어졌다고 반박하기도 하다.

# 2019년 7월 : 미 재무부 보유 현금 증가(레포시장 규모 1조1570억달러)

미 의회 양당이 행정부 부채 한도를 2년 동안 늘려주는 데 합의했다. 미 재무부는 더 많은 국채를 발행할 수 있었다. 늘어난 국채만큼 레포시장 공급자금이 줄었다. 미 재무부는 신규 국채 입찰로 바닥난 곳간을 신속히 채웠다. 게다가 9월은 미국 기업들의 법인세 납부 기간이었다. 행정부 수입이 더욱 늘었다.

미국채에 투자된 돈은 은행을 통해 금융시장에서 순환되는 돈이 아니다. 재무부가 금고를 가득 채우면서 마침내 레포시장은 한계를 넘어 쓰러졌다.

# 2019년 9월 : 은행들의 각기 다른 지준금 규모(레포시장 규모 1조1960억달러)

지난 9월 17일 레포시장 금리가 10%에 육박했따. 레포 참가자는 물론 연준도 경악했다. 당시엔 이유를 몰랐다. 은행이 연준에 맡겨둔 지준금 규모만 1조2000억달러에 달했기 때문이다. 레포시장 금리가 오르면 자금을 공급하는 측에서는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 하지만 은행들은 레포시장에서 지갑을 열지 않았고, 금리는 10% 가까이 껑충 뛰었다.

일부 은행들은 '금융위기 이후 확충해야 하는 현금의 최소 비율이 높아져 레포 시장에서 자금을 빌려줄 수 없었다'는 입장을 표했다. 보통 초대형 은행들이 지준금을 대거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안정성과 유동성 높은 초우량 유동현금 자산을 일정 비율 이상 보유할 의무가 있기 때문.

하지만 규제 여부를 떠나, 은행들은 각기 내부 지침으로 지준금 규모를 조절하고 있다. 예를 들어 웰스파고의 경우 초우량 유동현금 자산 가운데 연준 지준금에 넣어두는 비율이 39%에 달한다. 반면 뱅크오브아메리카와 씨티뱅크는 15% 정도다.

# 2019년 10월 : 연준의 적극 개입(레포시장 규모 1조930억달러)

레포시장 발작에 맞서 연준은 뉴욕연방은행에 긴급 자금 수혈을 지시했다. 금융기관들이 레포시장에서 초단기자금을 원할 경우 뉴욕연방은행이 긴급 대출하고 있다. 하루짜리와 2주짜리 등 2가지 긴급자금이다.

연준은 또 미국채 매입을 재개했다. 한달에 600억달러씩 매입할 계획이다. 은행이 보유한 미국채를 사주면서 은행의 지준금을 늘려주려는 목적이다. 연준 제롬 파월 의장은 은행의 자본확충 의무비율을 줄여주거나 유동성 규제조항을 풀어주는 방안을 배제한 반면, 은행이 연준으로부터 당좌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다음달이다. 은행들은 일반적으로 연말 레포시장에서 발을 뺀다. 자산 규모를 줄여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레포시장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관심사다.

현재 레포 자금 수요는 안정된 것처럼 보인다. 하루 평균 규모가 1조500억달러 수준이다. 뉴욕연방은행은 레포시장에 이상신호가 보이면 언제든 시장개입의 규모를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연준은 레포시장의 발작 이유를 제대로 파악한 것이기를 희망하고 있다. 과연 그럴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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