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조위 권고안, 현장에선 휴지조각"

2019-12-04 11:40:50 게재

고 김용균 1주기 토론회 … "땜질식 처방, 이행점검위 구성해야"

"김용균씨가 사망한지 1년이 지났지만 하청 발전노동자들에게 지급된 것은 달랑 마스크 하나뿐이다. 정부는 원청 발전사에 2950원짜리 특급 마스크를 지급하라 지시했지만 노동자들은 700원짜리 방진 1급 마스크를 다 쓴 뒤에 교체해 준다." 김용균씨 죽음을 세상에 알린 이태성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간사의 말이다.
일하다 죽지 않게! 차별받지 않게!│고 김용균 1주기 추모위원회 관계자들이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청년비정규직 고 김용균 1주기 추모주간 선포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임화영 기자


사단법인 김용균재단과 민주노총 등 100여개 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고 김용균 노동자 1주기 추모위원회'는 3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휴지조각이 된 조사보고서' 토론회를 열고 문재인정부에서 중대재해사업장 조사위원회 권고가 이행되지 않는 실태를 고발했다.

김용균씨는 지난해 12월 10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낙탄작업을 하다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숨졌다. 그는 당시 24살로 입사한지 3개월만이었다.

이에 정부는 지난 4월 국무총리 소속 기구로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특조위)을 출범시켰다. 특조위는 8월 김용균씨 사망사고의 근본 원인이 위험의 외주화와 원·하청 간 책임회피에 있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또한 △구조·고용·인권 △안전기술 △법·제도개선 등 3개 분야 22개 권고안을 담은 715쪽의 보고서를 내놨다.

앞서 발전소 현장 노동자인 이 간사는 "김미숙 고 김용균씨 어머니를 비롯한 많은 분들의 노력으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통과했지만 정작 발전노동자들은 해당 법의 적용을 받지 못한다"면서 "문 대통령과 이낙연 국무총리는 약속했던 특조위 권고안을 이행해야만 한다"고 촉구했다.

특조위 조사위원으로 활동했던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은 "보고서가 발표된 이후 정부 관계자들은 안전대책은 권고안대로 할 수 있는데 직접고용은 어렵다는 식으로 말하며 땜질식 처방으로 퇴행하고 있다"며 "당장 실현되지 못하더라도 해법을 찾겠다는 공개적 입장을 정부가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모든 권고안에 대한 감시와 점검이 가능하도록 통합적인 이행점검위원회를 만들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는 2016년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진상조사단, 2017년 거제 조선소 '크레인 참사' 조사위원회와 '집배노동자 과로사' 노동조건개선 기획추진단 등도 참석해 중대재해 사업장에 대한 권고사항 이행을 촉구했다.

2017년 8월 우정사업본부 노사와 전문가들은 집배원의 과로사 등을 막기 위해 '집배원노동조건개선 기획추진단'(기획추진단)을 구성했다. 기획추진단은 지난해 10월 △인력증원 △토요근무 폐지 △안전보건관리시스템 구축 등이 담긴 7개 권고안을 내놨지만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기획추진단 활동을 시작한지 만 2년이 지났고 권고안을 발표한지 1년이 지났지만 부끄러울 정도로 권고안에서 반영된 것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2017년 5월 삼성중공업에서 크레인 참사이후 구성된 '조선업 중대산업재해 국민참여조사위원회'도 다단계 하도급 원칙적 금지 등을 권고했다.

이김춘택 금속노조 경남지부 조선하청조직사업부장은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같은 원청은 안전을 위해 1년에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을 쓰지만 그 영향력이 다단계 하도급 밑바닥까지 미치지 못한다"며 "다단계 하도급이 허용되는 한 조선소들이 아무리 돈을 많이 들여도 하청노동자들은 죽어 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고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은 "(특조위가) 어마어마한 분량의 책을 냈고 비정규직의 억울하게 죽어간 삶이 (책 안에) 들어있는데 휴지조각이 된다는 것이 정말 마음이 아프다"며 "휴지조각이 되지 않게 우리가 싸워서 해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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