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내내 읽다가 늙었습니다

책을 벗 삼아 평생을 보낸 자유인

2019-12-13 10:35:59 게재
박홍규 박지원 지음 / 사이드웨이 / 1만7000원

"저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가 교과서 숭배주의라고 생각합니다. 시험을 통한 능력주의라고 생각하고요. 그런 걸 좀 배제하고 더욱 다양한 생각이 흘러넘치는 세상이 제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민주주의입니다...... 교과서 한권으로 명문대에 합격했다. 이것만큼 독서 문화에 위험한 생각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독서를 통해 다양한 생각이 열리고, 그 열림 속에서 다양한 독서와 번역과 기술이 가능해지는 그런 세상이 좋은 세상, 바람직한 세상이라 생각합니다."

'내내 읽다가 늙었습니다' 책에 나오는 저자 박홍규 선생의 말이다.

한평생 도서관에 다니며 150권이 넘는 책을 쓰고 번역했던 사람이 있다. 운전면허증도 핸드폰도 없이 자전거를 타고 시골길을 달려 학교를 오가는 사람. 아내와 함께 시골에서 600평 땅에 농사를 지으며 오늘도 가방에 도시락을 싸든 채 묵묵하게 책을 읽고 또 읽는 사람.

그리고 강단에 머무르지 않고 현장의 노동자들과 오래도록 부대끼던 노동법 학자. 대학 교수이면서도 전임 교수의 월급을 반으로 깎아야 한다고 주장하던 교수. 동창회나 동문회, 회식문화, 끼리끼리와 패거리주의를 끔찍하게 싫어하고, 더치페이가 왜 문제가 되는지조차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하던 사람.

오래 전부터 자기 밥값은 자기가 내는 게 당연하다고 주장해 온 사람. 좌우를 불문하고 왕따가 되는 걸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해왔던 사람.

독재자와 재벌 체제에 분노하는 진보적 지식으로 불리면서도, 누구보다 앞장서서 진보 좌파의 엘리트주의와 패권주의를 비판하던 사람.

그렇게 일흔의 생애를 자발적인 단독자로 살아온 사람. 외롭게 사는 것이 더 가치있다고 주장하는 사람. 사회를 비판하기에 앞서 자기의 한계를 먼저 고백해온 사람. 무리 짓지 않는 삶의 아름다움을 자신의 70 가까운 생애로 증명해온 사람. 바로 영남대 명예교수 박홍규이다.

그는 늘 왕따를 자처했다고 한다. 그는 1980년대 후반부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진보 명사들과 함께 활동한 민주주의법학연구회란 단체 회장을 지내며 우리나라의 독재체제와 보수적인 사법 현실을 비판했던 바 있다. 동시에 그는 한국의 민주화를 이끌었던 진보 지식인들과 문단 권력의 폐쇄적인 엘리트주의와 패권주의를 가장 앞장서서 비판했던 한 사람의 지식이었다.

그래서 이 책은 현실 사회의 쟁점들을 피하지 않는 책이다. 비정규직 문제와 지방 문제, 청년 문제와 소셜 네크워크 담론, 한국 사회의 엘리트주의와 양극화문제 그리고 젠더 이슈와 페미니즘 운동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 대한 발언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아내와 함께 경북 경산의 시골에서 600평 땅에 농사를 지으며 사는 농부 겸 지식인이기도 하다. 주말이면 아내와 함께 영화를 보러 대구 시내에 나간다. 그는 삶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힘껏 쳐내고,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면서 단순하고 집중력있게 살아가는 일을 긴 시간동안 행동으로 옮겨왔다.

사회를 냉철하게 비판하면서도 자신의 한계와 모순을 고백하기도 주저하지 않는다. 아마도 복잡한 세상에서 자유로이 노니는 지식인인 듯 하다.

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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