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소송에선 패소자비용부담 원칙 수정해야"

2020-01-07 12:02:45 게재

국정원, 북한이탈주민 변호한 민변에 소송비용 청구 … 시민단체 위축시켜

해외선 공익소송 특성 고려해 소송비용 부담 상한 설정 등 다양한 제도 도입

"소송비용 패소자 부담주의를 기계적으로 적용해 소송비용을 공익소송 제기 원고인 패소자에게 부담하게 하는 것은 공익소송의 사회적 가치를 외면하는 것으로, 결과적으로 공익소송과 관련한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위축시킬 수 밖에 없다."

7일 대한변호사협회 회관에서 열린 '공익소송 패소자부담 공평한가' 토론회 자료에서, 이지은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선임간사는 "승소가능성 여부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사회적 관심 유도와 공적 담론 형성, 문제제기를 통한 사회변화도 공익소송의 주요 목적"이라며 "패소할 경우 비용 부담까지 져야 하는 것을 고려하면 이런 기능들이 크게 위축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익소송의 특수성을 고려해 우리 법상 '패소자부담주의'에 수정을 가하자는 것이다.

이종구 단국대학교 법학과 교수도 "공익소송을 뒤집어 놓고 보면 국가가 해야 할 일을 국민이 대신하는 것"이라며 "변호사 비용 부담 문제를 일반 민사소송과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민변, 접견거부취소소송 패소에 소송비용 1700만원 = 송상교 변호사에 따르면, 우리 소송제도는 이른바 '패소자부담주의'를 취해 소송에 패소한 사람은 상대방 변호사보수 등 소송비용까지 부담해야 한다. 또한 민사소송법이나 기타 법령에서 공익소송 소송비용 문제에 대한 별도의 보편적인 보완장치를 두고 있지 않다.

'공익소송을 제기했다가 거액의 소송비용을 환수당해야 하는 현실'이 공익소송을 위축시키는 가장 심각한 요인이라는 것이 송 변호사 지적이다.

이 간사에 따르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2016년 4월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들이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에 수용됐다. 민변 TF 변호사들은 2016년 5월부터 12명의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들의 북측 부모들의 위임을 받아 종업원들을 만나고자 5회에 걸쳐 변호인 접견신청을 했다. 그러나 국가정보원장은 변호인 접견신청에 대해 구체적인 거부 이유를 적시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어떤 설명도 없이 변호인 접견을 거부했다. 이에 민변 TF 변호사들은 2016년 8월 12일 국정원장의 변호인 접견거부처분 등에 대해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다. 이후 국정원은 민변에 소송비용 1700여만원을 청구했다.

A씨 등 염전 피해 장애인 7명은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 년 전 직업소개소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신안군 일대 염전으로 오게 된 노동력 착취 피해자였다. 염전에서 벗어나고자 수차례 도주를 시도했지만 주민과 경찰 등 감시망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섬 안에 갇혀 노예 같은 삶을 살아야 했다.

이후 이들은 탈출에 성공해 지난 2015년 11월 국가와 신안군, 완도군에 책임을 묻는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 42부는 A씨 등 7명 청구를 기각했다. 1심에서 승소한 신안군은 이들에게 소송비용으로 690여만원을 청구했고, 법원은 723만원을 인정했다. 이에 당사자들이 항소하고 사회적 논란이 일자 항소법원은 7명에 대해 각각 90만원에서 22만원으로 소송비용을 감면했다.

◆정보공개청구소송, 거액 소송비용 환수 위험 = 송 변호사에 따르면, 대표적 공익소송에 속하는 '정보공개청구소송' 패소시 거액의 소송비용을 환수하게 될 위험이 크다.

민사소송 인지법과 인지규칙은 정보공개청구소송 소가를 일률적으로 5000만원으로 정하고 있다. 법원이 소가에 비례해서 소송비용 액수를 정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간단한 정보공개청구소송을 제기하더라도 패소가 확정되면 한 심급마다 지급해야 할 변호사 비용이 1심의 경우 최대 440만원에 이른다. 만약 3심까지 진행해 패소가 확정되는 경우 1000만원 이상을 패소자가 부담해야 한다.

애초 정보공개법이 국민 알권리 보호 차원에서 누구나 정보공개청구가 가능하도록 하고 비공개처분에 대해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면서도, 해당 소송에 대해 일률적으로 과도한 소가를 적용해 패소시 소송비용을 부담시키는 것이 매우 불합리하다는 것이 송 변호사 설명이다.

한 예로, 참여연대와 민변은 2016년 사드배치 문제로 지역주민을 포함한 사회적 반대가 일자 사드배치 효용성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위해 당국의 사드 배치 검토자료 등에 대해 정보공개청구를 했지만 2018년 패소 확정됐다.

국방부장관은 두 단체를 상대로 소송비용확정청구를 했고 법원은 각 단체별로 680여만원의 소송비용을 상환할 것을 결정했다. 국방부는 이를 근거로 소송비용을 청구해 왔다.

◆'공익소송 비용부담 완화'가 세계적 추세 = 송 변호사에 따르면, 우리와는 달리 외국은 이미 공익소송 특성을 고려해, 소송비용 부담을 면제 내지 완화하는 다양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은 원칙적으로 변호사보수 각자부담주의를 취하면서도, 인권에 관한 소송, 소비자보호소송, 고용관계소송 등 공익소송에 대해서는 '편면적 패소자부담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이는 소송 특성을 고려해 원고가 승소한 경우에는 상대방(패소자)에게 변호사비용을 청구할 수 있는 반면에, 원고가 패소하더라도 상대방 변호사비용을 부담하지 않도록 하는 방식이다.

영국 법원은 '보호적 비용명령'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이는 원고 청구에 따라 법원 재량으로 내리는 명령으로 법원은 원고가 패소한 경우 원고에게 부과된 피고측의 소송비용 지불의무를 면제하거나, 원고가 지불해야 하는 상대방 소송비용 상한을 설정하는 제도다.

캐나다는 소송비용에 관해 법원의 폭넓은 재량권을 인정하고, 법원이 비용부담명령을 할 때 고려할 요소 중 하나로 '해당 소송절차를 진행함으로써 달성할 수 있는 공익이 비용부담명령을 정당화하는지'를 들고 있다.
안성열 기자 son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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