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공간에서 미래를 찾다│① 이용자가 설계에 참여: 전주시립도서관 꽃심 '우주로1216'

톡톡·쿵쿵·슥슥·곰곰존 … 청소년이 원하는 공간, 현실이 되다

2020-01-13 11:37:43 게재

"집·학교에서 할 수 없는 경험을 시도" … 음악 들으며 뛰어 노는 한편에선 책 읽으며 사색

공공도서관은 영·유아부터 어르신까지 모든 세대가 이용하는 곳입니다. 누구나 독서나 문화생활을 주제로 모여 대화하고 활동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도서관 공간은 이에 맞춰 다양한 시민들의 요구를 반영하고 보다 많은 이들이 소통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 돼야 한다고 믿습니다. 내일신문은 '도서관, 공간에서 미래를 찾다' 기획에서 공간 혁신을 바탕으로 미래를 연 도서관들을 찾아갑니다. <편집자 주>


몇몇 학생들이 돔 모양의 놀이기구에서 신나게 뛰어 놀고 철봉을 즐겼다. 안쪽에서는 학생들이 3D펜으로 진지하게 뭔가를 만들고 있었다. 색연필을 한가득 꺼내놓고 친구와 둘이 그림을 그리는 데 열중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 옆에 마련된, 마치 공연장과 같은 공간에서는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음악이 흘러나왔고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둘러앉아 음악을 감상했다. 가장 안쪽에 마련된 사뭇 조용한 느낌의 공간에서는 독서에 몰입하는 청소년들이 편안한 의자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창가에서 쏟아지는 햇빛을 맞으며 책을 읽는 학생도 보였다. 한 학생은 "지난달 31일에 처음 왔는데 벌써 3번째 왔어요. 집 근처에 공공도서관이 있는데 거기에 안 가고 여기에 와요. 버스로 5정거장이에요"라고 신이 나 말했다.

우주로1216 전경. 사진 이의종


3일 오후 2시, 전주시립도서관 꽃심의 트윈세대 공간 '우주로1216'의 풍경이다.

◆청소년들을 도서관으로 = 지난달 개관한 전주시립도서관 꽃심의 우주로1216은 우리나라 최초의 트윈세대를 위한 공간이다. 트윈세대는 10대(teenager)와 사이(between)를 결합한 단어로 어린이와 청소년 사이의 낀 세대를 일컫는다. 우주로1216를 이용할 수 있는 나이는 12세에서 16세.

우주로1216을 완성하기까지 전 과정에 참여한 송지은 전주시립도서관 꽃심 사서는 "이 나이대 학생들은 도서관에서 어린이실을 이용하기에도, 성인실을 이용하기에도 애매하다"면서 "어떻게 하면 청소년들이 도서관에 올 것인지, 책 외에 원하는 공간과 콘텐츠는 어떻게 제공해야 할지 고민해 왔다"고 말했다. 2018년 11월, 도서문화재단 씨앗과 책읽는사회문화재단, 씨프로그램이 공모한 '트윈세대 공간 프로젝트'에 전주시가 선정되면서 본격적으로 우주로1216이 시작됐다.

슥슥존. 사진 이의종


◆"친구네 집 같은 공간" = 우주로1216은 청소년을 위한 공간이자 청소년이 직접 만든 공간이기도 하다. 전주시립도서관 꽃심과 공간 기획을 맡은 씨프로그램, 콘텐츠 기획을 맡은 진저티프로젝트, 건축을 맡은 EUS+건축은 2019년 초부터 이 공간이 문을 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청소년들의 적극적 참여를 이끌어냈다.

처음엔 청소년 53명이 일기쓰기 등 다양한 과제를 수행하며 자신들의 일상, 생각을 들려줬다. 이를 통해 트윈세대의 놀이와 공간에 대한 인식을 분석할 수 있었다. 이 분석을 통해 40문항의 설문 항목을 도출, 청소년 408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을 했다. 이후 청소년들은 여러 공간을 탐방한 후 공간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는 인사이트 워크숍, 콘텐츠 워크숍 등 여러 워크숍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공간을 밝혔다.

인사이트 워크숍. 사진 전주시립도서관 꽃심 제공


이런 과정을 기반으로 청소년들은 △예술가형: 창작과 공유 △네트워크형: 친구 관계 중시 △활발한 운동가형: 에너지 발산 △호기심 탐험가형: 다양한 경험 탐색 △나홀로 연구가형: 자기주도적 활동 △바른 생활형: 무난한 일상 △정적인 체험가형: 실내 취미, 경험 등으로 정의됐다. 또 청소년들은 다음과 같은 공간을 원했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공간, 또래들이 많은 공간이 필요해요." "카페는 대학생 언니 오빠들이 가는 곳 같아서 우리가 가기에는 눈치가 보여요." "뭔가를 하려면 돈이 드니까 집에서 노는 게 편하고 좋아요." 인사이트 워크숍에서는 '친구네 집 같은 공간'이 가장 많은 호응을 얻었다.

그리고 청소년들은 공간이 완성되기 전, 우주로1216의 텅 빈 공간에 들어와 의견을 냈다. 공사를 마친 이후엔 처음으로 우주로1216을 방문한 주인공이 됐다. '우주로'라는 공간의 이름, '청소년들이 우주인이고 이를 지원하는 사서는 지구인'이라는 개념도 청소년들의 의견이다.

◆"청소년들이 주인 되는 공간" = 청소년들의 의견을 반영해 우주로1216은 최종적으로 다음과 같이 완성됐다. △라운지와 사물함이 있는 소통 공간 '톡톡존' △음악을 듣고 철봉을 이용하며 에너지를 발산하는 '쿵쿵존' △3D펜과 악기, 동영상 편집 스튜디오가 있어 무엇이든 만드는 '슥슥존' △책을 읽으며 사색하는 '곰곰존'이 그것이다. 각 공간은 벽과 문으로 구획하지 않아 개방성을 높였으며 책들은 '진짜 사춘기가 왔어' '어서와! 예술은 처음이지?!' 등 주제별로 제공한다. 청소년들은 공간 설계뿐 아니라, 운영에도 적극 참여한다. 우주로1216을 운영하는 청소년 운영단은 '방탈출게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 운영하고 있다.

송 사서는 "우주로1216은 청소년들이 집이나 학교에서 할 수 없는 경험을 시도하는 일상의 공간이 됐으면 한다"면서 "청소년들이 주인이 되는 공간으로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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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공간에서 미래를 찾다" 연재기사]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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