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은 어떻게 중국 경제를 구했나

2020-01-23 10:31:23 게재

모간스탠리 신흥시장 대표

루치르 샤르마, NYT 기고

모간스탠리 신흥시장부문 총괄대표인 루치르 샤르마는 최근 중국 상하이를 방문했다. 그는 전면적으로 불고 있는 기술혁명의 중심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여권을 스캐너에 대면 자동적으로 방문객의 고국어로 말을 건다. 디지털 결제 애플리케이션은 이미 현금을 대체했다. 상점에서 지폐를 꺼내는 순간 점원의 멍한 시선을 받게 된다.

그는 항저우시 인근 '플라이주'(FlyZoo)라 불리는 호텔에 묵었다. 얼굴 인식을 통해 문을 연다. 열쇠는 필요없었다. 로봇이 칵테일을 만들고 룸서비스로 가져다 줬다. 선전시 남쪽 끝에 가서는 벽오지에 전자상거래 상품을 배달하는 드론을 직접 조종해보기도 했다. 도심 교통은 막힘없이 흘렀다. 동기화된 신호등과 경찰 교통 카메라로 제어된다.

샤르마 대표는 22일 이런 내용의 촌평을 '뉴욕타임스'(NYT)에 기고했다. 중국 밖에서는 이런 기술들을 '자동화를 내세운 독재사회'의 암울한 전조로 본다. 중국 정부는 영상카메라와 얼굴인식 시스템으로 범법자를 잡거나 시민들의 정치적 태도를 평가한다. 최첨단 기술장치가 신장 위구르 지역의 소요를 진압하기 위해 배치됐다.

하지만 중국 내 여론조사를 보면 기술에 대한 신뢰도가 전반적으로 높다. 반면 프라이버시 침해에 대한 우려는 낮다. '빅 브러더'를 두려워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겉으로 내비치지 않는다. 그는 "해안을 따라 여행하면서 만난 많은 중국인들은 기술강국으로 급부상한 조국에 대단한 자부심을 표했다"고 전했다.

중국은 외부세계에 문호를 열면서 경제기적의 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는 외부와의 경쟁을 막으면서 자국의 기술기업을 키우고 있다. 외국인 방문객들은 중국 내에서 구글이나 페이스북을 열 수 없다. 기이하게 고립된 느낌을 준다고 한다.

샤르마 대표는 "소련도 비슷한 전략을 썼지만 결과는 달랐다"며 "중국은 보호주의 장벽 안에서 새로운 소비문화를 창조하고 있다. 정치적 통제 도구이자 경제적 성장의 엔진"이라고 평가했다.

중국도 피해가지 못하는 결정적 순간을 맞닥뜨렸다. 40년 전 개혁개방을 시작한 이래 처음 경기침체를 겪을 위기였던 2015년이다. 중국인 평균 임금은 중산층 수준에 도달했다. 개발도상국들은 보통 이 단계에서 성장 정체를 맞는다.

당시 중국의 노동가능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반면 대출을 위험한 수준으로 치솟았다. 중국 정부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부채 통제의 끈을 늦춘 결과였다. 위기 이전 150%였던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부채가 230%에 달했다.

신흥국으로선 전례없는 거대 규모의 빚잔치였다. 그같은 규모의 빚은 예외없이 심각한 경기침체로 이어진다. 하지만 중국은 잘 버티고 있다. 2010년 두자릿수 성장률에서 지난해 6%대 초반으로 둔화됐지만 중국은 아직 경기침체를 겪지 않고 있다.

샤르마 대표는 "이전 사례와 달라진 건 예상치 못한 디지털 경제의 급부상이었다"고 분석했다. 현재 추산으로 중국의 디지털 경제 규모는 3조달러가 넘는다. GDP의 약 1/3이다. 알리바바와 텐센트 같은 거대 기술기업이 단단히 뿌리를 내리면서 중국의 기술부문이 철강이나 알루미늄 등 전통 산업의 부진을 상쇄하는 균형추 역할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 기술부문은 부채율도 매우 낮은 이상적인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그는 "디지털 경제 비중이 커질수록, 전통 산업부문의 점증하는 부채를 관리하는 중국 당국의 능력도 커진다"고 말했다.

2017년 기술부문이 중국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독일만큼이나 컸다. 미국 터프츠대 조사에 따르면 중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진화하는 디지털 경제국가다. 당시 비자 CEO는 중국 규제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이같이 언급했다. "불과 18개월 전만 해도 중국 기술기업은 너무 왜소해 걱정할 게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너무 거대해져 (우리가) 함부로 할 수 없다."

그 자료는 이미 2년이나 지난 것이다. 따라서 현재 시점에선 그 자료만으로는 중국이 얼마나 빨리 선진국 수준으로 도약하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지난 10년 간 중국의 연구개발 투자비는 연 평균 4400억달러였다. 유럽 전체를 합한 것보다 더 많았다. 전 세계 20대 인터넷 기업 중 9곳이 중국에 있다. 10곳이 미국, 1곳은 캐나다 기업이다.

온라인 금융의 폭발적 성장세로 소비자대출시장이 연 20%씩 커지고, 경제성장 동력도 제조업 수출 주도에서 내수 소비 주도로 바뀌고 있다. 2015년 설립된 알리바바의 마이뱅크(MYbank)는 1600만 고객에게 '3-1-0' 소액융자를 시행하고 있다. 신청에 '3'분, 승인에 '1'초, 인간개입은 전혀 없다('0')는 의미다.

물론 자동화는 일자리를 없앤다. 알리바바가 소유한 체인마켓 '헤마'는 하얀색 소형 로봇이 웨이터를 대신해 점심을 차린다. 헬스장 회원들은 바닥에 설치된 대형 비디오 스크린을 보며 운동하는 법을 배운다. 인간 트레이너는 필요 없다. 선전시 주민들은 감시카메라 덕분에 거리에서 범죄가 사라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샤르마 대표는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기술은 파괴하는 것 이상의 일자리를 만들어낸다"고 본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기술발전으로 없어지는 일자리를 제외하면, 디지털 경제가 모든 일자리 창출의 절반을 책임진다고 추산했다. 알리바바 플랫폼에 올라탄 중소기업만 수백만개다. 지난 10년 간 300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이는 중국이 중공업 부진으로 잃은 일자리보다 많다.

중국의 기술혁명은 경제를 둔화시킬 것으로 예상됐던 약점이 동력으로 전환되면서 가능했다. 하나는 인구 노령화, 또 다른 하나는 개인정보 축적이다.

인구 노령화는 기술 스타트업들이 만개할 수 있는 거대한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한 나라가 중산층 소득에 도달할 때 경제성장률이 둔화되는 경향이 있지만, 중국에선 새로운 중산층 계급이 모바일 인터넷 서비스의 주고객들로 전환되고 있다.

그 어떤 나라도 이런 식의 결합력을 보여준 바 없다. 인도는 거대 인구를 가졌지만, 중산층 소득에 도달하지 못했다. 브라질은 반대다. 소득은 되지만 인구가 모자란다. 민주주의 국가들은 중국보다 정부 감시에 큰 불신과 의혹을 갖고 있다. 인도의 경우 생체 주민등록 제도 시행을 둘러싸고 전국적으로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중국에선 최소한 신장 지역을 제외하고는, 디지털 결제시스템과 전자상거래 호황을 가능케 한 개인정보 축적에 대한 우려가 상대적으로 온건하다. 중국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시장을 갖고 있다. 온라인 배달기업들의 오토바이 군단은 장관을 이룬다.

노동력 감소를 상쇄하기 위해 중국은 노동 생산성을 늘릴 필요가 있다. 2015년부터 기술 주도 호황이 시작되면서 10년 가까이 지지부진하던 생산성 성장률이 회복되고 있다. IMF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경제는 향후 수년 간 성장률 둔화를 겪을 전망이다. 디지털 경제가 현재의 성장속도를 유지하지 못한다면, 침체는 가속화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그 어떤 나라도 우상향하는 일직선상 성장을 지속적으로 누릴 수 없다. 부채 증가와 노동력 감소 역시 중국 경제가 ?어진 커다란 짐이다. 중국 가계가 온라인 대출에 쉽게 노출되면서, 기술 부문이 금융위기 발발 가능성을 높일 수도 있다.

하지만 샤르마 대표는 "현재 중국의 기술혁명은 때 맞춰 부흥하고 있다. 주기상 불가피한 경기침체를 막아주고 있다"며 "설령 침체기가 온다 해도 그 정도를 훨씬 완충시켜 줄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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