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생활 16년 한복입고 명절 나긴 처음"

2020-01-28 11:40:52 게재

종로구 다문화가정에 설빔 선물

한복축제 기증품 장인이 맞춤수선

"한국에서 16년째 살고 있는데 한복은 처음 입어요. 진짜 명절같아요. 결혼식이나 행사같은 때도 입으면 좋을 것 같아요. 빌리는데도 값이 비싸잖아요."

중국 출신 이주여성 장풍자(46·서울 종로구 창신동)씨와 딸 희진(15)이에게 올해 설은 명절다운 명절이었다. 모녀에게 '생애 첫 한복'이 생겼기 때문이다. 종로구가 지난해 9월 열린 한복축제때 옷장 속에 잠들어있던 한복을 기증받아 새 제품처럼 업사이클링, 지역 내 다문화가정에 선물한 참이다.

종로구가 전국에서 기증받은 한복을 새로운 제품으로 탈바꿈시켜 지역 내 다문화가정 설빔으로 선물했다. 기증식에 참여한 이순자씨와 손녀들이 한복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종로구 제공


종로구는 한옥 한글 한식 등 전통문화 확산을 위해 특히 우리 전통문화를 상징하는 한복 일상화에 주력하고 있다. 국내뿐 아니라 세계에 우리 옷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지역경제 활성화에 보탬이 되도록 2016년부터 한복축제를 열고 있다. 한복 맵시 뽐내기 등 다양한 행사가 해마다 열리는데 지난해에는 기획 프로그램으로 '한복 업사이클링_다시 한복' 행사를 준비했다. 각 가정에서 입지 않는 한복을 기증받아 장인의 손길을 더해 다문화가정 주민을 위한 맞춤 한복으로 제작하기로 했다.

7월부터 8월까지 전국에서 114명이 한복 234벌과 저고리 치마 등 낱개품목이나 신발 가방 노리개 등 483점을 보내왔다. 성별도 연령대도 제각각인 기증자들은 한복에 담긴 자신만의 사연도 함께 전했다.

경기도 김포시에 사는 박 모씨는 17년 전 결혼을 준비할 때 '한복처럼 곱디고운 꽃길만 걸으라'는 마음을 담아준 어머니에 대한 추억을, 경북 구미시에 사는 김 모씨는 집안 사정보다 과하게 지출한 친정어머니와 힘든 시집살이에 얽인 기억을 털어놓았다. 외국살이를 앞두고 부부 한복을 정리한 서울 금천구 김 모씨, 아이 돌을 비롯해 가족잔치때 입었던 부부 옷이 새롭게 태어나길 희망하는 경기도 성남시 조 모씨도 있다.

조경숙 서울시 무형문화제 11호 침선장 이수자, 박창숙 우리옷제대로입기협회 회장 등 전문가들 자문을 받아 기부 물품을 분류, 감정평가까지 거쳤다. 창신동과 평창동 등 주민모임에서 기증 한복을 활용해 청사초롱 옷고름 앞치마 등을 제작, 9월 한복축제 기간동안 현장에서 사용하거나 판매하기도 했다.

다문화가족 주민들 설빔은 그 중 일부를 박 회장이 맞춤 한복으로 수선한 '작품'이다. 전통문화의 우수함을 세계에 알린다는 한복축제 취지에 맞춰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 이용자 가운데 한복을 희망하는 주민 신청을 받아 다섯가정을 선정했다.

장씨 모녀를 비롯해 이순자(72·창신동)씨와 딸 내외, 손녀 등 성인 9명, 아동청소년 8명이 명절을 앞두고 장인이 만든 맞춤 한복을 전달받았다. 지난해 말 매장을 방문, 치수뿐 아니라 얼굴빛이며 평소 옷과 맞춰 신는 신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 그야말로 개개인에 맞췄다. 장풍자씨는 "희진이가 설날 아침 이모와 삼촌에게 한복 입고 세배한다고 너무 들떴다"며 "명절 주요 화제도 한복이었다"고 전했다.

종로구는 남은 한복 가운데 성인 남녀 한복 20벌을 수선해 상촌재와 황학정 국궁전시관 등 지역 내 문화시설에 비치해 전통문화 프로그램에 활용할 예정이다. 3월 완공 예정인 캄보디아 한국관에도 20여벌을 기증, 우리 복식문화를 널이 알리고 9월에는 '2020 종로한복축제'를 열어 또한차례 한복의 변신을 보여줄 계획이다. 김영종 종로구청장은 "한복은 단순한 의복이 아니라 우리 민족 지혜와 문화 정신이 녹아든 소중한 문화유산"이라며 "한복의 가치와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데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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