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된 미국, 홀로 중국과 냉전중"

2020-02-19 18:12:15 게재

미 시사월간 '애틀랜틱'

다가오는 세기의 세상을 누가 규정하느냐를 놓고 벌이는 경쟁에서 미국은 중국을 이기려고 갖은 애를 쓰고 있다. 하지만 커다란 문제에 맞닥뜨렸다. 미국이 구축한 글로벌 동맹국들이 거대한 권력투쟁 열차에 올라타 중국과 싸우려 할지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이다.

미 시사월간 '애틀랜틱'은 18일 "미국 정부는 우방국을 설득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절감하고 있다"며 "중국이 주는 혜택을 포기할 수 있을 정도로 미국이 믿을 만한 상대국이라는 점도 확신시키기 어렵다. 동맹들은 미국과 더 친해지는 데 따른 보상이, 중국을 외면하는 리스크보다 훨씬 클 것인지를 자신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선거캠페인을 위해 캘리포니아로 떠나기 전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리고 있다. 사진 로이터=연합뉴스


이는 부분적으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엇갈린 메시지 때문이기도 하다. 그에겐 동맹국에 대한 헌신이 부족하다. 심지어 미중 무역전쟁을 지속하는 와중에도 중국 시진핑 주석을 존경한다고 말하는 등 우왕좌왕하고 있다.

미국에 대한 동맹들의 의구심은 특히 최근 두드러졌다.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인 영국, 전 세계 가장 친미적인 필리핀이 '생각해주는 건 고맙지만 우리는 괜찮아, 걱정마'라고 선언하면서다.

이들 나라가 미국의 지시를 고분고분 따르지 않으면서 미국으로선 걱정스런 선례가 만들어지고 있다. 강대국 사이에 낀 국가들이 장차 어떻게 행동할지 예고하는 지점이다. 동맹국 입장에선, 미국 주도 전선에 참여해 냉전 스타일의 이분화된 세계를 살기에는 오늘날 국제관계가 밀접하게 얽혀 있다. 게다가 중국이 제시하는 당근은 대단히 매력적이다.

애틀랜틱은 "미국이 고집스레 냉전 스타일의 세계를 재구축하려 한다면, 스스로 고립될 수밖에 없다"며 "고립을 원치 않는다면, 미국은 중국이 제시하는 것 이상의 강력한 보상을 개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냉전식 사고에 반대하는 움직임은 지난달 말 추동력을 얻었다.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는 차세대 5G 모바일 네트워크를 위해 중국 이동통신 기업 화웨이의 장비를 구입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미국 정부 면전에 따귀를 날린 것이었다. 미국은 수개월 동안 화웨이를 배제해달라 전방위 로비를 벌였다. '화웨이의 배후엔 중국 정부가 있기 때문에 영국에 심각한 국가안보 리스크가 발생할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또 '영국과 공유해야 할 미국의 기밀을 화웨이가 염탐할 수 있고 나아가 영국의 통신 네트워크 전반을 교란시킬 수 있다'고 설득했지만 허사였다. 물론 화웨이는 미국의 주장이 사실무근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영국의 선택은 미중 양국의 입장을 절충하는 것이었다. 영국 정부는 새로운 5G 네트워크 중 가장 민감한 부분에 화웨이 기술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인한 반면 미국과 호주, 일본처럼 화웨이를 전면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영국이 그같은 선택을 하자, 다른 동맹국들도 대담하게 나서고 있다. 유럽연합(EU)과 프랑스는 즉각 영국과 비슷한 계획을 발표했고, 독일 역시 같은 입장을 취할 전망이다. 인도나 한국 등 갈등을 겪는 동맹들도 의심의 여지 없이 이같은 흐름을 주시하고 있다.

이들 국가에게 5G 네트워크 시장의 글로벌 지배기업인 화웨이와 연합하는 데 따른 이익이나 중국 정부의 보조금 덕분에 가장 저렴하기도 한 혜택은 명백하다. 하지만 미국의 손을 들어줬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불투명하다. "만약 어떤 사람(미국)이 특정 브랜드(화웨이)를 반대한다면, 그 사람은 우리에게 대안을 들고 와야 한다. 그렇지 않은가?"라고 반문한 존슨 총리의 언급은 매우 날카로운 지적이다.

미국 법무장관 윌리엄 바는 이에 대응해 최근 "미국 정부가 신속히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화웨이의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화웨이가 유럽에서 경쟁하는 노키아나 에릭슨의 지배주주가 되는 것도 그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화웨이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불만이 안보 리스크를 넘어선 것임을 인정하기도 했다. 바 장관은 "강대국들이 미래 디지털 경제의 허리를 지배하기 위해 싸움을 벌이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중국은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 수조달러를 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의 언급은 동맹국의 의구심을 부채질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애틀랜틱은 "사실상 미국의 진심은 기술적 패권을 계속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지, 동맹국들의 안보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라며 "대서양 동맹은 쪼개지고 있다"고 전했다.

전 세계 많은 나라들은 안보 동맹인 미국과 최고의 무역 파트너인 중국 사이에 낀 신세다. 최근 이런 나라들 중 하나이자 예전 미국의 식민지이기도 했던 필리핀이 수십년 역사의 미국 주도 안보 동맹에서 이탈하기 시작했다.

필리핀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은 2016년 집권 이후 미국을 지속 비판해 온 인물로, 최근 미군과의 합동군사훈련을 규정한 협약을 종료하겠다고 통보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결정은 이 지역에서 중국의 패권 확장을 저지하려는 미군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처사다. 일본 타마대학 교수인 브래드 글로서맨은 재팬타임스 기고에서 "두테르테 대통령의 조치는 필리핀을 지켜주겠다는 미국의 약속에 대한 의구심, 급부상하는 중국을 자극하면 안된다는 우려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뜻을 받든 필리핀군 참모총장 펠리몬 산토스는 "해상 영유권 분쟁이 있긴 하지만, 중국과 새로운 군사협약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미국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은 "두테르테 정부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별 문제 없다는 입장이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통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괜찮다. 오히려 미국이 많은 돈을 아낄 수 있어 필리핀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미국과 오랜 기간 군사적 동맹을 공유해온 나라들도 점차 트럼프 대통령의 불만에 적응해가고 있다. 동맹국 입장에서 보면 트럼프의 거친 발언들은 지정학적 초강대국으로 성장하는 중국과 경쟁한다는 체계적인 맥락을 배경으로 나온 것이라기보다 무역전쟁이나 군사비 지출 측면에서 상대국에게 바가지를 쓰지 않겠다는 볼멘소리로 읽히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도 해외의 투자를 더 줄여야 한다는 측과 투자를 급격히 늘리고 있는 중국을 따라잡아야 한다는 측이 분열돼 있다. 중국이 유라시아를 관통하는 '일대일로' 인프라 프로젝트에 1조달러 이상 투자하고 있는 반면, 트럼프 행정부의 '2021 회계연도' 예산안은 중국의 국제적 대출에 대한 대안으로 고작 8억달러를 계상해 둔 상태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현재 세네갈과 에티오피아, 앙골라를 방문중이다. 국무부가 언론브리핑에서 밝힌 대로 아프리카 대륙과 국가에 대한 미국의 무역과 투자를 적극적으로 늘리는 데 관심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방문이다. 하지만 세 나라 모두 중국과 매우 가까운 나라로, 이곳에 대한 중국의 외교적, 경제적 투자는 미국을 절대적으로 압도한다.

더욱 결정적인 건 미국의 주요 외교정책이 행정부에 따라 널뛰기를 한다는 점을 동맹들이 낱낱이 지켜봤다. 이란핵합의, 기후변화협약 등이 대표적이다. 동맹국 입장에선 특정 사안에 대해 미국 편을 드는 것이 안전한 것인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에 대한 입장도 마찬가지다. 최근 영국을 방문한 폼페이오 장관은 현 시대 가장 주요한 위협으로 중국 공산당을 꼽았다. 반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선두를 달리는 버니 샌더스 캠프의 외교자문 맷 더스는 같은 날 "샌더스가 집권한다면 기후변화를 미국이 직면한 최고의 안보위협으로 간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세계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인 중국을 주요 협력국으로 삼을 것이라는 의미가 된다.

애틀랜틱은 "미국 선거판 자체가 편을 가리지 못해 우왕좌왕인데, 동맹국들이 굳이 나서 한쪽편을 들어야 할 이유가 있는기"라고 지적했다.

미국 싱크탱크인 '신미국안보센터'(CNAS)는 최근 대중국 정책 보고서를 내면서 "미국의 동맹들은 대체적으로 독재국 중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글로벌 시스템에 포함되길 원치 않으면서도, 거대한 경제적 기회이자 지정학적 현실인 중국을 대놓고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며 "미국의 모든 정책은 동맹의 이런 딜레마를 인식해야 한다. 노골적인 반 중국 동맹전선을 구축하려는 시도는 실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CNAS의 이같은 보고서가 공개된 날, 영국은 "화웨이 장비를 통해 5G 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고 천명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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