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대응에 턱없이 부족한 정부 추경안 | ② 세계 경제 급격히 위축

주요국 통화정책·재정투입 발표 줄이어

2020-03-17 11:19:51 게재

"본예산 항목 변경, 피해 큰 곳 투입해야" … 국내 회복과 무관, 경기침체 장기화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가 11조7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마련했지만 전 세계로 감염이 확산되면서 추경만으로는 사태 장기화를 감당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추경뿐만 아니라 본예산의 사업계획을 변경, 코로나19로 위협받는 생존권을 보호하기 위해 대규모 재정 투입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17일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우리나라도 안심할 단계는 아니지만 미국에 코로나19가 확산될 경우 소비가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며 "미국은 GDP 대비 가계소비 비중이 70%인 곳이라서 경기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안 교수는 "사태가 장기화로 가면 또 추경을 할 수 밖에 없지만 본예산의 항목을 변경해서 가장 피해를 많이 보는 곳에 투입해야 한다"며 "지금은 인프라 설치가 급한 게 아니기 때문에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획재정부는 '검토해 볼만한 제안이지만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앞으로 수십조 이상 재정을 더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검토해 볼 수 있는 방안"이라면서도 "본예산 수정에 대한 부작용도 상당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 역대정부에서도 본예산을 수정한 사례가 없다.

우선 코로나19가 진정된 뒤 '경기 연착륙'이 중요해지는데, 본예산을 삭감하게 되면 이런 정부목표와 역행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다른 관계자는 "결국 삭감할 수 있는 예산은 SOC사업 등이 유력한데 경기진작의 장애요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기존 예산안은 수많은 이해계층, 이해관계자와 연관돼 있는데 어떻게 사회적 공감대를 만드느냐가 문제"라면서 "자칫 예상치 못한 사회갈등을 부추길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조정이 어려운 본예산 수정보다는 동원 가능한 다양한 방법이 있다"면서 "기금 조정이나 지역재난기금 활용 등의 방법도 있다"고 언급했다.

안 교수는 "공무원들은 여태껏 본예산 조정을 해본 적이 없고 이미 예산을 어디에 쓸지 정해 놓은 상태에서 재조정이 어렵다고 할 것이고, 예산의 상당 부분이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있어 셈법이 복잡하겠지만 국민의 힘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각국, 줄도산 막기 위한 재정투입 불가피 = 세계보건기구(WHO)가 12일 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한 이후 각국 정부는 앞 다퉈 긴급하게 재정을 투입하기로 하고, 통화정책 카드를 꺼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는 15일(현지시간) 코로나19 여파에 대응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제로금리 수준으로 전격 인하했다.

미국은 83억달러(약 10조원) 규모의 긴급예산을 편성한데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주정부에 500억달러(약 61조원)의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연준은 7000억달러(약859조원) 규모의 양적완화 프로그램을 시작하기로 했다.

유럽연합(EU)은 380억유로(약 50조2960억원) 규모의 투자기금을 마련하기로 했다. 당초 250억유로(약 33조6300억원) 규모의 투자기금 조성을 밝혔지만 사태가 심각하다고 보고 규모를 늘린 것이다. 특히 중소기업에 대해 80억유로(10조9700억원) 규모의 유동성을 공급하기로 했다. 이밖에도 영국이 300억파운드(약 46조원) 규모의 정책 패키지를 마련했으며 독일 124억유로(약 17조원), 이탈리아 250억유로(약 33조원) 가량의 긴급 재정 투입 계획을 밝혔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코로나19는 우리 건강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경제에도 충격을 주고 있다"며 "모든 차원에서 결단력 있고 과감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16일(현지시간)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전 세계 각국이 적극적으로 재정·통화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며 "회원국들을 위해 1조달러의 대출 자금을 동원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글로벌 공급망 붕괴, 소비시장 급감' 우려 = 이같은 각국의 우려는 세계의 공장이라고 불리는 중국 시장이 침체와 미국과 유럽 소비시장의 타격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컨설팅 그룹인 딜로이트는 "중국 부품 공급업체의 공장 가동 중단은 국내외 기업들의 크고 작은 조업 차질로 이어지고 있고, 소비침체가 장기화될 경우 글로벌 경제위기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딜로이트 조사에 따르면 중국의 조업은 2분기까지도 70%까지 밖에 회복되지 않을 전망이다. 중국은 글로벌 제조업의 29%를 차지하는 세계 최대 제조국이다. 생산이 정상화되지 않을 경우 전 세계 산업의 공급망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미국은 GDP 대비 가계소비 비중 70%에 달하는 거대한 소비시장이다. 코로나19로 소비가 급감하면 그 충격은 도미노처럼 전 세계를 휩쓸 가능성이 높다. 전 세계 공급시장과 소비시장 모두 큰 타격을 입게 되는 셈이다.

우리나라의 수출은 중국과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지난해 중국 수출액은 1362억300만달러로 전체 수출의 25.1%를 차지했다. 2위는 미국으로 733억4400만달러(13.5%) 규모다.

특히 자동차 산업이 큰 충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세계 자동차 생산에 필요한 부품의 80%를 생산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주요 원자재를 중국에서 들여오고 있다. 중국의 생산재개와 물류이동 정상화가 늦어지면 현대차와 기아차는 각각 8만대, 4만대의 생산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주요 수출국인 미국과 유럽에서 확진자가 증가하고 있어 자동차 수출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다중이용시설 이용제한, 손실 보전 필요" = 정부가 코로나19 사태로 학원 휴원과 다중이용시설 등의 휴업을 권고하고 있지만 이들 자영업자에 대한 피해 보전 방안은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국내 코로나19 사태는 콜센터 집단 감염 이후 노래방과 PC방 등 다중이용시설 등으로 집단 감염이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고,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들 시설에 대한 일시 휴업을 압박했다. 박 시장은 "개학 연기와 학원 휴강 때문에 갈 곳이 없어진 학생이 노래방, PC방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노래방이나 PC방은 밀폐된 공간에서 오랜 기간 머물기 때문에 코로나19 감염에 상당히 취약해 특별 관리가 필요하다"며 "일시 휴업에 적극 동참해 달라. 상황에 따라선 영업금지 행정명령까지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도 학생들이 모이는 학원 등이 일정기간 문을 닫아야 한다며 휴원을 압박하고 있다. 코로나 19 확산을 막기 위해 필요한 조치지만 자영업자들에게는 생존이 달린 문제다.

박상인 서울행정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휴업을 권고하면 그러한 조치에 준해서 손실을 보전해줘야 한다"며 "다중이용시설 종사자에 대한 지원 등도 재정 정책에 반영돼야 하기 때문에 정부가 예산을 더 투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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