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주목한 대한민국 방역, 알고보니 서울시 모델

2020-04-01 11:19:51 게재

박원순, 검사 확대 등 감염병 대응 주도

그물망식 전수조사, 감염확산 조기차단

긴급대출 '열흘 안에' … 민생회복도 혁신

'사망자 0'.

인구 천만도시 서울시에서는 코로나19로 사망한 사람이 아직까지 한명도 없다. 31일 기준 미국이 뉴욕을 중심으로 3400명 이상 사망자가 발생하고 이탈리아(1만1591명), 스페인(8269명) 등 세계적으로 4만명 이상 사망자가 발생한 것과 비교할 때 놀라운 성과다.

지난 27일 세계 45개 주요 도시 시장들이 서울시의 코로나19 대응 겅험과 방역 노하우를 공유하기 위해 긴급 화상회의를 열었다. 사진 서울시 제공


외신들이 극찬한 대한민국 코로나19 대응법이 알고보니 서울 모델이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계 도시들의 관심이 서울로 집중되고 있다. 지난달 27일 화상으로 열린 전 세계 45개 주요 도시 시장 영상회의는 이같은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C40(Cities-Climate Leadership Group. 도시 기후리더십 그룹) 의장인 에릭 가세티(Eric Garcetti) 미국 LA 시장의 긴급 제안으로 성사된 이날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신속한 진단시스템, 환자 중증도에 따른 치료시설 분류 등 혁신적 대응으로 사망자 제로와 높은 완치율을 거두고 있는 서울시 방역 노하우에 높은 관심과 찬사를 보냈다. 박원순 시장은 시민 이동을 통제하지 않으면서 대도시 기능을 유지하고 확진자 동선 공개같은 투명한 정책을 통해 감염 위험을 차단할 수 있었던 건 성숙하고 민주적인 시민의식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고 강조했다.

◆주요 국면마다 '박원순 제안' = 메르스 사태로 단련된 박 시장과 서울시 경험은 코로나19 위기 국면마다 힘을 발휘했다. 사태 초기인 1월 24일 첫번째로 열린 총리 주재 대책회의에서 박 시장은 코로나19 확산세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 치료·검사의 기준이 되는 증상 범위 확대를 정부에 건의했다.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의 공격적 감염병 대응은 사실상 이날부터 출발했다. 박 시장은 발열과 기침 등 호흡기 증상 뿐 아니라 기침·가래 등도 증상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뿐만 아니다. 이날 박 시장은 접촉자 자가격리 대상 지역을 우한 외에 후베이성 전역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은 당연한 일이 됐지만 당시만해도 강력한 방역대책 실시를 주저하던 때였다. 다행히 정부는 두 제안을 모두 받아들였고 코로나19와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정부 상담전화인 1339가 먹통이 됐다. 증상이 나타나면 의료기관을 바로 찾아가지 않아야 할 예비 환자와 시민들이 혼란에 빠졌다. 서울시는 120다산콜센터를 통한 코로나19 상담서비스를 시작했다. 평소 수천통 수준이던 문의가 1만통으로 늘면서 다산콜은 북새통을 이뤘지만 전체 상황은 안정세를 찾았다.

1월 31일, 정부의 감염병 대응을 줄곧 호평하던 박 시장이 감염병 콘트롤타워인 질병관리본부를 강하게 질타했다. 확진자 정보 늑장 공개와 우한 입국 외국인 명단을 지자체와 신속하게 공유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이날 이후 하루 한번이던 질본의 확진자 현황 발표는 1일 2회로 늘어났고 감염 확산 위험을 안은 외국인 명단이 전국 지자체로 전달됐다.

유학생 많은 대학의 개강 연기 건의, 도심 대규모 집회 금지 등 박 시장이 국면마다 중요한 방역대책을 연이어 제시했지만 무엇보다 긴요했던 건 '잠시 멈춤' 선언이다. 박 시장은 지난 2일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한 2주간 잠시 멈춤을 제안했다. WHO가 펜데믹을 선언하기 열흘 전이다. 국민들이 큰 불편을 겪게 돼 비판이 예상됐지만 그는 "더 빠른 회복을 위해 조금 먼저 불편을 감수하자"며 캠페인을 벌였다. 서울시가 선제적으로 나서면서 정부도 부담을 덜 수 있었고 사회적 거리두기는 대한민국 전역으로 확대됐다.

◆"국민 굶는데 재정건전성 무슨 소용" = 감염병 확산을 막기위한 박 시장 분투는 단호한 조치들에서도 드러난다. 박 시장은 지난달 21일 도심 대규모 집회 전면 금지 명령을 내렸다.

위험하다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주말 집회 현장에 마이크를 들고 직접 찾아가 "서울이 뚫리면 대한민국이 뚫린다"며 집회 자제를 호소했다.

박 시장은 신천지 대응에도 전에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신천지가 방역을 방해하고 검사에 협조하지 않으면서 막대한 사회적 피해를 안겼다는 것이다. 지난 27일 신천지 법인을 취소했고 세무조사, 감면 세금 추징, 신천지 때문에 발생한 모든 방역비용 구상권 청구 등 초강도 조치를 취하고 있다.

박 시장의 실사구시가 또 한번 빛을 발한 건 소상공인 긴급 대출이다. 코로나19로 어려움에 빠진 소상공인이 급증하면서 대출 신청 서류가 수만장씩 쌓였다. 당장 돈이 급한데 서류 심사 때문에 여름이나 되서야 대출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서울시는 특단의 대책을 세웠다. 대출에 필요한 서류 심사, 접수 작업 등에 시중은행 지점을 동원했다. 적체된 심사 업무를 위해 300명의 추가 인력도 투입했다. 박 시장은 그러면서 "두달 넘게 걸리던 대출을 열흘 안에 끝내겠다"고 선언했다. 업계에선 박 시장 말대로 열흘 안에 대출이 나오면 방역 성공만큼이나 획기적인 일이 될 것이란 이야기가 나온다.

정부 긴급재난지원금도 사실상 서울시 모델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서울시가 내놓은 안에서 대상 범위와 금액만 바꿨을 뿐 기본설계는 서울시 안과 거의 같기 때문이다. 재난기본소득 실시 여부로 총선을 앞둔 여야 간 갈등이 심해지는 와중에 합리적인 서울시 안이 마련되면서 돌파구를 열어준 셈이 됐다. 실제 당초엔 전 국민에게 100만원 재난기본소득을 주자던 김경수 경남지사도 서울시 안을 가져가 모델을 재설계했고 정부도 이 틀을 주되게 참고해 안을 수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는 지방 환자 보호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신청이 오면 최대한 수용한다는 태세다. 3월 29일까지 서울시내 병원에서 치료받은 타 지역 환자는 53명이며 대구·경북입원환자도 25명에 달한다. 자가격리가 어려운 타 지역 거주자를 위해서는 생활치료센터도 개방하고 있다. 박 시장은 병상 관리 담당자들에게 "서울은 아직 병상 포화상태가 아닌 만큼 최대한 타 지역 환자를 수용할 것"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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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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