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식 처방' vs '필요한 조치' … 과학계, 격리·봉쇄에 의견 갈려

2020-04-01 11:46:41 게재

독일 시사주간 슈피겔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얼마나 치명적인가. 실제 얼마나 많은 인구가 감염됐는가. 면역력을 가진 사람은 얼마인가. 코로나19 불확실성 속에서도 각국 정부가 속속 봉쇄와 격리라는 단호한 결정을 내리고 있다. 하지만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3월 31일 "이들이 의존하는 예측모델이 100% 신뢰 받는 건 아니다"라고 전했다.

각국에서 전례없는 대규모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독일 전역에서 8000만명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피해 자가격리중이다. 이미 수만명이 감염됐다. 매일 수천명의 확진자가 늘어난다.

전 세계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연일 강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뉴욕시 파크애비뉴에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사진 AFP=연합뉴스


사회생활이 단절된 지는 이미 오래 전이다. 모든 이들이 과학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바이러스학자와 유행병학자들이 하는 말을 놓치지 않고 있다. 과학계의 주문은 동일하다. '감염 곡선을 낮춰야 한다'는 것.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감염될 경우 가장 아픈 사람들을 위한 집중치료실이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교와 국경 폐쇄로 얼마나 많은 감염을 막을 수 있을까. 아무도 확실한 답을 내놓지 못한다. 이탈리아나 스페인에서 시행중인 강력한 봉쇄정책의 효과 역시 불투명하긴 마찬가지다.

중국 정부는 그동안 취했던 단호한 조치를 조심스럽게 풀고 있다. 감염자 수가 즉각적으로 다시 급증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이 담겼다. 이를 지켜보는 낙관론자들은 중국처럼 단호한 초기 단계 대응으로 코로나19 위기를 멈출 수 있다고, 향후 소수의 감염자를 낳겠지만 장기적으로 바이러스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반면 다른 연구자들은 현재의 싸움이 보다 늘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어떤 조치를 취해도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반복적으로 불거질 것을 우려한다.

양 진영의 입장은 모두 과학적 모델 계산식에 의존한다. 하지만 이 모델들엔 아직 밝히지 못한 요소가 개입돼 있다. 예를 들어 바이러스를 가진 사람들의 전염력, 감염자 중 증상을 드러내는 사람의 비율, 증상 발현자 가운데 실제 죽는 비율 등이다. 때문에 과학자들은 예측모델을 공개하면서 오류가능성을 함께 밝힌다.

그러나 현 시국을 대처해야 하는 각국의 정치인들에겐 오류가능성에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정치와 행정은 단호한 결정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각국 정부는 최악의 팬데믹 경로를 밟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가장 자주 인용되는 모델은 영국 런던 임페리얼칼리지 닐 퍼거슨 교수팀의 연구로, 대표적인 비관론이다. 퍼거슨 팀의 추산에 따르면 코로나19 싸움은 수년 동안 지속될 수 있다. 코로나19 확산 그래프가 증감을 반복하는 등 여러 단계 중대고비를 거친다는 것. 이 시각에 따르면 백신을 만들어내지 않는 한 코로나19 위기는 끝나지 않는다.

퍼거슨 교수팀의 보고서는 정신이 번쩍 드는 내용이었다. 대충하는 조치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성공을 내다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비롯한 전면적 조치에 나서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코로나19가 계속 확산돼 중증의 증상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치료를 전혀 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영국의 경우 25만명 이상, 미국의 경우 약 100만명의 사망자가 나올 수 있다는 것.

독일은 퍼거슨 팀의 연구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퍼거슨 팀의 연구를 기정사실로 본다면, 다른 나라에 비해 집중치료실이 넉넉하다고 평가받는 독일에서도 그같은 여유가 순식간에 소진될 수 있다.

하지만 강제적인 폐쇄와 봉쇄가 무한정 지속될 순 없다. 퍼거슨 연구팀도 바이러스 확산이 둔화될 때 일시적으로 봉쇄를 완화하는 조치를 제안한다. 기한은 감염 사례가 다시 폭증하기 시작할 때까지다.

임페리얼칼리지 연구는 국제적으로 큰 관심을 받았다. 영국의 경우 보다 전면적인 격리정책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 퍼거슨 팀은 유행병 부문에서 세계적인 권위자로 평가 받는다. 하지만 그들의 모의실험도 현실을 매우 대략적으로만 추산할 뿐이다.

따라서 그에 대한 비판 의견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반대 입장은 미국 뉴잉글랜드복잡계연구소(NECSI) 연구진들이 제기하고 있다. 이들은 코로나19 확산이 지속적으로 재발할 것이라는 퍼거슨 팀의 결론에 반대한다. NECSI는 "퍼거슨 팀이 시뮬레이션에서 중요한 대응조치 한 가지를 고려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확진자와의 접촉 사례를 추적하는 것. 확진자들이 초기 단계에서 격리될 경우, 감염 사슬의 확산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

하지만 이 조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바이러스 보균자의 숫자를 특정 기준점 이하, 이를테면 수천명 수준으로 낮추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각각의 개별 접촉 사례를 추적할 수 있다는 것.

대표적인 사례가 한국의 방역당국이다. 한국은 코로나19에 감염된 사람의 접촉자들을 체계적으로 찾아낸다. 휴대폰 위치 추적 자료에 의지해서다. 동시에 한국은 그 어떤 나라보다 적극적으로 검진을 시행하고 있다. 이 덕분에 한국은 최소한 현재까지는 완전한 폐쇄정책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사망자수를 낮게 유지하고 있다.

미국 워싱턴대학 의과대학 교수 겸 프레드허치슨 암연구센터 진화유전학자인 트레버 베드포드는 "세계 각국이 한국의 사례를 따른다면, 코로나19 팬데믹을 통제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베드포드 교수는 또 보다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코로나19 항체가 이미 존재하는지 테스트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 방법은 감염 사실을 모르고 넘어갔지만 이미 회복된 사람들을 찾아내는 데에도 쓰일 수 있다. 이들은 면역력을 가진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여기엔 2가지 장점이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발견되지 않고 얼마나 멀리 확산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 현재까지 답을 못 찾은 의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저항성을 가진 사람들이 숫자를 알 수 있다. 이들은 더 이상 아프지 않고 다른 이를 감염시키지 않는다. 병원에서 일하는 이들 또는 코로나19에 취약한 계층을 돕는 이들에게 가장 이상적인 조건이다.

물론 베드포드 교수도 그같은 테스트가 상당한 양의 작업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방법이 성공하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점도 인정한다. 그는 최근 트위터에 "이는 우리 시대 아폴로 11호 발사 프로그램"이라고 표현했다.

올바른 접근법이 무엇이냐는 논쟁을 벌이면서도, 전문가들은 한 가지 사실에 동의한다. 감염 곡선이 낮아져야 한다는 것, 그리고 백신 또는 치료제 개발 시간을 벌기 위해 새로운 감염자 숫자가 가능하면 제로(0)에 수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후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는 완전히 다른 얘기다. 여기에 치열한 논쟁이 있다.

기본적으로 두 가지 시나리오가 있다. 첫 번째는 충분한 집중치료실을 확보하고 있다면, 현재의 강경조치를 느슨하게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앓게 될 것이다. 하지만 감염에서 살아남은 뒤 면역력을 가진 사람들은 크게 늘어난다.

두 번째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모든 가용 조치를 다 취하는 것이다. 감염자수는 적어진다. 하지만 면역력 확산 환경을 만드는 데엔 불리하다. 강력한 조치가 느슨해지면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다시 활동을 재개할 것이다. 그러면 고강도 조치를 재개해야 한다. 해법이 없는 딜레마다.

이를 풀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미 면역력을 갖췄는지 조사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확진자 수의 몇배에 달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결국 광범위한 집단을 대상으로 항체의 존재를 알아볼 수밖에 없다. 현재 독일에서 준비중이다. 헬름홀츠 감염연구센터 전염병 부서장인 제라드 크라우제가 이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다. 정부의 최종 승인은 나지 않았지만 크라우제 대표는 4월부터 10만명 이상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혈액샘플 검사를 진행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 프로젝트엔 베를린 샤리테대학 병원의 저명한 바이러스학자인 크리스티안 드로스텐 교수도 포함됐다.

이 실험의 기본 개념은 팬데믹 상황 전개를 알아보기 위해 주기적으로 혈액검사를 반복하는 것이다. 계획대로 된다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체 인구에 얼마나 빨리 퍼졌는지, 감염자 중 얼마나 많은 사망자를 내는지에 대한 보다 명확한 상황을 알 수 있다. 학교를 다시 열어야 하는지, 대규모 회합을 재개해도 되는지 등의 의사결정 과정을 보다 쉬워진다. 크라우제 대표의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첫 번째 결과물은 4월말쯤 입수가능하다.

이 실험과 관련한 문제점은 지난해말부터 확산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아니라, 성인 90% 이상이 항체를 갖고 있는 무해한 일반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생성된 항체에 대해서도 양성반응을 내놓을 수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연구자들은 2~3개월 내 보다 정확한 실험 과정을 확보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코로나19에 여전히 취약한지 여부, 이들이 다른 사람을 감염시킬 수 있는지 여부 등에 대해 보다 정확히 판단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크라우제 교수는 "예를 들어 면역이 된 사람들에겐 일상활동의 제한에서 면제될 수 있는 확인증을 발급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항체 실험은 이탈리아의 높은 치명률 미스터리를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탈리아의 코로나19 확진자 치명률은 10%나 된다. 하지만 독일에선 1%에 크게 못 미친다. 이탈리아 북부의 병원들에 너무 많은 환자가 몰린다는 점을 고려해도 그 차이는 놀랄 만한 것이다.

독일 본대학 바이러스연구소의 헨드릭 슈트렉 소장은 이탈리아의 실제 치명률은 크게 낮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확진자로 판명나지 않은 거대한 숫자의 감염자가 있을 것"이라며 "심각한 증세를 보여 병원에 온 환자들을 중심으로 확진 판정을 받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의 분석이 맞다면, 이탈리아의 코로나19 상황은 조만간 정점을 맞게 된다.

보다 합리적인 데이터가 없는 상황에서 사회생활을 전적으로 제한하는 게 과연 적절한 조치일까. 미국 스탠퍼드대 감염병학자인 존 아이어니디스 교수는 부정적 입장이다. 그는 "우리는 눈을 가린 채 전 세계 전 인구를 상대로 중세시대 처방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그 역시 코로나19 초기단계에서는 다른 대안이 없다는 점을 알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실제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명확히 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본다. 그는 "최선의 방법은 상당 기간 동안 무작위로 인구의 대표적 샘플을 뽑아 검사해야 한다"며 "결국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독감보다 더 위험한 게 아니라는 것도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그는 "백신이 발견될 때까지는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경우에만 적절한 예방조치를 적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전 세계 과학계는 동시다발적으로 많은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는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한 기초연구를 수행하는 초기단계다. 하지만 가능한 한 신속히 효과적인 백신을 마련해야 한다는 성급함도 엿보인다. 이는 엄청난 노력을 요하는 작업이라는 점에 의심의 여지는 없다.

저명한 과학저널 사이언스의 편집장인 홀덴 소프는 그같은 노력이 조만간 성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이미 비행중인 비행기를 고치려 노력하는 것에 비유했다. 그는 "단지 날고 있는 중에 비행기를 고쳐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 날고 있으면서 동시에 어떻게 수리할지 계획도를 짜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슈피겔은 "어느 경우든, 코로나19와 싸우기 위한 거대한 사회적 실험과 조치들은 수정되고 또 수정돼야 성공할 수 있을 전망"이라며 "과학적 견해에서 보면 되도록 통제가능하고 투명하게 수정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현재의 상황에서 배울 게 없다"고 지적했다.

본대학 슈트렉 소장은 독일 전역에 취해진 조치를 둘러싼 최근의 혼란에 불쾌감을 표했다. 그는 독일이 봉쇄조치 없이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지 기다리며 지켜보는 방법을 선호했다. 그는 "매일 새로운 조치를 취한다면, 무엇이 실제 유용했고 무엇이 쓸모없었는지를 알 길이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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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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