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코로나 이후 항만민영화 재검토 필요"

2020-05-18 11:28:31 게재
남기찬 부산항만공사 사장

코로나19 재난으로 정부 역할이 재조명되고 있다. 마스크 대란을 시장에 맡기기보다 정부가 나서 해결하는 게 옳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듯하다. 코로나19 확산이 진정되면서 사회적 관심은 이제 경기회복에 집중된다. 저성장, 제로 금리, 고실업, 고위험 등의 복합체인 구조적 침체기가 올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다. 동시에 시장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시장 만능주의의 실패도 지적된다. 경제·산업 정책 전반을 주도해 온 시장주의, 세계화 그리고 신자유주의가 도전을 받는 양상이기도 하다.

반면 시장 중심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의 균형을 잡을 수 있는 큰 정부의 귀환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논의의 장으로 나오고 있다.

항만민영화 효과 불확실

글로벌 공급사슬의 주요 거점인 항만도 논의에서 예외가 아니다. 공공재로 인식된 항만을 처음 민영화한 것은 영국의 대처 전 수상이다. 1980년대 대처와 레이건이 이끌었던 신자유주의 물결은 항만의 민영화를 전 세계로 확산시켰다. 당초 항만 민영화는 경영참여를 요구한 강성 노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었다. 그 이후 항만 운영의 효율을 높이는 것이 민영화의 주목표로 자리 잡으면서 민간이 항만 개발과 운영을 주도해왔다.

그러나 항만 민영화 역사 30여년을 평가하는 연구 결과들은 긍정적이지 못하다. 시장의 불안정성이 높아졌고 항만 효율을 높였다는 근거가 입증되지 못했다. 반면 금융자본의 지배, 지나친 주주이익 추구 등의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는 지적이다.

예외도 있다. 세계 1, 2위 수준인 싱가포르항과 상하이항을 비롯한 중국항만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정부 통제형 부분 민영화를 추진한 것이다. 단일 항만관리체제를 구축해 민간에 터미널 운영은 개방하되 공적 의사결정권은 넘겨주지 않았다.

우리나라 항만은 신자유주의 모델이라 할 수 있다. 대규모 민간자본이 인프라 개발에서 운영까지 들어와 있다. 30년에서 길게는 50년까지 정부나 항만공사가 손댈 수 없는 민간부두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정부와 항만공사가 건설하고 민간이 운영하는 임대부두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공공의 관리 감독권이 미칠 수 있는 여지는 제한적이다. 주주자본주의를 기반으로 냉엄한 시장논리만 남은 것이 부산항의 현실이다.

코로나 19 재난 이후 글로벌 항만산업 부문도 제로 성장으로 대별되는 제로시대로 들어갈 전망이다. 국내의 경우도 수요가 공급을 앞서는 활황 성장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연 3.5% 수준으로 예상했던 물동량은 1%대 증가로 떨어졌다. 곧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된다. 이대로 간다면 시장의 안정을 유지해온 수요-공급의 균형 붕괴는 시간문제이다. 공급 과잉 시장은 결국 승자 독식 논리의 자본 사냥터가 될 것이다. 터미널 운영사들은 이웃터미널들과 생존의 전투를 벌일 것이다.

공공부문 역할 키워 위기관리

코로나19 팬데믹과 제로성장의 뉴노멀 시대에 지속가능발전의 핵심 과제는 불확실성 대비 위기관리능력이다. 관건은 공공 부문의 역할 확대이다. 공공부문이 시장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는 이제 접어야 하는 상황이다. 단기적으로는 수요가 감소하고 터미널 운영사들의 경영수지가 악화되는 상황을 막을 수 있는 정부와 항만공사의 적극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 장기적으로는 구조적 저성장시대에 대비하여 항만개발에서 운영에 이르기까지 불확실성을 흡수할 수 있는 공적 제도 강화가 절실하다.

최근 어려움에 처한 민간 항공사들을 국영화하려는 외국의 움직임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수송과 물류산업은 사업의 연결성을 확장시켜 국민경제와 그 나라 국력을 뻗어나가게 하는 사회간접자본이다. 여러 산업의 발전에 기초가 되는 공공시설인 만큼 전체의 이익을 위해 관리되어야 한다.

우선적 과제는 항만공사가 시장 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는 실효적 관리 기능을 갖는 단일 주체가 되게 하는 것이다. 다음 팬데믹 때 고용불안과 기업경영채산 악화의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처방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