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세 공론화 지금부터" 탄력 받은 증세론

2020-05-27 12:15:13 게재

조세연구원장 "증세해야", 국책연구기관 KDI도 가세

기재부 "국민공감대 우선" 청와대 "현실적으로 어렵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역대 최고 규모의 추경 편성이 추진되면서 국가채무가 빠르게 늘어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조세부담 증가와 국제 신용도 하락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금부터 증세문제를 공론화하지 않으면, 향후 재정건전성 악화에 늑장대응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아직까지 미온적이다. 증세 문제를 잘못 건드렸다간 불필요한 국론분열과 사회적 논쟁만 부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청와대는 "현재로선 현실성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그동안 공론화 과정 자체가 길어질 수 있으므로 "현재가 공론화할 적기"라는 지적을 해왔다. 특히 최근 두 국책연구기관이 증세 문제를 공론화해 주목된다.
발언하는 문 대통령 |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2020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문 대통령 왼쪽으로 정세균 국무총리와 홍남기 부총리. 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아직 재정여력은 있지만" = 김유찬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은 26일 재정포럼 5월호 특별기고에서 "일정 수준에서 국가채무비율에는 한도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겠다"면서 우리나라의 재정여력은 아직은 충분한 편이라고 평가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채무비율을 237~363%포인트(p) 높일 여력이 있다는 2015년자 해외연구를 인용했다.

우리나라의 국가채무 증액 한도를 지난해 1914조원이었던 GDP의 2~3배인 3828조~5742조원 수준으로, 상당히 높게 제시하기도 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1·2차 추경 편성 이후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는 본예산보다 13.8조원 늘어난 819조원이며,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기존 39.8%에서 약 2%p 오르게 됐다.

김 원장은 국채금리에서 명목성장률을 뺀 '실효이자비용' 추이를 기초로 "단기적으로, 그리고 중기적으로 한국의 재정 여력에 문제가 없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증세' 필요성을 주장했다. 김 원장은 "현재와 같은 시기에는 재정지출과 동일하거나 적은 규모로 증세하는 경우 긍정적인 경제 활성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제시했다. 규모가 큰 일회성 지원금은 부채로 재원을 조달하고, 중기적인 공공투자 등은 증세와 부채로 함께 조달하는 방안이다.

◆KDI 도 중장기 증세안 제시 = 최근 경제전망을 내놓은 KDI도 증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제기했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지난 1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진행한 경제전망 브리핑에서 "재정지출확대 수요가 있는 만큼 그에 준해 재정수입도 확대해야 하는데 그 방법으로서 중장기적으로 증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당장은 경기가 안 좋기 때문에 어렵겠으나 중장기적으로 생각해보면 복지 수요가 확대되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상당히 빠르게 올라가므로 그런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두 국책연구원의 증세론이 2020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전후해 나왔다는 점도 주목된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25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이 회의에서 "전시재정을 편성한다는 각오로 재정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심스런 정부입장 = 다만 청와대는 현 상황에서 증세 논의를 부인하고 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이날 확장적 재정운용을 뒷받침하기 위한 증세 가능성이 거론되는 것에 대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을 만나 "어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증세 문제는 논의되지 않았다"며 이같이 설명했다. 재원 마련 방안과 관련해서는 "문재인 대통령은 정부의 '뼈를 깎는 지출 구조조정'을 여러 번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기재부 입장도 비슷하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내일신문과 인터뷰에서 "증세 문제는 국민공감대가 있어야 가능한 사안이어서 쉽게 얘기하기가 어렵다"고 밝혔다 정부가 마련하는 중기재정계획에도 이 문제 때문에 포함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홍 부총리는 거듭 '사회적 합의'를 강조하기도 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성홍식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