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인력부족 9~10월 최대 위기, 외국인 의존도 낮춰야

2020-06-04 12:44:04 게재

고용허가 받지 않은 인력소개소 이용, 농촌서는 도시근로자 투입 거부감 … 그린뉴딜로 농촌 일자리 안정 의문

국내 농촌 인력 수급 구조는 매우 비정상적이다. 청년이 떠난 자리는 노인이, 노인이 없는 곳은 외국인 근로자가 메웠다. 코로나19처럼 비상 사태가 발생해 외국인 근로자 입국이 제한되면 우리 농촌은 마비 상태가 된다. 9~10월 수확기 농촌 인력 부족은 최악의 상황에 처할 것으로 우려된다.

정부는 한국판 그린뉴딜로 올해 농촌에 2700억원을 추가로 투입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린뉴딜은 스마트농업 등 정보통신기술(ICT)을 통한 효율성 높이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 농번기 농촌 고용 문제를 해소하기는 역부족처럼 보인다.


3일 농촌경제연구원은 코로나19 발생 이후 농업인력 수급이 점차 어려워질 것으로 예측했다. 연구원은 특히 "계절근로자 입국이 제한되면서 외국인이 고용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밭작물과 과일·채소 품목 인력 수급은 9~10월 최악의 상황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하반기에도 외국인 근로자 입국이 제한될 것으로 보여 농촌 인건비 상승과 노동효율 하락이 우려된다.

◆농업노동력 감소하지만, 경제위기 때마다 증가 = 1995년 이후 농업 노동력은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과 2008년 금융위기 때에는 반짝 증가했다. 도시 근로자 일자리가 급격히 줄었지만 농촌 일자리가 경제위기에 완충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는 이보다 더할 것으로 예측된다. 도시 실직자들이 늘어나고, 특히 코로나19가 비대면 노동 문화를 정착시키면서 농촌 노동에 대한 관심을 상대적으로 높이고 있다. 농촌 일자리 수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적기가 온 셈이다.

농촌 고용문제는 불안정한 외국인근로자 자리를 내국인으로 대체해 안정적 인력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농촌 일자리는 대부분 상용근로자와 임시근로자로 채워져있다. 상용근로자(6개월 이상)와 임시근로자가 늘어나는 것은 외국인 고용 증가와 비례한다. 아직 상용근로자와 임시근로자는 내국인이 많지만, 외국인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특히 통계에 잡히지 않은 일용근로자의 경우 불법 고용 외국인들이 대부분이어서 농촌 인력 시장의 내·외국인 비율 역전현상이 곧 올 것으로 예상된다.

2015년 농업총조사에 따르면 논벼 농가 등을 제외한 대부분 품목에서 외국인 근로자 고용이 증가하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는 채소 산나물 과수 품목에서 가장 많이 고용된다. 2015년 농업 부문 상용근로자의 외국인 비중은 특용작물(시설)에서 47%까지 치솟았다. 시설원예 역시 37.5%가 외국인이었다. 채소산나물도 외국인 상용근로자 비중이 36%에 달했다. 외국인 상용근로자는 고용허가제를 통해 매년 도입 규모가 결정된다.

근로 기간이 3~6개월인 임시근로자도 외국인 비중도 늘어나고 있다. 임시근로자는 계절근로자제도를 통해 정부가 한시적으로 허가한 인력이다. 올해 계절근로자 입국이 전무해 농촌 인력 수급에 상당한 차질을 빚었다.

외국인 임시근로자의 경우 비닐하우스 등 대형시설에서 주로 일한다. 외국인 임시근로자 고용 비율을 보면 △특용작물(시설) 24% △채소 산나물(시설) 13.9% △노지 기타작물 12.4% △시설원예 11.7% 수준이다.

농촌 인력은 계절 변화에 크게 요동친다. 농번기인 5~6월과 9~10월에 인력이 대량 필요하지만 이 때에만 근로할 수 있는 단기 근로자 시장은 크지 않다. 내국인 중 계절별로 농촌 인력으로 투입할 '인력풀'이 없어 외국인 근로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나마 고용허가제를 통한 상용근로자와 계절근로자가 빈 자리를 채워왔지만, 매년 농촌 인력 부족은 심화했다.

이 때문에 농번기 농촌 곳곳에는 불법고용된 외국인을 자주 볼 수 있다. 전남 지역 농협 관계자는 "고용허가를 통해 들어온 외국인근로자라도 불특정한 이유로 고용이 끝나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농촌 인력시장으로 들어오고 있다"며 "대규모 시설 농가에서는 일당을 주면서 급한 일을 시키기는 하는데 불안한 점은 있다"고 말했다.

군 장병까지 동원된 농촌 인력 부족│4일 육군 35사단 장병들이 전북 무주군 적상면의 한 고추 농가에서 농사일을 돕고 있다. 사단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외국인 계절 근로자 입국이 제한돼 어려움을 겪는 농가를 돕기 위해 봉사를 자처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외국인 고용 대부분 불법 인력소개소나 지인 소개 = 코로나19 발생 후 농림어업 취업자 수는 전년 동기 대비 증가했다. 도시민의 농촌 유입도 있지만, 청년농 육성 등으로 꾸준히 농업 취업자는 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력 소요가 많은 작물재배업에서는 취업자가 아닌 임시근로와 일용근로가 대부분이다. 농림어업분야 취업자 수가 늘었다고 해서 실제 농번기 노동력이 증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농촌경제연구원 설문조사에 따르면 3월에 농가의 38.6%가 '지난해와 비교해 인력을 구하기 어려웠다'고 응답했고, 4월에는 42.6%가 '어렵다'고 했다. 5월 인력수급 예상을 붇는 질문에 59.1%가 '인력을 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답했다.

특히 외국인근로자 고용과 관련, 정식 경로인 고용센터를 통한 외국인고용은 밭작물(2.9%)이나 과일·과채(3.8%) 품목은 매우 낮았다. 이 품목은 대부분 비공식경로인 외국인인력소개소를 통해 각각 68.1%, 53.2%를 고용했다. 인력소개소와 지인을 통해 소개받은 외국인은 고용허가를 받지 않아 불법고용으로 분류된다.

엄진영 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코로나19 발생 이후 인력소개소에 속하거나 지인 소개를 통한 외국인근로자 공급 변화에 따라 향후 농작업 인력 부족 문제가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불안정한 농촌 노동력은 향후 인건비 상승으로 이어져 농가들의 부담을 늘릴 전망이다. 특히 밭작물의 경우 인건비가 상승한 농가 비율이 지난해 3월 16.7%였지만, 코로나19 이후인 올해 3월에는 48.1%로 증가했다. 고용노동력이 집중적으로 투입되는 5~6월과 9~10월에는 농가 인건비가 더 오를 것으로 관측된다.

◆도·농간 인력중개 안착 필요 = 농촌경제연구원은 코로나19에 따른 농업 인력 수급 과제로 일자리 소개·알선 서비스 강화와 지원, 감염 방지체계 마련 등을 꼽았다. 코로나19가 국내외로 확산되고 있어 외국인근로자 입국 제한과 내국인 근로자 이동 제약에 따른 인력 감소가 우려되기 때문에 농업부문 일자리 소개 제도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도시 자영업부문에서 실업 위기에 있는 도시민이 농촌인력으로 고용되는 것을 원활히 하기 위해 임금격차에 대한 지원 방안 등이 마련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영국의 경우 도시 실직자들이 농촌에서 일할 수 있는 제도가 정착되면서 국내 노동력의 선순환구조가 구축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농림축산식품부가 5월 25일부터 시행하는 '도농인력중개센터' 제도는 국내 노동력의 도농순환에 주춧돌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사업은 농촌 일자리를 중개해 임금은 농가에서 지급하고 교통숙박비와 보험은 정부가 지원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아직 농촌에서 도시근로자를 수용할 준비가 안된 부분도 과제다. 농협 관계자는 "농가들 중 비숙련자인 도시민이 와서 일하는 것을 반기지 않은 곳이 많다"며 "자원봉사 수준의 노동력을 제공하는데 임금을 주는 것에 불만이 있다"고 밝혔다. 농협은 "비숙련 부문은 자원봉사로, 숙련부문은 일정정도 훈련을 통해 인력을 공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3월 30일부터 방문동거(F-1) 비자로 국내에 머물고 있는 외국인이 90일 또는 6개월까지 한시적으로 농업부문에서 일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농가에서는 외국인 한시적 취업에 대한 인지도가 낮아 실질적으로 이를 이용하는 비율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농촌 현장에서는 다양한 고용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정부가 그린뉴딜을 통해 농촌 노동 문제를 해소하려면 이같은 실상을 꼼꼼히 파악해야 한다. 지금은 고용이 순환되는 도농상생을 실현할 적기다.

김성배 기자 sb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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