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또 다른 대공황 직면할까

2020-06-05 11:40:47 게재

FT, 6명의 경제·금융 전문가에 묻다

전 세계 각국이 서서히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격리와 봉쇄를 풀고 있다. 하지만 경제적 파장은 여전히 가늠하기 어렵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4일 저명한 경제·금융 전문가 6명에게 '전 세계 경제가 1930년대 대공황 수준까지 악화될지' 물었다. 답은 지역별·부문별로 달랐다.


세계은행 전 총재 로버트 죌릭 "전 세계 분열, 대공황 이상으로 보여"

심각한 경제 충격이 사람들을 강타하고 있다. 경제 회복의 속도와 범위는 치료제와 백신을 얼마나 빨리 발견하고 얼마나 많이 보급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경제 회복은 느릴 것이고, 종종 후퇴할 것이다. 그리고 값비싼 조정 과정을 겪을 것이다. 하지만 경제적 재앙이 10년 넘게 이어질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많은 중소기업들은 파산할 것이다. 일부 유명 브랜드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반면 능숙하게 상황에 적응하는 기업들, 특히 디지털경제 부문의 창조적 파괴자들은 더 강력한 모습으로 등장할 것이다.

1930년대 대공황은 경제적 고통 이상을 야기했다. 대공황은 민주주의 이상을 망가뜨렸다. 증오의 이데올로기가 승리했다. 선동정치가가 등장했고 국제무역과 금융이 붕괴했다. 결국 2차 세계대전을 불렀다.

20세기 후반 미국은 세계질서를 수립한 혁신의 보증수표였다. 이젠 자신이 만든 틀을 무분별하게 해체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이 만든 국제시스템에서 성공적으로 자라났다. 이젠 그 시스템을 위협하고 있다. 또 조공 시스템에 기반해 대안체제를 탐색하고 있다. 중국을 두려워하고 미국을 못 미더워하는 고령화 일본은 조심스럽게 길을 걷고 있다. 인도는 이리 저리 표류하다가 '전략적 자율성' 외교로 후퇴하고 있다. 러시아는 외부에서 이득을 얻기 위해 조작한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시들고 있다. EU는 회원국 간 응집력을 지키려 애쓴다. 하지만 꿈꾸던 국제질서가 망가지고 있음을 고통스럽게 깨닫고 있다. 영국은 자신과 싸우고 있다. 중간 규모 국가들은 분열된 세계에서 각자에게 유리한 자리가 어디인지 계산하고 있다.

전 세계적 분열상은 새롭지만 낡은, 위험한 유령을 소환한다. 전 세계는 생물학적 안전을 원한다. 바이오기술의 발전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포용적 경제성장을 원한다. 환경과 에너지 문제는 커져만 간다. 우리는 거대한 디지털 전환의 초입에 있을 뿐이다. 지역 패권국이 되려는 이들은 여전히 대량살상무기를 추구하고, 테러리스트들은 파괴적 공포를 자극한다. 민주주의 국가는 자유의 미래를 의심스러워 한다. 전 세계는 중국의 미래를 저울질하고 있다.

하지만 어두운 미래가 예정된 건 아니다. 위기는 각국의 회복탄력성을 시험한다. 주요국 지도자들은, 긍정적 결실을 내려고 노력하는 범국가적인 기업가와 정책자들과 함께 향후 세계질서를 설정할 것이다. 이런 행위자들에겐 여론의 지지가 필요하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오래 전 "미국에선 여론이 모든 것"이라고 했다. 오늘날도 여전히 그렇다.

모간스탠리 최고투자경영자 마이크 윌슨 "V자형 경제회복 본격화한다"

2020년은 말 그대로 이례적인 해다. 하지만 나는 금융시장의 행동이 예상대로였다고 주장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시장의 급락을 불렀고 기록적인 실업을 낳았고 미국에서만 10만명 이상의 사망자를 냈다. 정책당국은 전례없는 부양책으로 위기에 대응하고 있다.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자산은 향후 18개월 동안 미국 GDP의 38%만큼 더 늘어나 12조달러가 될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 비해 2배 많아진다. 올해 미국의 적자는 GDP의 25% 수준에 다가갈 전망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못보던 규모다.

코로나19는 난데없이 불거졌지만, 불황이란 단일한 사건만으로 일어나는 게 아니다. 불황은 실물경제에 형성되고 있던 과도한 거품의 결과다. 지난 10년 동안 경제는 기록적으로 확장했다. 코로나19가 아니었어도 올해쯤 사달이 날 정도의 거품이 있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이미 다가오고 있던 불황을 촉발한 것뿐이다. 사실 금융시장은 이미 수년 전부터 방어적으로 거래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개별주식들은 약세에 있었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마침내 침체가 닥치면 지난 3월처럼 시장에서 투매가 일어난다.

역사적으로 보면 불황 뒤 종종 V자형 경기 회복을 맞았다. 현재처럼 특히 심각한 불황도 전례없는 정책 대응과 맞물리면서 V자형 경기 회복을 볼 가능성이 높다. 주식시장은 적절히 회복중이다. S&P500 지수는 3월 저점에서 35% 상승했다. 우리가 추적하는 많은 지표상, 리먼브러더스 붕괴 이후와 유사한 경기 회복이 일어나고 있다.

미국 경제가 코로나19 확진자의 급증 없이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다. 고무적인 일이다. 만약 코로나19 2차 파동이 닥쳐 확진자가 늘어난다면, 보건의료 시스템이 더욱 잘 대응해야 한다. 결국 전례없는 재정·통화부양책이 경제를 부양해야 한다. 우리는 증시의 랠리가 지속될 것으로 본다.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 교수 마리아나 마주카토 "글로벌 차원의 경제회복 계획 없다면, 수요는 정체하고 불평등은 늘어"

코로나19로 경제가 고꾸라졌다. 얼마나 오래, 얼마나 심각하게 불황이 펼쳐질까가 관건이다. 글로벌 부양책의 질과 양에 달렸다. 부양책이 효과를 내기 위해선 수요와 공급에 대처해야 한다. 가장 취약한 계층에 소득을 줘야 한다. 꼼꼼히 계획된 기본소득 정책이나 일자리 보장 정책 등이 필요하다. 정부는 기업이 스스로 설 수 있도록 돕는 동시에 녹색성장 방향으로 투자를 감행해야 한다.

경제성장은 백신을 찾아 규모 있게 제조하는 속도에 크게 좌우될 것이다. 그리고 전 세계가 이용가능해야 한다. 특허풀을 만들어 코로나19 관련 지식과 데이터, 기술을 자유롭게 공유하자는 세계보건기구(WHO)의 제안은 중요한 조치다. 바이러스는 진실로 집단지성이 발휘돼야 물리칠 수 있다.

일본과 EU, 영국 등 선진국 정부의 부양책은 규모가 크지만 사후약방문 격이다. 하지만 개발도상국에선 그런 부양책도 꺼내기 어렵다. 현대 경제의 세계화라는 특징을 고려하면, 글로벌 차원의 경제회복 계획이 없다면 수요는 정체할 것이다. 더 심각한 건 불평등이 증가할 것이라는 점이다. 현재 위기를 더 악화시킨다.

개인과 기업을 지원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하지만 원조의 내용이 중요하다. 대출과 모기지 납부 유예는 이자를 늦춰주는 것이다. 이미 기록적인 수준의 민간부채를 더 늘릴 위험이 있다. 가장 취약한 개인과 가계에 대해서는 부채를 탕감해줄 필요가 있다. 사후약방문일지라도 전략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글로벌 녹색뉴딜에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탄소없는 도시와 지역을 만드는 과감한 정책은 창조성과 혁신을 자극할 수 있다. 특히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즐거움을 재발견하고 있다. 사회적, 조직적, 기술적 혁신은 먹는 법, 이동하는 법, 건설하는 법 등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된다. 녹색시대 전환을 촉발하면서다. 철강업이나 항공업 등 오염물질을 많이 배출하는 산업을 구제할 때 녹색성장 조건을 붙이는 것도 필요하다.

2020년은 글로벌 보건의료 시스템의 필요성을 재발견하고, 그린 뉴딜과 투자가 선도하는 경제회복을 통해 새로운 공황을 피하는 한 해로 기억돼야 한다.

우니크레디트 글로벌 수석 이코노미스트 에릭 닐슨 "100년 만에 유럽에 가장 평화로운 불황"

봉쇄의 경제적 영향을 예측하려는 시도는 바보들이 하는 짓이다. 사람 때문에 발생한, 이런 규모의 불황을 본 적이 없다. 또 위기를 맞아 현재와 같은 규모로 정책 대응을 한 경우도 본 적 없다. 모든 것을 고려할 때, 거의 100년 만에 유럽에 가장 평화로운 불황이 찾아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제활동의 초기 붕괴는 거의 끝난 것처럼 보인다. 유럽 각국이 철저한 봉쇄를 단행하면서, 올해 말이 되면 연초 예상했던 GDP 수준보다 15~30% 낮아질 전망이다. 남유럽 국가들과 프랑스는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북유럽, 중유럽은 그보다는 덜하다. 코로나19 위기가 뒤늦게 찾아온 러시아와 터키 등의 국가들은 아직은 형편이 낫다.

향후 석달 동안 서유럽 전역에서 봉쇄 해제가 있을 것이다. 처음엔 매우 억눌린 수준에서 경제활동의 안정화가 이어질 것이다. 이후 일부 지역에서 경제성장 또는 강력한 반등이 따를 것이다. 가장 큰 리스크는 규제가 완화되면서 새로운 확진이 불거져 또 다시 봉쇄와 격리 조치를 취하는 경우다.

그렇다면 나이키 로고 모양의 GDP 성장궤도가 W자 모양으로 변할 것이다. 경제가 바닥에서 회복하는 과정이 장기적이고 점진적일 것으로 본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효과적인 백신이 널리 보급될 때까지는 코로나19 이전의 GDP 수준으로 회복할 것이라 상상하기는 어렵다.

종합적으로 유로존 GDP는 올해 13% 위축될 것으로 예상한다. 내년 인상적인 경제성장률을 기록한다고 해도, GDP 수준은 코로나 위기 이전에 비해 여전히 4% 정도 낮을 것이다. 중유럽은 아마 고통이 덜할 것이고 내년쯤 위기 이전 GDP를 회복될 것이다. 터키와 러시아 GDP는 올해 5.5%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 외부 환경이 추가적으로 악화되지 않는다고 전제하면, 터키는 2021년 강력한 경제회복세를 보게 될 것이다. 반면 러시아는 상당히 더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코로나19 위기를 통과하면서 유럽의 GDP는 1930년대 대공황과 같은 수준으로 하락할 전망이다. 하지만 그때보다는 더 빠르고 왕성한 경제회복이 뒤따를 것이다.

나티시스 신흥국 선임 이코노미스트 찐 응웬 "적어도 아시아에 공황은 없을 듯"

경제데이터를 보면 끔찍하다. 소매판매에서 수출까지 성장엔진은 급격히 꺼지고 있다. 올 2월 중국 공장 폐쇄로 인한 공급 충격 이후, 2분기 아시아 각국은 국내외 수요 충격에 직면했다. 인도와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내수에 의존하는 경제국가들에서 이동제한 조치가 내려지면서 소비 감소가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이동의 정상화가 이뤄진 나라 역시 여행객은 오지 않고 수출판매가 급감하면서 고통을 받고 있다.

1분기 아시아의 GDP 충격은 중국의 급격한 침체가 원인이었다. 2분기 GDP는 아시아 많은 국가들이 봉쇄를 확대하면서 더 악화될 것이다. 중국이 올해 GDP 목표치를 제시하지 않았다는 건 아시아 각국이 지역 수요를 자극하기 위해 중국에 기대기 어려워졌다는 의미다. 아시아는 중소규모 기업들에게 고용을 크게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아시아 중소기업의 어려움이 가중되면서 노동시장 조건이 악화할 것이고, 소비자들의 구매력도 하락할 것이다.

아시아 각국은 속속 부양책을 내놓고 있다. 인도는 재정 부양책 규모를 GDP의 2.7%로 늘렸다. 필리핀은 260억달러 부양책을 추가 마련했다. 인도네시아는 중소기업에 대한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430억달러를 추가했다. 한국은 뉴딜정책을 통해 신규 일자리 창출과 5G·인공지능 등의 산업성장을 꾀할 계획이다.

아시아 중앙은행들은 유동성 충격에 대처하기 위해 다양한 조치를 내놓고 있다. 인도네시아중앙은행은 국채를 사들이고, 태국중앙은행은 기업채권펀드를 조성했다. 미국 연준은 레포(환매조건부채권)와 통화 스와프라인을 통해 모든 시장에 달러 유동성을 쏟아붓고 있다. 현재의 위기는 분명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보다 더 나쁘다. 아시아 지역의 성장은 올해 위축될 전망이다.

하지만 또 다른 대공황의 시작은 아니다.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환율을 조정하는 등 아시아 각국은 유연하게 대응하며 자금조달 조건을 안정시킬 것이다. 경상수지적자를 가진 나라들은 수입 수요가 줄어들면서 외부 자금을 덜 필요하게 될 것이다.

내년엔 아시아 경제가 회복될 것으로 전망한다. 인구 감소와 부채 증가, 탈세계화라는 핵심 리스크가 있지만 이는 기회이기도 하다. 사업다각화와 저렴한 노동력을 노리는 기업들은 인도와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을 매력적 사업처로 볼 것이다. 인구가 늘어나는 나라들의 경우 인프라 수요가 크기 때문에 외국 투자자들을 잡아끌 것이다.

런던정경대 공공정책대학 학장·칠레 전 재무장관 안드레스 벨라스코 "중남미에선 1930년대 대공황 펼쳐질 것"

1930년대 대공황 당시 중남미는 원자재 가격 붕괴, 전 세계 무역 감소, 대규모 자본 유출로 요동쳤다. 그같은 충격이 오늘날 다시 중남미를 타격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엔 해외 송금액의 감소를 덧붙여야 한다. 이는 중미와 카리브해 연안 국가들에겐 핵심 수입원이다.

또 대부분 나라에서 봉쇄와 격리로 인한 생산성 정체가 일어나고 있다.

대공황 당시 경제 위축은 잔인했다. 1929~1933년, 아르헨티나와 멕시코 GDP는 10%, 칠레 GDP는 무려 37% 하락했다. 브라질과 콜롬비아 역시 급격한 초기 감소로 고생했다. 하지만 1933년 들어 대공황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중남미는 그처럼 암울한 성적표를 다시 한 번 받아들 운명이다. 지난 4월 중순 국제통화기금(IMF)은 중남미 경제가 올해에만 5.2% 위축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멕시코는 6.6%, 아르헨티나는 5.7% 하락할 처지다. 그같은 예상도 이미 오래됐다. 올해 실제 GDP 위축은 아마 그보다 훨씬 심각할 것이다.

경제회복 모형에서 V자형은 중남미 각국엔 언감생심이다. 백신이 신속히 보급돼 전 세계가 동시에 경제성장 궤도에 동시에 오른다면 V자형 회복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중남미에 늦게 도달했다. 브라질과 에콰도르 멕시코 등 일부 국가는 코로나19를 막는 데 서툴렀다. 때문에 파장이 길게 갈 것이다. 다른 나라들의 경우 공공부채가 높고 국제자본 접근성에 한계가 많다. 따라서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을 차단하는 정부의 능력이 제한적이다. 칠레와 페루 정도만 공격적인 봉쇄 정책에 재정을 댈 만큼 여유가 있다. 하지만 칠레와 페루도 지난 2주 동안 코로나19 신규 확진과 사망이 급격히 늘었다.

미주개발은행이 예상한 최상의 시나리오에서도 중남미 경제는 2020~2023년 6.3% 위축될 전망이다. 가장 심각한 시나리오는에서는 누적 위축세가 14.4%로 예상됐다. 현실화한다면 대공황 때 겪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1930년대 회복이 빨랐던 남미 국가들은 당시 비전통적 조치를 택했다. 이들은 기준금리를 내렸고 금본위제를 떠난 이후 통화가치 하락을 방치했다. 당시 중남미 대부분 국가가 외채에 대해 디폴트를 선언했다. 유일한 예외는 카리브해 연한 국가들이었다. 이곳에 주둔하던 미국 해병대가 지급을 보증해줬기 때문이다.

오늘날 변동환율제는 새로운 전통이며 제약요소는 아니다. 하지만 달러 유동성 이용가능성은 제약요소다. IMF나 미주개발은행 등 국제기구들이 중남미 국가들에 대한 대출을 급격히 늘리지 않는다면, 부채 디폴트 물결이 중남미 전역을 다시 휩쓸어 1930년대 상황을 재연할 것이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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