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도 '입법 발의 경쟁' … 한 달도 안돼 1인당 3개씩

2020-06-25 11:45:34 게재

20대 대비 두 배 넘어 … 부실·과잉 입법 발의 지적 나와

민주당·시민단체 발의 건수 평가, 이익단체·지지층 눈치보기도

"질적 제고 위해 '입법영향 평가' 등 정당·국회 차원 지원 강화"

21대 국회가 채 한 달도 되지 않았지만 의원 평균 3건 이상의 법안이 발의됐다. 20대에 비해 두 배가 넘는 발의속도다. '입법 발의 경주'가 21대에도 이어지는 분위기다.

쏟아지는 법률안 발의 경쟁이 '과잉입법'으로 이어져 부실 입법이나 부실 심사를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5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임기가 시작한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24일까지 26일 동안 21대 국회의원들의 발의 법안이 모두 910건이었다. 의원 300명이 평균 3.03건 내놓은 셈이다.


임기가 한 달도 안됐지만 과거에 비해 대규모 발의가 이어지면서 21대에도 '입법 경쟁'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민주화운동이후 13대와 14대 국회에서는 국회의원들이 같은 기간에 단 한 건의 법안도 내지 않았다. 15대엔 1건, 16대와 17대엔 각각 12건, 28건을 내놓았다. 18대엔 51건으로 뛰어올랐으며 19대엔 265건으로 확대됐다. 19대와 20대에는 각각 265건, 416건으로 크게 늘었다.

◆너무 빨리 늘어나는 입법 발의 = 국회의원들의 '입법 발의'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졌다. 13대에 462건의 발의가 이뤄졌고 15대에도 806건의 입법 발의로 300명 기준으로 1인당 3건을 넘지 않았다. 16대엔 1651건으로 1000건대로 올라섰고 8년 만인 18대엔 1만1191건으로 1만 건대로 뛰어올랐다.


이후엔 증가율은 낮아졌으나 4년마다 4만~5만 건이 늘어나면서 건수에서는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갔다. 19대엔 1만5444건, 20대엔 2만1594건이 새롭게 발의됐다. 1만건을 넘어선 지 8년 만에 2만 건대로 올라선 것이다.

의원입법이 가파르게 증가하다보니 부실법안 제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그 때 주로 제시되는 지표가 폐기법안규모와 폐기율이다. 폐기법안은 대체로 의원 임기와 맞물려 폐기되는 경우가 많다. 국회 사무처 핵심관계자는 "임기말에 폐기된 법안은 사실상 통과하기 어려운 법안으로 폐기 결정이나 철회 결정을 내리기 어려워 그냥 묵혀 놓은 것들이 태반"이라고 했다.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 중 폐기된 건수는 지난 20대에 1만4769건이었다. 15대 이후 발의 법안 대비 폐기 법안 비율이 50%를 넘어섰다. 18대엔 폐기율이 60.9%로 60%대를 넘어섰다. 19대와 20대엔 각각 64.1%, 68.4%로 상승했다. 의원이 발의한 10개 법안 중 7개 정도가 폐기되는 상황이다.

◆부실입법? 과잉입법? = 폐기율의 고공행진과 급상승은 부실 입법발의 가능성과 함께 의원들의 입법심사능력 포화 신호로 읽힌다.

입법부의 발의를 문제삼기는 어렵다. 입법부의 의무는 발의, 심사 등 입법활동이 기본이기 때문이다.

제대로된 법안을 냈느냐는 지적도 논리가 탄탄하지는 않다. 법안의 질적 수준을 평가하기가매우 어려워 부실 법안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이유 탓이다. 제정법 발의도 어렵지만 개정법이라고 쉬운 게 아니다. 법은 '토씨 하나'로도 해석이 달라지고 이해관계가 급변한다.

다만 상임위가 책임지고 법안을 심사하고 처리하는 상임위 중심주의가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데다 법안 내용을 모르면서 본회의에 찬성한 의원들의 자괴감 담은 한탄을 들어보면 부실입법과 과잉입법 지적이 의원들의 체감에서 어느 정도 수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왜 의원 발의 급증하나 = 국회의원들의 발의경쟁은 정당, 여론의 평가를 의식한 데서 시작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은 선출직 평가기준에 '발의 건수'가 들어가 있다. 시민단체들의 의원평가에서도 '발의 건수'가 포함돼 있다. '1호 법안' 경쟁은 유권자뿐만 아니라 여론을 의식한 행위로 분석된다.

초선의원이 절반이상인 21대 의원들의 입법 의지가 매우 강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일하는 국회'를 '입법을 많이 하는 국회' '많은 법안을 심사하는 국회'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

의원과 의원실은 다양한 입법전략을 가동하고 있다. 20대 국회에서 상임위 통과후 법사위에서 잡힌 법안 등 폐기된 법안을 '재활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낙선한 의원이 발의했던 법안을 가져오는 경우도 있다. 국회 사무처 등에서 펴낸 20대 국회 입법사례(통과되지 않은)들은 의원들의 입법 경쟁에 좋은 참고서로 활용되고 있다.

이익단체나 지역 민원과 연관된 법안들도 적지 않다. 이 법안들은 '통과'보다는 '입법'에 주안점을 두고 있어 부실입법 가능성이 높다. 이익단체와 지역 관련 입법은 정치자금(후원금)과 재선을 위한 표관리를 위한 핵심전략이다. 의원과 의원실에서 주요하게 관리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대안은? = 국회의원들의 충실한 입법을 위해서는 발의건수를 중심으로 한 평가보다는 '통과비율'과 '폐기비율'을 공개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국회 사무처 핵심관계자는 "국회 사무처에서 주는 상에서는 정량평가를 없앴다"면서 "그러나 여전히 수많은 시민단체 등에서는 발의건수를 주요 평가기준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의정활동상 수상이 의정활동 평가와 연결돼 있다는 여론이 적지 않아 의원실 입장에서도 신경쓸 수밖에 없다"며 "그러나 발의건수보다 폐기율, 통과율을 주요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의원들의 쪼개기 법안(같은 법인데도 조항이 다르다는 이유로 나눠 발의, 발의건수를 늘리는 사례), 토씨 바꾸기 법안(실질적 영향이 없는데도 발의 건수를 늘리기 위해 시도하는 사례) 등에 대한 언론과 시민단체의 꾸준한 감시가 필요하다는 제안도 나온다.

국회와 정당에서의 입법지원시스템 강화 역시 대안 중 하나다. 비슷한 법안에 대해서는 공동발의 방식으로 정당 내부에서 정리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또 부실입법 가능성을 사전에 거르는 단계를 검토해봐야 한다. 국회 사무처 법제실과 예산정책처, 입법조사처에서 입법을 충실하게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분석, 평가하는 활동까지 해줘야 한다는 얘기다. 최근 제기되는 입법조사처의 입법영향평가 확대 주장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국회 사무처 핵심관계자는 "입법을 많이 하는 것을 두고 비판할 것은 아니다"면서도 "좋은 법률을 충실하게 만들려면 충분한 시간을 갖고 검토하고 이를 정당 안에서 뿐만 아니라 국회 입법지원기관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박준규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