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 체계 '확' 바꾸자 ②

전기요금 체계 바로잡으려면 … '연료비 연동제'가 해법

2020-08-19 11:25:14 게재

국제유가 등 원료비 변화를 소매요금에 제때 반영

소비자는 합리적 소비, 공급자는 효율적 생산관리

기형적인 우리나라 전기요금 체계를 바로잡으려면 '연료비 연동제' 도입이 유일한 대안으로 제기된다.

현재 우리나라 전기요금은 일반용을 제외하곤 모두 원가 이하로 책정됐다. 또 정치권이 전기요금을 선거에 이용해 요금인상을 억제해왔다. 이로인해 저렴해진 요금체계는 과소비를 부추겼다.

◆"온실가스 예방에도 기여할 것" =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선 시장기능이 작동돼야 한다. 그 방안이 바로 '연료비 연동제'다.


연료비 연동제란 연료비 변동분을 전기요금에 반영하는 제도다. 말 그대로 원유나 천연가스, 유연탄 등 발전 연료비가 상승하면 전기요금을 올리고, 연료비가 하락하면 전기요금을 내리는 제도다.

연료비 연동제가 도입되면 소비자에게 가격정보를 제때 제공해 합리적인 전기소비를 유도하고, 가격변동 예측이 가능해 사업 위험을 줄일 수 있다. 기업들은 전기요금 예측이 가능해지면 비용조달, 상품가격 결정, 조업조정, 생산량 조절 등 생산관리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

공급자(전기사업자)는 원가비중이 높고 통제 불가능한 연료가격으로 불안정했던 재무위험을 감소시킬 수 있다. 일방적인 손해를 강요받지 않아 재무구조 개선과 신용등급 상승이 기대된다.

적정이윤 보장과 주주이익 제고 등을 위해서도 긍정적이다. 무엇보다 현재 발생한 비용은 현재 세대가 부담함으로써 미래 세대에 책임을 전가하지 않는다는데 의미가 있다.

조성경 명지대 교수는 "전력시장을 시장답게 운영한다는 것을 전제로 전기요금 연료비 연동제가 도입되면 합리적인 소비를 유도해 온실가스 예방에 효과적으로 기여할 것"이라며 "기후변화 문제는 우리사회가 반드시 풀고, 해결해야할 과제다. 이를 위해 가장 좋은 신호 중 하나가 전기요금 체계 변화"라고 말했다.


전력업계 한 관계자도 "연료가격 상승 또는 하락분을 소매요금에 반영함으로써 소비자에게 가격 정보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합리적인 전력소비를 유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업자 또한 재무 부담을 일방적으로 떠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비용조달, 조업조정 등 효율적인 생산관리가 가능하다. 결국 전력시장에 효율성과 안정성을 높여 선순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독일 프랑스 등 37개국 시행 = 전기요금 연료비 연동제의 장점은 이미 해외 여러 국가들의 성공사례를 통해 입증됐다.

한국전력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상위 50개국 중 37개국이 전기요금에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하고 있다. 미국 캐나다 독일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이탈리아 벨기에 덴마크 이스라엘 러시아 브라질 중국 일본 싱가포르 베트남 대만 호주 뉴질랜드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이다.

반면 도입하지 않은 13개 국가는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멕시코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등 자원이 풍부하거나 국가시스템 성숙도가 낮은 국가들이다.

일본은 1996년부터 연료비 연동제를 시행했는데, 당시 유가하락에도 전기요금이 36% 상승하자 연동제 도입 여론이 거셌고, 정부가 이를 수용했다.

조정주기는 3개월간 구입비 이동평균값을 2개월의 시차로 매월 적용하고, 요금청구서를 통해 1개월 전 안내한다. 급격한 요금변동 방지를 위해 조정액 상하한선을 설정하는 등 소비자 안전장치도 마련했다.

우리 정부는 연료비 연동제를 2011년 7월 시행예정이었다. 이를 위해 2008년 제1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 관련 내용도 담았다.

그러나 연평균 두바이유가 2011년 배럴당 105.98달러, 2012년 109.03달러, 2013년 105.25달러 등 고공행진을 지속하자 2014년 5월 연동제를 폐지하기에 이른다. 고유가 시절에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할 경우 전기요금이 기준연도보다 인상된 상태로 시작해야할 상황에 직면하자 시행을 포기한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현재부터 2021년 상반기까지가 전기요금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할 적기다. 2022년 이전에는 예정돼 있는 선거가 없고, 코로나19로 비롯된 저유가 상황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저유가 때 연료비 연동제를 시행해야 기준 요금보다 인하된 가격으로 시작할 수 있어 소비자 저항을 줄일 수 있다.

◆기형적 요금구조, 전력 과소비 줄일 대안 = 한편 '내일신문'이 에너지자립도가 비슷한 국가들의 전력소비·전기요금을 비교분석한 결과 우리나라 전력구조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한국의 2017년 기준 에너지자립도는 19%로 프랑스 55%, 독일 39%, 이탈리아 24%, 벨기에 24%보다 낮지만 1인당 에너지소비량은 가장 많았다. 에너지자립도(에너지생산 ÷ 1차에너지 공급)가 24~25%인 터키 포르투갈 벨기에 이탈리아의 1인당 1차 에너지소비량은 1.83~4.87TOE(석유환산톤) 이었으나, 한국은 5.49TOE에 달했다.

총 전력소비량이 우리나라 두배에 육박하는 일본보다도 1인당 에너지소비량은 한국이 더 많다. 1인당 전력소비량 역시 비교 대상 국가인 프랑스 독일 터키 포르투갈 벨기에 이탈리아 일본 중에서 한국이 제일 높았다.

이들 국가와 비교해 전기요금은 한국이 저렴했다. 비교 국가 중 터키만 한국보다 낮았을 뿐 다른 국가들의 전기요금은 주택용·산업용 모두 높았다. 주택용의 경우 MWh당 한국은 110.4달러인 데 비해 독일 353.3달러, 벨기에 328.7달러, 이탈리아 279.7달러, 포르투갈 267.8달러, 일본 238.9달러, 프랑스 202.4달러에 달했다. OECD 국가 평균은 172.2달러(2018년 기준)였다.

산업용 요금 역시 MWh당 한국은 100.3달러였으나 이탈리아 174.4달러, 일본 160.7달러, 독일 145.4달러 등으로 조사됐다. OECD 국가 평균은 106.5달러였다.

결국 우리나라 전기요금이 적정 수준으로 책정되지 않아 전력소비량이 많은 것으로 분석된다.


["전기요금 체계 '확' 바꾸자" 연재기사]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
이재호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