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 격화에도 금융은 계속 '커플링(동조화)'

2020-09-07 11:57:52 게재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미국과 중국의 지정학적 갈등으로 중국에서의 사업 전략이 어떤 영향을 받았는가?'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최근 글로벌 은행과 보험사, 자산운용사 대표 15명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모두 "공개적으로 말하기 어렵다"고 거부했다고 6일자로 전했다.

이코노미스트지와 인터뷰한 한 은행가는 "이 주제는 민감하다"며 손사래를 쳤다. 또 다른 은행가는 "우리는 트럼프 트윗에 오르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이들은 익명으로는 가능하다고 전제했다.

금융계 거물들의 몸 사림은 그 자체로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는 분석이다. 지금은 과거와는 낯선 환경이다. 미국 정부는 지난 수년 동안 중국에 '외국계 자본에 문호를 개방하라'고 요구했다. 중국은 미적댔다. 하지만 갑자기 역할이 뒤바뀌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글로벌 금융가들이 중국에서 퇴각하기를 원한다. 중국은 이들을 끌어들이려 유혹한다. 중국은 글로벌 금융업계에 광범위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최근 정치와 금융 영역에서 미중 간 단절이 심화됐다. 많은 전문가들은 미국과 중국이 디커플링(탈동조화) 관계라는 데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매일 수조달러를 운용하는 사람들에겐 여전히 커플링(동조화)에 더 가까워 보인다. 올해 상반기 글로벌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의 움직임만 봐도 알 수 있다. 골드만삭스와 모간스탠리는 중국 벤처 증권들의 지배적 지분을 확보했다. HSBC는 중국 벤처 생명보험사 지분 100%를 인수했다. 씨티그룹은 중국에서 기관투자자들을 상대로 영업할 수 있는 '커스터디 라이선스'를 얻었다. 이는 해외 투자자들이 중국 채권이나 주식을 거래할 때 금융자산을 대신 보관·관리해 주는 서비스를 말한다.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중국에서 자사의 뮤추얼펀드를 판매할 수 있는 승인을 얻었고, 뱅가드는 아시아 본부를 상하이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더 눈여겨볼 점은 자본의 흐름이다. 지난해 대략 2000억달러의 해외 자본이 중국 자본시장에 흘러들었다. 올 6월 말 기준 중국 주식과 채권에 대한 외국인 보유액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50%, 28% 늘었다. 물론 일부는 불가피한 견인작용을 반영한다. 모간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지수에 중국이 편입되면서 이를 추종하는 펀드운용사들이 새로운 가중치에 따라 중국 자산에 현금을 배분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모든 상황을 설명하진 못한다. 중국은 외국인들이 자국 시장에 수월하게 진입하도록 각종 조치를 취했다. 게다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전 세계에서 보기 드문 2가지 이점을 제공한다. 국내총생산(GDP) 성장과 플러스 금리다.

이코노미스트지에 따르면 미중 금융관계를 설명하는 데 커플링이 더 적합한 2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중국 자체의 조치다. 중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위용딩이 말한 것처럼 중국은 '연계전략'(linking strategy)을 추구하고 있다. 외국 기업, 금융사들과 더 많은 연계점들을 만들려고 한다. 중국 정부는 2019년말부터 자산운용사와 증권사, 생명보험사에 대한 외국인 지분 제한을 해제했다. 다소 늦기는 했지만 마스터카드와 페이팔 등이 결제업에 진출하는 것을 허용했다. 또 외국계 신용평가사들의 활동 범위를 넓혔다.

꼭 연계전략이 아니라 해도, 중국은 금융시스템을 보다 광범위하게 개방할 다양한 이유가 있다. 올해의 경우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다르긴 하지만, 지난 10년 간 중국의 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폭은 점차 줄어들었다. 자본수지를 통해 보다 많은 자본을 끌어들여야 하는 상황이다. 동시에 개혁 성향 관료들은 금융 시스템에 더 많은 외인들이 참여하길 원한다. 인민은행 전 총재인 저우샤오촨은 "외국과의 경쟁이 중국 제조업을 세계적 수준으로 만들었듯, 금융산업도 외국과 경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표적 인물이다. 규제당국 역시 기업이 은행 대출 의존도를 줄이고 채권과 주식을 발행해 자본을 확충하길 원한다.

중국의 규제 완화는 2번째 요소와 맞물린다. 외국 금융기관들의 이해관계다. 중국 시장은 무시하기엔 너무 광활하다. 금융컨설팅 기업 '올리버 와이만'에 따르면 중국 내 비전문적 개인 투자자들의 투자가능 재산은 2018년 24조달러에서 2023년 41조달러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게다가 현재 중국엔 정교한 글로벌 마인드를 가진 토종 자산운용사들이 거의 없다.

물론 '중국 경제 규모가 곧바로 사업기회로 이어질 것'이라고 가정할 만큼 외국 투자기관들이 어리석지는 않다. 2000년대 초 중국은 상업은행 분야를 외국인에게 개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외국계 은행의 시장 점유율은 늘 미미했다. 그나마 시간이 지나면서 줄어들어 현재는 중국 금융자산의 약 1% 수준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외국 금융기관은 단역에 그쳤다.

하지만 외국계 금융기관들은 새로 개방된 부문에서 상당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전 세계 글로벌 은행 가운데 중국공상은행만큼 막대한 예금을 보유한 곳은 없다. 또 공상은행은 1만5700여곳의 지점망을 자랑한다. 하지만 투자은행과 자산운용에서의 성공은 몸집의 크기보다는 그간의 경험과 노하우가 더 중요하다.

전 세계 주요 금융기관들을 대변하는 아시아증권산업금융시장협회(ASIFMA) 대표 마크 오스틴은 "어떤 투자자문사가 국가간 인수합병을 조직하는 데 더 도움이 되나, 어떤 자산운용사가 환율 익스포저를 헤지하기 위해 적당한 금리스와프를 제공할 수 있나 등의 부문은 외국 금융기관들이 경쟁력을 가졌다"고 말했다.

물론 중국이 쉽사리 안방시장을 내줄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잠재적으로 문제가 불거질 기미도 보인다. 중국은 블랙록에 펀드운용과 관련한 승인을 내주면서 한 가지 조건을 붙였다. 인터넷보안법을 준수해달라는 요청이다. 블랙록은 고객 데이터를 중국 내에 보관해야 하며 중국 당국은 이에 대한 접근을 요구할 수 있다. 때문에 블랙록은 중국 시스템과 글로벌 시스템을 분리해야 할 전망이다.

외국계 금융기관들은 또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중국 기관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 한 외국계 은행가는 "중국은 시장을 완전히 개방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가 중국 경쟁자들을 짓밟는 것을 두고보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 국영기업들은 수지 맞는 거래의 경우 자국 은행에 몰아줄 수 있다. 중국 정부는 '항공모함급' 투자은행을 만들기 위해 물밑에서 은행 간 합병을 계획할 수도 있다. 또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은 자사의 금융상품을 중국 은행과 기술 플랫폼을 거쳐 판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상하이 소재 투자운용컨설팅사 '지밴'의 챈털 그린드슬레브는 "긴 안목으로 중국에 자본을 투자하려는 측과 인내심이 부족한 측 사이에서 중국 시장에 대한 의견이 갈릴 것이다. 3년 내 수익을 거둬야 한다면 중국 시장엔 진입하지 않는 게 좋다"고 말했다. 그는 "JP모간체이스의 경우 벤처 자산운용사를 설립하면서 중국 파트너기관을 인수하려 한다. 적정가치의 50%를 프리미엄으로 얹어 약 10억달러에 사들이려 한다. 이는 값비싼 것이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계의 거물인 제이미 다이먼이 중국 시장에 어떤 가중치를 두고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다이먼은 진짜 사업을 구축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미중 간 지정학적 갈등은 글로벌 금융사들의 사업 결정에 먹구름을 드리운다. 중국에서 활동하는 미국계 은행의 한 CEO는 "글로벌 기업들이 우리에게 낙관적, 현실적, 비관적 시나리오를 각각 작성해달라고 요청한다"며 "상황이 좋아질 것으로 생각하는 건 무의미하기 때문에 웃고 말았다. 이는 이진법이다. 우리가 중국에서 계속 사업할 수 있느냐 아니면 그렇지 않느냐다"라고 말했다. 현재까지 상황은 중국에 잔류하겠다는 측에 무게감이 실려 있다.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각종 금융 조치들이 걸림돌이 되긴 했지만 외국계 금융기관들을 아예 단념시키지는 못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연방정부 연금이 중국 주식에 투자하는 것을 막았다. 또 중국 기업들을 미국 증시에서 퇴출시킬 수 있다고 위협했다. 그리고 홍콩과 신장 문제로 중국 관료들을 제재 대상에 올렸다. 하지만 세 가지 조치 모두, 대국적으로 봤을 때 상당히 온건하다. 미 정부 연금에 편입된 중국 주식은 미국 연금 자산의 3%에 불과하다. 중국 기업들은 2022년까지 미 증시 퇴출을 모면할 수 있다. 그리고 이미 타협안을 제안했다. 미국 회계감사 기관들이 중국 기업의 회계장부에 더 깊이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반면 월가에 상장된 중국 기업의 가치는 올해 더 늘었다. 제재 역시 중국인 개인별로는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하지만 중국 은행 전체를 대상으로 하진 않았다. 그랬다면 더욱 치명적이었을 것이다.

미국이 금융과 관련해 중국에 강도 높은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산업 분야에 미치는 파장과는 다르다. 공장은 대규모 고정투자를 해야 한다. 또 신중하게 공급망을 설계해야 한다. 반면 채권이나 주식 투자의 경우, 중국이 투자자들에게 시장에서 자본을 빼서 나가도록 허용하는 한 단시간 내 조정하기가 쉽다. 또 중국에서 증권사나 자산운용사를 설립한 기업들의 투자 규모는 글로벌 수준과 비교하면 미미하다. UBS가 지배하는 중국 증권사는 2019년 말 기준 50억위안(7억3000만달러)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 내 외국인 소유 증권사 중 가장 큰 규모지만, UBS의 글로벌 투자금융 자산의 고작 0.2%에 불과하다.

금융 디커플링을 즉각 시행하는 방법은 중국을 달러결제 시스템에서 내쫓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벨기에 소재 '스위프트'(국제은행간 통신협정)를 압박해 목적을 이룰 수 있다. 아니면 미국에서 달러 결제를 청산하는 거대 은행들에게 중국 은행의 업무를 처리하지 말라고 지시할 수도 있다.

중국은 한때 생각도 못했던 그런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에 놀라 최근 수개월 간 이에 대한 논의를 벌였다. 중국은 달러 대안으로 위안화 사용을 늘리는 방안, 스위프트를 대신할 자국 결제네트워크를 발전시키는 방안 등을 논의했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큰 도움이 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자본통제라는 한계를 지닌 위안화는 여전히 글로벌 금융계에선 약골로 인식된다. 중국이 키우는 스위프트의 대안 시스템은 아직까진 광범위한 고객을 유치하지 못했다.

미국 입장에서 가장 거대한 제약은 자국이 입을 피해 규모다. 중국을 달러시스템에서 배제하는 것은 중국 은행뿐 아니라 중국에서 활동하는 기업들에게도 피해를 준다. 이들 기업은 전 세계 수출의 1/10 이상을 차지한다. 그렇게 되면 전 세계 무역은 붕괴하게 된다. 공급망은 해체되고 글로벌 경기침체를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미국 정부가 그같은 후폭풍을 고심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중국의 연계전략이 성공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맥쿼리그룹 중국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래리 후는 "중국의 유일한 옵션은 시장을 더욱 개방하는 것"이라며 "중국으로선 상대방이 잃을 게 더 많은 상황으로 몰고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이상한 일이지만, 이는 중국에서 활동하는 외국계 금융기관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이라고 전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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