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미중 전선 … 희토류를 잡아라

2020-09-16 11:30:47 게재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미국 캘리포니아주 모하비 사막에 있는 마운틴패스 광산에서 희토류를 실어나르던 트럭들의 거대한 굉음이 사라진 지 5년이 지났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15일자에 따르면, 이곳에서 사업을 하던 미국 거대 희토류업체인 '몰리코프'는 2015년 17억달러 빚의 무게를 못 이기고 무너졌다. 몰리코프 파산으로 투자자들은 큰 피해를 입었고 미국은 17개 희토류 거의 전체를 중국에 의존하게 됐다. 희토류는 풍력터빈과 전기자동차, F-35전투기 등 대부분의 하이테크 제품에 쓰이는 재료다.

미중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으면서 미 정부가 마운틴패스 광산을 부활시키려 애쓰고 있다. 1980년대까지 세계 제1의 희토류 생산지였던 곳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와중에 공급망 차질까지 벌어지면서 미국 등 전 세계 국가들은 한 국가 또는 한 기업에 원자재와 상품 공급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데 다른 리스크를 절감하고 있다.


미 국방부는 'MP머티리얼즈'에 자금을 대기로 결정했다. 미국에 중희토류(heavy rare earths) 처리시설을 설계하기 위해서다. MP머티리얼즈는 사모펀드가 소유한 기업으로, 2017년 마운틴패스 광산을 2050만달러에 매입했다. 그리고 땅파기를 재개했다.

미 국방부는 텍사스주에 또 다른 희토류 프로젝트에도 자금을 대고 있다. 호주 희토류업체 '리나스'와 합작한 것으로, 중국이 희토류 공급을 막으면서 미국 국방과 다른 산업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시작된 사업이다. 올해 7월 미 국방부는 텍사스주 소재 '어번마이닝컴퍼니'에도 2900만달러를 지원했다. 이 업체는 폐기 전자제품을 재활용해 전기차 등에 쓰이는 희토류자석을 만드는 곳이다.

중국은 올해 7월 대만에 무기를 판매한 록히드마틴에 제재를 가하겠다고 위협했다. 중국의 희토류 공급 중단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중국은 전 세계 채굴되는 희토류 공급의 4/5를 통제한다. 강력한 희토류자석 제조 비중은 더 크다. 희토류는 한 해 130억달러 규모의 산업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이 산업 지원에 공적자금 2억900만달러를 책정했다. 여기엔 올해 MP머티리얼즈에 대한 지원자금도 포함됐다.

MP머티리얼즈 CEO 제임스 리틴스키는 "우리는 글로벌 공급망에서 하나가 빠지면 전체가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배웠다"며 "희토류는 하이테크 분야의 수백만개 미래 일자리에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희토류 산업은 국내총생산(GDP) 수조달러 상품"이라며 "만약 우리가 서구 세계에 희토류 공급망을 구축하지 않는다면, 중국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국의 희토류 지배를 걱정하는 건 미국뿐 아니다. 유럽연합 위원회(EC)도 희토류 전략을 짜고 있다. 유럽 역내 희토류 산업계가 중국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산업계 협력은 물론 새로운 희토류 업체에 대한 지속가능한 재정 지원 등을 고민중이다.

호주는 전 세계 희토류 매장량의 1/6 정도를 보유하고 있다. 미 정부와 힘을 합쳐 새로운 광산을 찾고 신규 시장진입자를 지원하고 있다. 그리고 러시아는 15억달러 희토류 계획을 공개했다. 관련 투자자들에게 세제 혜택과 저렴한 대출을 제공할 계획이다.

몰리코프 파산으로 큰 피해를 입었던 투자자들은 다시 한 번 군침을 흘리고 있다. MP머티리얼즈는 올해말 특수목적회사인 포트리스밸류애퀴지션코프를 통해 뉴욕증시에 상장할 계획이다. 5억달러 자금을 지원받는 게 목표다. 포트리스코프는 일본 소프트뱅크가 소유한 포트리스인베스트먼트그룹 자회사의 지원을 받고 있다. 그와 별개로 미국과 호주 등지의 수많은 소규모 희토류 채굴업자와 처리업자들이 네오디뮴과 프라세오디뮴 등의 희토류를 생산하기 위해 수십억달러 자금 모집 프로젝트를 추진중이다.

전문가들은 희토류 부문을 둘러싼 지나친 투자 열풍이 신규진입자가 마주칠 거대한 도전과제를 과소평가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중국은 희토류 채굴은 물론 희토류자석 제조, 이를 활용한 전기차 제조조립까지 희토류 전 분야에 걸친 공급망을 지배하고 있다.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대 퍼스-USA아시아센터 국장인 제프리 윌슨은 "이런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 리스크는 엄청나다"며 "만약 희토류에 투자하고자 한다면, 시장 전반에 켜진 경고등을 마주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희토류 산업은 지저분한 데다 환경적으로 비친화적인 사업으로 악명이 높다. 기술적 복잡성도 매우 높다. 서구에선 관련 기술의 전문가가 크게 부족하다. 중국 국영 기업들이 가격 결정권을 쥔 독점시장이기도 하다. 중국이 2010년 일본에 대한 희토류 수출량을 제한하자, 희토류 가격이 곧바로 4배 뛰었다. 서구 국가들이 희토류와 관련해 중국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를 새삼 확인한 계기였다.

윌슨 국장은 "실현가능한 비중국 공급망을 구축하는 건 수년이 걸린다. 게다가 각국 정부의 막대한 지원은 물론 미국과 유럽, 일본 거대 기업들의 국제적인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국영기업들은 '사우디 전략'을 취할 수 있다고 본다"며 "시장에 희토류 물량을 풀어 가격을 급락시킨 뒤 새로운 진입자들을 고사시키고, 이후 다시 독점을 강화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다지 희귀하지는 않은

희토류는 현대 사회의 필수 재료가 됐다. 주기표상 15개 란탄족원소에다 스칸듐과 이트륨 2개의 관련 원소를 포함한다. 전기차, 하이브리드차의 90% 이상이 희토류 기반 자석을 모터에 장착한다. F-35 전투기 1대엔 450파운드(약 204㎏)의 희토류 원소가 들어간다.

이름과 달리 희토류는 상대적으로 풍부하다. 하지만 넓은 지역에 산재한다. 채굴 수익성이 떨어진다. 채굴 광물을 분리해 상업적으로 판매가능한 제품으로 만드는 과정은 거대한 기술적, 환경적 도전과제다. 신규 진입자들이 고생하는 이유다.

호주 희토류업체 리나스의 CEO 아만다 라카즈는 "중국을 빼고 전문기술을 갖고 있는 나라가 거의 없다. 우리 회사는 지난 20년 동안 희토류 생산량을 성공적으로 늘리고 희토류 산화물을 분리하는 기술을 가진 유일한 기업이었다"고 자평했다. 그는 "교본이나 설명서를 보고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우리의 자체적인 지적재산권은 보유자산 중 가장 가치가 높다"고 덧붙였다.

리나스는 현재 호주 서부에 위치한 마운트웰드 광산에서 희토류를 채굴한다. 이 곳은 전 세계 가장 풍부한 희토류가 매장된 곳으로 꼽힌다. 이곳에서 캔 희토류는 10억호주달러(7억3000만달러) 규모의 말레이시아 공장에 수출한다. 희토류자석에 가장 널리 쓰이는 핵심 원소인 네오디뮴과 프라세오디뮴을 추출 처리하기 위해서다.

올해 7월 리나스는 미 국방부로부터 종잣돈을 지원 받았다. 미국 벤처합작사인 '블루라인'과 함께 텍사스에 희토류 처리 공장을 설계하기 위해서다. 이 공장이 완공되면 중희토류인 디스프로슘과 테르븀을 처리하게 될 전망이다. 현재는 중국에서만 가능한 공정이다.

리나스의 라카즈 CEO는 "미국은 방위산업을 통해 산업을 창출하거나 공급망을 짠 성공적인 역사를 가진 나라"라고 말했다. 그는 추가적인 정부 지원금을 희망했다. 텍사스 공장의 설계뿐 아니라 직접 건설하고픈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희토류 산업계 안팎의 많은 전문가들은 중국 밖에 희토류 공급망을 짜기 위해서는 서구 정부들의 공적자금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지적한다. 리나스는 그간 중국 경쟁기업들과 싸우느라 고전했다. 지난 6년 동안 이익이 난 건 고작 두 해에 불과했다. 리나스는 2016년 국영 일본석유가스금속공사(JOGMEC)로부터 긴급자금을 지원받았다. 이후 계속 현금을 소진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환경법을 준수하기 위한 새로운 시설에 자금을 대느라 지난달엔 주주들로부터 4억2500만호주달러(약 2억9300만달러)를 확충했다.

호주 시드니 소재 증권사인 오드 미네트의 애널리스트 딜런 켈리는 "중국 밖에 희토류 공급망을 짜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자유시장 해법이 통하지 않는다"며 "정부가 상당한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시장 진입장벽은 매우 높다. 10년이 걸릴 프로젝트인 데다 종잣돈으로 10억달러 이상이 든다. 그렇다고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과거 자본시장에선 관련기업 파산 등으로 투자자 현금을 몽땅 소진하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전략적 비전

중국은 1990년 희토류를 전략광물로 선언했다. 10년 뒤 장쩌민 당시 주석은 내몽고 자치구 바오터우의 한 광산을 방문한 자리에서 "중국의 임무는 희토류 채굴과 산업적 응용을 증진하고 풍부한 자원의 이점을 경제적 이득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하자 시진핑 주석은 장시성 소재 희토류자석 제조기업을 방문해 노동자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중국 희토류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의 약 80%를 차지한다. 1990년 27%에서 껑충 뛰었다. 중국은 처음부터 생산과 수출 쿼터를 시행해 희토류 부문의 글로벌 리더로 자리매김했다. 이는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발돋움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젠 '중국제조2025' 전략을 통해 희토류 채굴과 희토류자석 제조, 하이테크 제조업의 공급망을 통합하려 시도하고 있다.

호주 커틴대 교수인 더들리 킹스노스는 "중국은 2025년을 목표로 전 세계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의 50%를 생산하려고 한다"며 "그 목표가 성공하면 유럽과 북미, 아시아의 자동차산업은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킹스노스 교수는 중국이 희토류와 희토류자석의 수출을 제한하면서 전기차와 기타 하이테크제품을 생산하는 전 세계의 능력을 저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잠재적으로 록히드마틴이나 기타 방산기업에 대한 제재보다 더 큰 위협이 된다. 미국 군수업체들은 향후 수년간 사용할 수 있는 희토류를 축적한 것으로 파악된다.

북대서양조약기고(NATO)에 희토류 관련 자문을 맡은 그는 "우리의 아들, 손자 세대가 그 때문에 일자리를 잃게 되면 국가의 GDP가 위축된다"며 "그렇게 되면 국방에 써야 할 돈이 줄어들게 된다"고 경고했다.

시대를 앞섰으나

MP머티리얼즈 본부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있다. 리틴스키 CEO는 마운틴패스 광산에서 미국 희토류 산업의 부흥을 꾀하고 있다. 시카고 소재 헤지펀드 JHL캐피털 창업자가 2017년 미국 투자그룹 QVT, 상하이에 상장된 셩허리소스와 힘을 합쳐 이 광산을 사들였다.

이들은 1년 뒤 채굴을 재개했다. 하지만 처리공정을 위해 채굴한 희토류를 중국에 보내야 했다. MP머티리얼즈의 연 매출은 약 7300만달러였다. 이 기업은 올해 말 예정된 증시 상장으로 자본을 확충하면 2022년 내로 캘리포니아 광산에 버려진 희토류 처리 공장을 재가동해 희토류와 희토류자석을 생산할 능력을 갖출 계획이라고 밝혔다. 과거 이 공장을 괴롭혔던 고질적인 기술적 문제는 현재 해소됐다고 주장했다.

리틴스키 CEO는 "몰리코프는 야심찬 비전을 가졌지만 계획실행에선 젬병이었다"며 "MP머티리얼즈의 임무는 미국에 희토류 공급망을 구축해 일자리 창출은 물론 국가안보 증진과 녹색기술 확산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몰리코프는 시대를 앞서갔으나 전기차 호황 국면에서 이득을 얻지는 못했다"며 "전기차 부문이 10년 내 네오디뮴과 프라세오디뮴의 현존 공급량을 전량 소비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MP머티리얼즈의 사업 전망에 회의적이다. 향후 10년 동안 희토류 부문의 또 다른 문제가 불거져 투자환경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

쓰리컨설팅 대표인 제임스 케네디는 "마운틴패스 광산의 지구화학적 매장량을 보면 MP머티리얼즈가 테르븀이나 디스프로슘 등 증희토류를 상업적 규모로 생산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 재료들은 F-35 전투기나 드론 등 군사적 용도로 쓰인다. 게다가 중국 기업인 셩허리소스가 MP머티리얼즈의 지분 9.9%를 갖고 있다. 케네디 대표는 "정치적 관점에서 미 정부가 중국 밖에서 희토류 공급망을 짜겠다고 한 것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올해 4월 미 국방부는 MP머티리얼즈와 리나스에 공적자금을 대겠다는 애초의 계획을 보류했다. 미 공화당 텍사스주 상원의원 테드 크루즈가 이끄는 의원들이 '오직 미국 소유 기업의 희토류 프로젝트만 지원해야 한다'는 요청을 받아들이면서다.

MP머티리얼즈는 전직 미 합참의장인 리처드 마이어스가 이사회에 합류한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그같은 우려엔 근거가 없다"고 항변했다. 이어 "조만간 뉴욕증시에 상장될 기업엔 중국을 포함한 그 어떤 외국기업도 자유롭게 지분에 투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미중 지정학적 갈등으로 십자포화를 맞을 수 있다.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대 윌슨 국장은 "MP머티리얼즈가 맞게 될 정치적 타격은 사실 중요치 않다. 중요한 건 미 국방부가 희토류 공급망을 어떻게 중국과 분리할 수 있는가, 이를 위한 대규모 기술적 연구에 자금을 댈 수 있는가, 그와 관련된 모든 정보가 중국 경쟁기업에 흘러들어가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거대한 협력

전문가들은 '미국이 하이테크 제품을 구동케 하는 희토류, 희토류자석의 비중국 공급망을 짜려 한다면 국제적 협력이 가장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희토류 기업 CEO들은 '서구 국가들의 우선순위가 단일 국가, 단일 기업에 의존하는 것을 탈피하기 위한 공급망을 짜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비용 낮추기에만 쏠려 있다'고 불만을 드러낸다.

텍사스미네랄리소스코프의 CEO인 앤서니 마르케제는 "대부분 기업들은 다른 원자재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분량의 희토류가 필요하다. 그리고 희토류가 사업에 필수적이라고 해도, 조달 결정은 비용을 우선순위에 둔 낮은 직급의 관리자들이 내린다. 보다 전략적인 관점을 취하는 CEO들이 희토류 결정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기업은 텍사스에서 희토류 광산과 리튬 광산을 개발하려고 한다.

그는 "미국의 희토류 공급망을 실현가능하게 하려면 공급망의 가장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마음가짐이 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호주 희토류기업 리나스는 일본으로부터 이런 형태의 혜택을 입었다. 일본은 저렴한 것보다 공급망 안보를 우선순위에 뒀다. 중국이 2010년 희토류 수출쿼터를 줄인 데 대해 고도의 경각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희토류 전문가들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 기업들은 희토류 조달과 관련해 전략적인 입장을 취하길 꺼려왔다.

호주 커틴대 킹스노스 교수는 "중국은 점진적으로 희토류에 대한 수직 공급망을 장악하고 있다"며 "서구 자동차산업계와 하이테크 제조업계, 정부들이 협력해 희토류 구매력을 높이고 희토류 프로세스나 다운스트림 활동에 대한 투자에 집중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중국 경쟁기업들로부터 거센 공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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