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끼 먹는 밀, 자급률은 1.2% … 국수 공급도 버겁다

2020-09-17 11:04:37 게재

밀 품종 부족 … 국산은 대부분 국수용, 빵에 쓰는 밀은 수입

지난해 수입 더 늘어, 가공·소비분야 수입밀과 가격 차이 커

코로나19 이후 세계 각 농업당국이 식량자급을 서두르고 있다. 물자의 이동이 제한되면서 멀지 않은 미래에 식량전쟁이 벌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2007년 국제 식량가격이 폭등(애그리플레이션)한 이후 최고의 경계 태세다.
아이쿱생협이 2018년 국회에서 연 행사에서 우리밀 생산자와 소비자들이 대형 우리밀컵라면을 우리밀 알곡으로 채우고 있다. 사진 국산밀산업협회 제공


필리핀은 이미 1970년 쌀 생산대국에서 2000년대 이후 생산기반이 급속히 상실돼 애그리플레이션 시기 식량폭동을 경험했다. 이후 쌀 자급률을 90%선으로 회복시켰지만 코로나19 이후 다시 식량위기를 겪으면서 식량자급을 농정의 최우선으로 내세웠다. 이집트는 1960년대 미국의 원조에 의지해 식량자급률이 급격히 하락했고, 애그리플레이션 시기 식량폭동 경험 이후 밀 자급률을 50% 수준으로 회복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식량자급에 적신호가 켜졌다. 특히 밀 자급률은 위기 상황이다. 우리 국민은 1인당 1년(2018년 기준)에 쌀 61.0㎏, 밀 32.2㎏를 소비하고 있다. 하루 두끼는 쌀, 한끼는 밀을 섭취하는 셈이다. 하지만 밀 자급률은 1.2%다. 우리 국민이 매일 먹는 밀 음식의 98.8%는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정부와 밀생산농가는 국산밀 자급률을 9.9%까지 높인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2018년 12월 국산밀 생산을 늘리기 위해 마련한 밀산업 중장기 발전계획을 수립했다. 전두환정권 때 중단된 국산밀의 정부수매를 35년 만에 부활한 것이다. 이같은 발전계획을 세운 다음해인 2019년 국회는 밀산업육성법을 제정했다. 정부와 국회가 밀산업에 주력한 2019년 국산밀 생산은 1만1000톤 감소한 1만5000톤에 그쳤다. 같은 기간 식용밀은 240만5000톤 수입됐다. 2018년과 비교해 7만4000톤 증가한 양이다. 지난해 밀 자급률은 1%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김준규 국산밀산업협회 상임이사는 "정부는 국내 절대 부족 농산물로 밀과 콩과 참깨를 들고 있지만 콩 자급률은 25.4%, 참깨 자급률은 15%"라며 "밀 자급률은 1.2%에 불과한데 밀 원산지 표시 의무화, 국산밀 의무자조금제도 도입 등을 통해 자급률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빵으로 사용한 밀 국산품종 부족 = 국회 서삼석 의원과 위성곤 의원이 16일 주최한 식량자급률 제고를 위한 토론회에서도 밀 자급률 문제가 심각하게 논의됐다. 2018년 기준 국내 식량자급률은 쌀(97.3), 보리쌀(32.6), 밀(1.2), 옥수수(3.3), 콩(25.4) 등이다. 최근 40년간 곡물 공급량은 2.2배 증가한 반면 수입량은 7.8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과정에서 밀·콩은 식량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에도 불구하고 국내기반은 점차 취약해지고 있다. 밀은 제2의 주식이지만 국내 밀 산업은 생산·유통·소비 등 가치 사슬 전반에 걸쳐 인프라가 미비한 수준이다. 특히 콩의 경우 논콩을 중심으로 재배면적과 생산이 증가 추세이지만 수입산과의 가격차 등으로 소비 확대에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국내산 자급률을 높이려는 시도는 밀과 콩에 집중되고 있다.

이기우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수급이사는 이날 토론회에서 국산밀 생산을 위한 방안으로 식용도에 맞는 고품질 품종 개발과 품질 관리체계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이 이사에 따르면 국내 개발 품종(30개) 대부분이 국수용이다. 빵으로 사용하는 밀은 품종이 부족하고 기후·재배환경 등에 따른 품질(단백질 함량) 편차가 커 재배 안전성이 낮다. 이 이사는 "빵과 라면 등 국산밀제품의 품질 개선을 통한 수요 확대를 위해 단백질 함량과 재배 안전성이 높은 경질밀 품종 육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세계각국 식량자급 목표치 상향, 우리는 밀·콩이 관건 = 2007~2008년 애그리플레이션을 계기로 주요 국가들은 중장기적인 식량자급 목표치를 설정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2020년까지 식량자급률 95% 달성을 목표치로 내세웠다. 일본은 2030년까지 45%, 싱가포르는 2030년까지 30%까지(현재 10% 이하) 올린다는 계획이다. 세계식량기구(FAO) 세계무역기구(WTO) 등 주요 국제기구는 코로나19 발생으로 인한 이동 제한 조치 등이 식량 부족 사태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이미 경고했다.

이같은 경고에 따라 국내에서는 밀 등의 자급률 제고를 위한 다양한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농업계는 밀자급률이 바닥이었다가 10%대로 올린 일본의 사례를 주목하고 있다. 일본은 수입밀과 국산밀과의 생산비 격차를 정부가 지원해 1970년대 중반 4%까지 하락했던 밀 자급률이 2010년대 들어 10%대로 올랐고, 2018년 기준 12%를 기록했다. 생우동면의 경우 국산밀 시장점유율이 90%를 넘어서는 등 특정 부분에서는 수입밀을 압도하고 있다. 1990년부터 2018년까지 일본 경영체 당 평균 밀 경작면적은 1.31㏊에서 7.83㏊로 크게 늘었다.

박수진 농림축산식품부 식량정책관은 "밀, 콩 등 주요 식용 곡물의 국내 생산 기반 확충, 비축 확대 등을 사회적 위험관리 측면에서 검토하고 있다"며 "종자 개발 등을 통해 밀산업의 경쟁력을 키우는데 주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생산 지원보다는 종자개발과 가공 소비 분야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무진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몇년 전 밀 생산이 5%대로 올랐을 때 가격 폭락 등이 발생했음을 상기해 본다면 밀 자급은 생산적 측면의 지원만으로는 불가능하다고 판단된다"며 "우선 종자 개발이 시급하고, 그에 맞는 공급이 진행되지 않는 한 우리밀 수요는 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가공과 소비분야에서 발생하는 우리밀과 수입밀과의 가격 차이에 대한 지원이 마련돼야 한다. 이를 통해 밀가격이 안정되면 생산은 증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성배 기자 sb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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