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국민의힘 '집토끼'의 유혹

2020-10-27 13:58:51 게재
제1야당 국민의힘이 '와신상담'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총선참패로 예고된 일이지만 힘든 만큼 시간이 더디게 가는 감각은 어쩔 수 없다.

21대 국회 원 구성부터 시작해서 법안·예산처리, 국정감사 무엇 하나 뜻대로 되는 것이 없다. 협상력은 없고 추진력만 있는 여당, 피감기관의 일개 장관이 국회의원들을 조롱하는 현실 앞에서 무력감이 쌓여간다.

새 지도부는 새 정강정책과 당명·당색, 호남 끌어안기, 새 경제정책 화두 등을 던지며 변화를 도모했다. 그러나 한동안 꿈틀대던 지지율이 식어가자 내년 보궐선거를 앞두고 내분 조짐마저 엿보인다.

지난해 함께 태극기를 흔들었던 '전통 지지층'의 대접도 살갑지 않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 추도식을 찾았다가 일부 참석자들로부터 '빨갱이' '보수를 버리면 뭐로 할 거냐'는 등의 비난을 받았다.

이런 와중에 당 안팎 일각에서 '회군'론에 솔깃해 하는 모습이 보인다. 기존 지지층을 외면하지 말고 먼저 결집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 고참급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중도를 향한 몸부림보다는 35대 30의 구도에서 아군 35%를 묶어 놓고 중도로 나가야 한다" "죽도 밥도 아닌 중도 좌클릭과 무기력한 원내투쟁으로 집토끼도 달아나버리는 우를 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전통 지지층 결집 전략을 구사해 당을 참패로 이끌었던 인물이다.

20대총선 이후 보수정당은 집토끼를 수없이 품었고 그때마다 패배했다. 유권자 지형의 무거운 변화를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김대중·노무현정부 당시 청소년·청년기를 보낸 지금의 2050세대에 주목한다. 진보정부 10년 동안 탈권위·탈이념·탈기득권 기조 속에서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경험했던 이들이 10여년 동안 사회 주력으로 떠올랐다. 반면 권위주의 문화에 익숙했던 당시 5060세대는 상대적으로 영향력이 낮아지고 있다.

이 사실은 숫자로 확인이 된다.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 월간통계에 따르면 새누리당은 20대 총선 전인 2016년 1월까지만 해도 40~60대 지지율이 모두 더불어민주당을 앞섰다. 20~30대 지지도는 열세였지만 격차는 10%p 이내였다.

총선패배와 탄핵정국을 거친 2017년 1월에는 20~40대 지지율이 한 자릿수로 쪼그라들었다. 50대 지지율(15%)는 민주당 (30%) 절반으로 낮아졌다. 60대 이상 지지층만이 26%로 민주당(13%)을 앞서며 버팀목이 돼줬다.

최근까지도 이 같은 지형변화는 이어지고 있다. 올해 9월 민주당의 세대별 지지도는 60대 이상을 제외하고 모두 국민의힘의 2~3배 수준이다. 집토끼 걱정은 세대변화에 비하면 사소한 문제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중도를 향한 몸부림으로는 모자라다. 국민의힘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보다 명확한 변화의 신호를 국민에게 전해야 한다.
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
이재걸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