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정헌 미술가

"자신의 삶 얘기함으로써 긍지 가진다"

2020-10-28 12:15:18 게재

청년 예술가, 노인 이야기를 작품으로

전시 11월 4~14일 시민청갤러리

노인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경청해 청년 예술가들이 작품으로 풀어내는 이야기청 프로젝트 '사사이람'이 11월 4일부터 14일까지 서울시청 지하 시민청갤러리에서 열린다. 2017년부터 활동을 시작, 성북구 청년 예술가들과 함께했던 이야기청은 올해 서울시 시민참여예산 (시정협치부문) 사업에 선정돼 성북구 송파구 영등포구 등 3개 지역에서 30여명의 청년 예술가들이 150여명의 노인들을 만나 예술작업을 펼쳐왔다. 내일신문은 27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이야기청을 처음 구상한 김정헌 미술가(4.16재단 이사장, 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를 만나 이야기청의 의미와 나아갈 방향에 대해 들었다. <편집자주>

김정헌 미술가. 사진 이의종


■ 이야기청은 어떻게 시작했나.

'젊은 예술가들이 노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예술작업으로 전환시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성북구에 기반을 둔 문화활동가들에게 얘기했고 호응을 얻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한창훈의 연작소설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에는 '쿠니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집'이 나온다. 노인들이 쿠니를 찾아와 자신의 사정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한다. 쿠니는 아무 말 하지 않고 들어주기만 한다. 단지 그렇게 함으로써 노인들의 생활이 달라진다.

독일 철학자 한병철은 미하엘 엔데의 '모모'를 예로 들면서 경청의 중요성을 말한다. 모모는 시간을 중시하는 동네 사람들의 얘기를 잘 들어준다. 모모가 이야기를 경청함으로써 동네 사람들은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살게 된다.

■ 자신의 삶을 말한다는 것은 노인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2010년부터 4년 동안 충북 제천에 폐교를 얻어 '이야기학교'를 운영했다. 주민들이 100여명 되는데 노인들이 많았다. 젊은 문화활동가들이 문화사랑방을 만들어주고 주민들과 친하게 지냈다. 노인들이 젊은 활동가들에게 자식 얘기부터 살아온 이런저런 얘기들을 들려줬다. 자신의 삶을 얘기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보람 있게 느끼고 긍지를 갖게 되는 것을 봤다. 요즘엔 노인들이 자신의 삶을 얘기할 기회를 박탈당했다.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하면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고 그것을 통해 긍지를 갖게 될 것이라 믿는다.

■ 청년 예술가들에게는 노인들과의 작업이 어떤 도움이 될까.

남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이는 훈련이 필요하다. 우리의 공동체적 삶에 대해, 사회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끈기와 인내를 갖고 듣는 연습을 해야 한다. 발화자는 물론이고 듣는 사람도 들음으로써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자세로 임한다면 이를 예술적 창조력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

■ 이와 같은 작업은 사회적으로 어떤 가치가 있을까.

최소한의 생활을 도와주는 복지도 있겠지만 노인들에게 문화복지도 필요하다. 문화복지를 넓히는 차원에서 이런 작업이 상당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사회에서 고립돼 단순히 생명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차원이 아니라 문화적 삶을 살아가게 되는 거다.

미술은 사회적 영매라고 생각한다. 사회적으로 뭔가를 매개해 주는 신비스러운 매개체다. 미술도 사회의 여러 활동에 섞여 들어가고 각 활동들을 연결시키고 매개해줘야 한다고 본다.

■ 앞으로 이야기청의 방향은.

문화매개활동을 하는 여러 집단들이 이야기청과 비슷한,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와 같은 작업이 서울을 넘어 전국적으로 확산될 수 있을 것이다. 팬데믹 시대에 공동체는 갈수록 삭막해진다. 특히 노인들에게는 더욱 어려움이 클 것이다. 공동체에 활력을 제공하는 데 이야기청이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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