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휴대폰 일괄 수거, 인권위 “인권침해” 결론

2020-11-05 11:55:25 게재

청소년단체도 휴대폰 수거 문제 공론화

‘휴대폰 수거 금지’ 퍼포먼스 벌여

많은 중고등학교에서 이뤄지고 있는 등교 후 휴대전화 일괄 수거가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판단이 나왔다. 청소년 인권단체들은 학교측의 휴대폰 일괄 수거에 대해 부당하다고 느끼는 청소년들이 많다는 점에서 각 학교에서 항의행동을 하는 등 공론화 활동을 벌이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4일 매일 아침 조례시간에 학생 휴대전화를 수거하고 종례시간에 돌려주는 한 고등학교의 생활규정은 학생들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학교에서 휴대전화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한 고등학교의 학생생활규정이 헌법상 일반적 행동과 통신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단해 해당 규정을 개정할 것을 권고했다.

인권위에 따르면 이 고등학교는 매일 오전 8시 20분에 학생들의 휴대전화를 걷어가고 방과후학교가 끝난 오후 8시 30분에 돌려준다. 특히 실제 사용하는 휴대전화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담당교사와 선도부원이 학생들의 휴대전화를 일일이 켜보거나 공기계를 제출한 학생에게는 벌점을 부과했다.

이 고등학교는 인권위에 “해당 규정은 학부모들이 교내 휴대전화 사용 금지를 요구해 교사와 학부모, 학생의 의견을 수렴해 개정한 것”이라고 정당성을 주장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희망자에 한해 수거하거나 휴식시간과 점심시간에는 허용하는 등 기본권 침해를 최소화하면서도 교육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면서 이 학교가 헌법상 과잉금지원칙을 위배하고 일반적 행동의 자유와 통신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그 외에도 비슷한 진정이 제기된 중학교 2곳에 대해서도 "휴대전화 소지를 전면적으로 금지하기보다는 본인의 욕구와 행동을 통제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를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같은 권고를 했다.

학교의 휴대전화 일괄 수거에 대해 문제제기를 해오던 청소년 인권단체들은 인권위 권고에 즉각 환영 의사를 밝혔다. 21세기청소년공동체 희망(이하 희망)은 4일 성명서에서 “인권위 판단을 매우 환영한다”면서 “학생인권조례에서 ‘학교는 학생의 휴대폰을 비롯한 전자기기의 소지 자체를 금지해서는 아니된다’는 학생인권조례 규정이 제대로 지켜져야 한다”고 밝혔다.

윤미연 희망 사무국장은 “지자체의 학생인권조례에는 전자기기 소지를 금지해선 안 된다고 돼 있지만 많은 학교에서는 학교 자체 규정에 일부 예외조항을 둬서 여전히 등교 후 일괄적으로 휴대폰을 수거하고 있다”면서 “학생들 (휴대전화 사용에 대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보장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희망은 지난 달 15일부터 청소년들에게 ‘핸드폰 걷는 학교 블랙리스트 제보’를 받은 결과 약 592건의 제보를 확보했다. 해당 학교 학생들은 ‘핸드폰 강제수거 금지’ 메모지를 학교 내에 붙이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제보한 청소년들은 "(핸드폰을 걷고 받는 과정에서) 선생님들이 우리 핸드폰을 하나하나 켜보고 전화까지 해서 확인하는 건 너무 사생활 침해고 기분 나쁘고 불편하다", “휴대폰을 제출하는 것이 공부하는 교실 분위기를 만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핸드폰을 몰래 하려는 분위기를 조장한다", “이것도 우리의 자유인데 수업시간만 안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생각이 든다” 등의 의견을 제시했다.

윤 사무국장은 “퍼포먼스를 한 학교에서는 학교 규정을 개정하는 문제에 대해 논의해보기로 하는 등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면서 "교육부는 당장 학생인권조례 관련 실태조사를 통해 학생들의 인권이 제대로 보장받고 있는지 조사하고, 가장 먼저 핸드폰을 강제로 걷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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